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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우칸촌 민주주의 실험, 대륙의 눈·귀 쏠리다

등록 2012-02-26 19:29수정 2012-02-27 10:15

지난 21일 광둥성 우칸촌에서 주민들이 우칸 지도를 보면서 토지 문제를 얘기하고 있다. 불법 매각된 토지를 확인하기 위해 젊은 주민들이 구글어스 등을 이용해 우칸 토지 지도를 직접 만들었다.
지난 21일 광둥성 우칸촌에서 주민들이 우칸 지도를 보면서 토지 문제를 얘기하고 있다. 불법 매각된 토지를 확인하기 위해 젊은 주민들이 구글어스 등을 이용해 우칸 토지 지도를 직접 만들었다.
[중국, 전환의 기로에 서다] ① 농촌 마을의 ‘작은 혁명’
[르포] 중국 우칸촌을 가다

후진타오에서 시진핑으로, 올가을 10년 만의 권력교체를 앞둔 중국 사회의 밑바닥에선 변화의 목소리가 분출하며 경제·사회적 난제의 해법을 둘러싼 노선 경쟁이 치열하다. 중국 농촌의 민주 실험을 상징하는 광둥성 우칸촌 등을 직접 찾아 중국 모델의 새로운 길을 내다본다.

부패관리 몰아낸 주민들
촌위원회 선거 준비 분주
당간부들, 토지 몰래 매각
농민분노가 변화의 불씨로

“봄이 우칸에 왔다. 1인1표 선거의 날이 기쁘게 다가온다” “직접 선거로 민주 권리를 충분히 행사하자”

붉은 종이 위에 손으로 쓴 민주의 글귀들이 작은 마을 곳곳에 붙었다. ‘중국 민주의 성지’로 떠오른 중국 최남단 광둥성 루펑시 우칸촌, 주민들은 다음달 3일 행정기구인 촌위원회 선거를 앞두고 선거 절차를 꼼꼼히 준비하느라 한창 바쁘다. 중국에서 유일한 민주선거의 열기다.

지난 21일 찾아간 우칸에선 현실을 바꾸고 있다는 자부심과 열정이 가득했다. 열흘 전 선출된 마을대표(기층조직) 중 한명인 장빙취안(45)은 “과거 촌 서기는 41년, 촌위원회 주임은 37년 동안 자리를 차지하고, 형식적인 선거도 없이 촌위원회에는 측근들 이름을 맘대로 써서 상급 정부에 보고했지만 이제 변화가 왔다”고 했다.


우칸촌의 1만3000여 주민들은 중국 민주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41년간 마을의 황제처럼 군림했던 촌 서기 등 당 간부들이 주민들의 집단소유인 토지를 몰래 매각해 거액을 챙긴 것을 알게 된 주민들은 지난해 9월부터 시위에 나섰다. 마을대표 쉐진보가 체포돼 숨진 뒤에는 당과 공안 조직을 모두 몰아내고 마을을 해방구로 만들었다. 결국 지난해 12월 말 광둥성의 2인자인 부서기가 직접 마을을 찾아와 민주선거와 토지 문제 해결 요구를 받아들였다. 우칸의 ‘작은 혁명’은 중국 농민의 각성과 단결, 그리고 더이상 중국 정부가 이를 강압적으로 억누를 수 없는 임계점이 다가오고 있음을 드러냈다.

풀뿌리 민주는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우칸 사람들에게 남은 더 어려운 문제는 토지 문제다. 쫓겨난 전 당 간부들은 1990년대 초부터 부동산 개발회사 등에 몰래 토지를 팔아 막대한 수익을 챙겼다. 주민들의 집단소유인 2만5000무(약 1600만㎡)의 대부분이 주민들 모르게 팔려 나갔다.

지난 30년간 중국의 고속성장을 이끈 산업화와 도시화는 농민들의 토지를 빼앗아 이뤄졌다. 광둥성 정부는 토지 문제 해결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마을에 파견했지만, 아직 해법은 나오지 않고 있다.

토지 시위를 처음 시작했던 ‘우칸 열혈청년단’의 일원인 좡례훙(28)은 “부패한 관리들이 촌민의 토지를 훔쳐 거액을 챙겼다”며 “고향 땅은 몰래 빼앗겼고, 외지에 나가 어렵게 돈을 벌어도 돌아온 마을에는 아무런 생활 기반도 없고, 집 하나 짓기도 어려워져 버렸다”고 말했다.

농지를 잃은 주민들의 유일한 생계 수단은 어업이 됐다. 배를 살 돈이 있는 사람들만 고향에 남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외지에 나가 공장에서 일하거나 장사를 하며 생계를 꾸렸다. 허름한 주민들의 집들과 마을 한편 별장지대의 호화주택은 1 대 99 사회가 되어버린 중국의 축소판이다. 마을 주민 장젠싱(20)은 “우칸의 빈부격차는 매우 크다”며 “토지 매각으로 거액을 챙긴 당 서기, 이들과 가까워 특권을 받은 사람들은 부동산 개발과 해산물 유통으로 큰돈을 벌었고, 마을에는 호화 별장지대도 생겼다”고 말했다. 이런 현실에 대한 분노가 지난해 9월부터 주민 6000~7000명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로 폭발했다. 주민들은 47개 성씨별로 후보를 내 12명의 임시 마을대표를 뽑고 똘똘 뭉쳤다. 난생처음 해보는 시위였지만 대표들은 시위 전략을 짜고, 주민들은 함께 깃발과 펼침막을 만들고 연판장도 작성했다. 공안 수백명이 마을에 들어와 주민들을 구타했지만, 탄압을 받을수록 주민들은 강해졌다.

우칸이 위치한 루펑시는 중국 공산주의 혁명사에서 하이루펑(해륙풍) 소비에트로 유명한 곳이다. 1927년 중국 공산혁명 최초의 농민 소비에트를 세웠던 농민들의 후예가 80여년 뒤 우칸 봉기의 주역이 됐다. 차이예펑(30)은 “지난 1년처럼 마을이 단결했던 적은 없다”며 “토지 문제가 드러난 뒤 촌민들은 우리가 중국 첫 소비에트를 건설하고 혁명에도 공헌했는데 마을이 이 모양이 됐다고 분노하며 더욱 뭉쳤다”고 말했다.

이제, 저장·후난 등 중국 곳곳에서 토지 분규로 고통받는 농민들, 민주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우칸을 배우자’며 마을을 찾아오고 있다. 우칸에서 일어난 한알의 불씨는 광야를 불태울 것인가?

우칸(광둥성)/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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