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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난민 아이들 품어준 폴란드…학교에서 “전쟁 참상 잠시나마 잊게”

등록 2022-03-18 04:59수정 2022-03-18 08:04

[프셰미실 제2 초·중등학교 탐방]

교사들, 양국 언어 번갈아 수업
학생엔 책가방.점심 도시락 제공
심리상담사 등 ‘마음공부’도 챙겨
핍카 교장 “최선 대해 지원”
공공도서관, 난민 전용 공간으로
15일(현지시각) 오전 폴란드 프셰미실 제2 초·중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교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원래 이 학교의 수업 정원은 15명이지만 밀려드는 난민 학생들로 인해 정원이 30명으로 늘어났다. 프셰미실/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5일(현지시각) 오전 폴란드 프셰미실 제2 초·중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교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원래 이 학교의 수업 정원은 15명이지만 밀려드는 난민 학생들로 인해 정원이 30명으로 늘어났다. 프셰미실/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우크라이나에서 온 15살 소녀는 아침 일찍 학교로 향했다. 아침 10시가 되어야 교장 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마음이 급했다. 15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폴란드 소도시 프셰미실의 제2 초·중등학교 교장실 앞. 손녀와 함께 의자에 앉은 할머니의 얼굴에도 근심이 가득했다. 둘은 교장 선생님을 만나자마자 애원했다.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요.”(손녀)

“손녀가 9학년이에요. 여기서 학교에 다닐 수 있을까요?”(할머니)

교장 피오트르 핍카(60)는 소녀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단 하나의 조건이 있었다. 핍카 교장은 이날 학교를 찾은 <한겨레> 취재진에게 우크라이나 소녀에게 희망한 9학년이 아닌 8학년 입학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원래 15살이어서 9학년 학급에 배정되어야 했지만, 그 학년엔 학생들이 꽉 차 빈자리가 없었다. 소녀가 외국인 학생으로 적응할 시간도 갖고, 더 자신감 있게 공부할 수 있도록 8학년을 제안한 것이다.

전쟁 뒤 국경 도시 학교에 난민 학생 크게 늘어

러시아가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이날로 채 3주가 지나지 않았지만, 그사이 학교엔 우크라이나 학생이 110명이나 늘었다. 한 반당 수업 정원은 15명이지만 급격히 늘어난 난민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해 30명으로 늘렸다. “저는 영어 교사입니다. (아이들을 위해) 폴란드 말로 한번, 우크라이나 말로 한번씩 설명합니다.” 이 학교 교사 루바(41)가 말했다.

프셰미실 제2 초·중등학교는 평범한 폴란드 학교이다. 이전에도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독일·벨라루스·리투아니아 등 이웃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일부 다니고 있었다. 국경 도시이기 때문인지 교사들도 대부분 폴란드어·우크라이나어를 둘 다 구사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난민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교육 환경인 셈이다.

난민 학생들은 현재 이 학교의 기존 반에서 기존 교육과정에 따라 공부하고 있다. 학교는 난민 학생들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고 별도의 반을 개설할 예정이다. 별도의 교육과정을 개설할지 여부는 앞으로 폴란드 교육당국이 결정해야 한다.

학교 게시판 한쪽에는 ‘우크라이나에서 온 아이들의 친·인척을 위한 정보’라는 공지가 우크라이나 말로 붙어 있다. 폴란드 정부는 국내 모든 학교에 ‘우크라이나에서 온 난민 어린이·청소년이 폴란드 학교에 다니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상세히 안내하는 이 공지문을 내려보냈다.

이 공지에 따라 7∼18살 사이의 난민 학생은 폴란드 학생과 같은 기준에 따라 거주지 인근 학교에 다닐 수 있다. 해당 학교에 자리가 없으면 관할 지방정부가 대안을 제시해준다. 난민 학생은 교육 이력을 보여줄 증명서를 제출해야 하지만 서류가 없는 경우에도 그동안 다닌 학교 이름 등을 적는 기본적인 서류 신고 작업을 거쳐 폴란드 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 학생이 폴란드어를 잘하지 못하면, 학교에서 무료로 언어 수업을 열어주거나 준비반을 만든다.

15일(현지시각) 오전 폴란드 프셰미실 제2 초·중등학교 1층 로비에 학생들이 만든 우크라이나를 응원하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프셰미실/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5일(현지시각) 오전 폴란드 프셰미실 제2 초·중등학교 1층 로비에 학생들이 만든 우크라이나를 응원하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프셰미실/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학교 다니며 힘든 일 잊을 수 있어”…아이들 ‘마음공부’도 챙기는 학교

난민 아이들은 일반적인 교과 공부 외에 ‘마음공부’도 한다. 학교에서 보증하는 심리상담사, 교육치료사들을 만나 도움을 받는다. 핍카 교장은 “(폴란드 국경 옆의) 르비우에서 온 아이들과 (굉장히 위험한 상황에 처한) 하르키우에서 온 아이들이 저마다 심리 상태가 다르다”며 “학교 심리상담사는 물론 프셰미실에 있는 다른 상담 인력을 동원해 아이들의 마음을 돌보려 한다”고 말했다. 학교는 난민 학생에게 책가방과 점심 도시락도 지원한다. “난민 아이들은 다른 애들처럼 도시락을 싸 올 수가 없잖아요. 학교가 최선을 다해 지원하려고 합니다.”

학교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어려움도 있다. 지난 2년여간 이어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기존 폴란드 학생들은 이북(e-book) 등 온라인 학습자료를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 학교가 학습자료를 공유해야 하지만, 적잖은 난민 아이들이 태블릿이나 피시 등 기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체육 수업을 할 때 입는 옷도 마찬가지다. 학교가 가용 자원을 총동원하려 해도, 난민 학생들의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지금 막 국경을 넘은 아이들은 일단 입고 먹을 것, 그리고 잠잘 곳이 가장 필요합니다. 하지만 배움도 계속돼야 합니다. 아이들이 거쳐온 힘든 일들을 잊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핍카 교장이 말했다.

15일(현지시각) 오전 폴란드 프셰미실 제2 초·중등학교의 한 교실에 삼각함수 공식과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 중단 촉구 종이가 붙어 있다. 프셰미실/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5일(현지시각) 오전 폴란드 프셰미실 제2 초·중등학교의 한 교실에 삼각함수 공식과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 중단 촉구 종이가 붙어 있다. 프셰미실/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공공 도서관도 난민 어린이 전용 공간으로

“우크라이나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우크라이나어 책을 요청합니다.” 폴란드 사서협회는 우크라이나 시민과의 연대를 표하는 차원에서 난민 어린이에게 놀이와 공부의 기회를 제공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프셰미실시에선 지난 7일부터 도시 곳곳에 ‘우크라이나 어린이에게 책을 선물하세요’라는 공지문을 붙여 홍보에 나섰다.

캠페인을 시작한 뒤 일주일 만에 폴란드 시민들이 보내온 우크라이나 말로 된 책을 비롯해 연필·연필깎이·필통 등 학습도구와 퍼즐·보드게임·장난감·스케치북·블록·인형 등의 기부품이 도착했다. 이를 활용해 프셰미실시 공공 도서관 1층 열람실은 최근 ‘난민 어린이 전용 공간’으로 새단장했다. 14일 공공 도서관에서 만난 사서 아가타(55)는 “수많은 여성과 어린이들이 프셰미실로 밀려드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잠시나마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공간을 만들었다”며 “모국어로 된 책을 읽으면 조금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도서관 내 어린이 전용 공간 한쪽에는 놀다가 배가 고파진 아이들을 위한 음료와 간식도 마련돼 있다.

지난 한주 동안 난민 어린이 30∼40명 정도가 도서관을 다녀갔다. 원하면 책과 필기도구 등을 가져갈 수도 있다. 아가타 사서는 “보통 8개월에서 10살 사이 아이들이 부모와 같이 와서 시간을 보내고 간다”며 “아직은 시작 단계지만 더 많은 공간을 활용해 캠페인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4일(현지시각) 낮 폴란드 프셰미실 공공 도서관에 우크라이나 난민 아동 전용 놀이방 및 교구, 서적 대여소가 마련되어 있다. 프셰미실/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4일(현지시각) 낮 폴란드 프셰미실 공공 도서관에 우크라이나 난민 아동 전용 놀이방 및 교구, 서적 대여소가 마련되어 있다. 프셰미실/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4일(현지시각) 폴란드 프셰미실 공공 도서관 사서 아가타가 우크라이나 난민 어린이들이 전용 공간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프셰미실/노지원 기자
14일(현지시각) 폴란드 프셰미실 공공 도서관 사서 아가타가 우크라이나 난민 어린이들이 전용 공간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프셰미실/노지원 기자

난민 아이들을 따뜻하게 품는 것은 프셰미실시만이 아니다. 수도 바르샤바 술레유베크에 있는 있는 폴란드 교육개발센터는 우크라이나 난민 70명에게 숙식과 심리·교육·의료 지원을 하고 있다. 전체 수용 인원 가운데 어린이는 40여명으로 7~11살 초등학생이 대부분이다. 이곳 아이들은 7일부터 인근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폴란드 언론 <엔에프피>(NFP·Notes from Poland)의 보도를 보면, 폴란드 교육당국은 국경을 넘은 난민 가운데 절반 정도가 취학 연령대인 어린이나 청소년이라고 보고 대책을 마련 중이다. 프셰미스와프 차르네크 폴란드 교육과학부 장관은 11일 국내 각 학교에 서한을 보내 “우리의 공통 과제는 난민들에게 유리한 생활 조건을 제공하고 이들이 일을 시작하고, 교육·학습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차르네크 장관은 16일 기자회견에서 지금까지 폴란드 학교에 등록한 우크라이나 난민 어린이는 5만4천명이라고 밝혔다.

폴란드 교육당국은 특수교육이 필요하거나 장애를 가진 어린이·청소년을 받아들이기 위한 계획도 세우고 있다. 폴란드 공공심리·교육상담센터가 이들의 재활·교육 활동 등을 지원하게 된다. 폴란드 교육과학부는 4일 누리집에 우크라이나에서 오는 이들을 위한 교육 지원을 신청해달라는 공지를 냈다. 또 교육 봉사를 하고 싶은 자원봉사자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폴란드 의회도 우크라이나 시민을 지원하기 위한 법률을 준비 중이다. 우크라이나 학생들에게 폴란드 정부가 교육·양육을 제공할 수 있도록 명확한 법률적 근거를 만들려는 것이다. 이 법이 만들어지면, 각 학교는 당국으로부터 교육 공간과 교직원 확대에 드는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프셰미실/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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