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국영방송 <채널1>의 편집자인 마리나 오브샤니코바가 14일 자사의 보도 프로그램 생방송 중에 반전 피켓을 들고 있다. EPA/DSK 연합뉴스
생방송 뉴스 중 반전 피켓을 들고 나타났다가 체포됐던 러시아 언론인 마리나 오브샤니코바가 “러시아 국민이 정부의 선전선동에 좀비화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국영방송 <채널1>의 편집자인 오브샤니코바는 17일(현지시각) 영국 <비비시>(BBC)와 인터뷰에서 “러시아 국민들이 정부 매체의 보도 방송을 듣는 것을 멈춰야 한다. 대안 정보를 찾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나도 알지만 사람들은 그걸 찾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브샤니코바는 지난 14일 <채널1>의 보도 프로그램 방송 중에 불쑥 반전 피켓을 들고 화면에 나타나 기습시위를 벌였다. 이 피켓에는 “전쟁 반대, 전쟁을 멈춰라. 선전선동을 믿지 말라. 그들은 지금 당신에게 거짓말하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는 이 일로 14시간 동안 경찰 조사를 받고 벌금 3만루블(35만원)을 처분 받았다.
오브샤니코바는 “모스크바 중앙 광장에 가서 시위했으면 다른 사람들처럼 체포되어 경찰차에 던져진 뒤 재판을 받았을 것이란 걸 안다”면서 “피켓의 절반은 러시아로 썼고 절반은 영어로 썼다. 나는 서방세계 사람들이 러시아에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정말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나도 책임감을 느낀다. 나는 정부 선전선동 기계의 평범한 톱니바퀴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그것을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브샤니코바가 생방송 반전 피켓시위를 한 뒤 러시아 매체에서는 그런 일을 벌인 동기에 대해 많은 억측이 떠돌고 있다. 그는 “나에 대한 음모론이 많다는 걸 안다. 실상을 알리고, 내가 평범한 러시아 여자이지만 (이번 전쟁의 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브샤니코바는 생방송 반전 피켓시위 전 크레믈(러시아 대통령궁)의 프로파간다를 위해 일하는 게 부끄럽다고 말하는 영상을 녹화해 놓았다. 그는 “누구도 이것이 내 개인의 결정이라는 걸 믿지 않았다. 직장에서 무슨 문제가 있거나, 우크라이나에 화가 난 친척 때문에, 또는 서방세계를 위해 그런 일을 했다고 말했다”며 “그들은 내가 정부 정책에 아주 많이 반대하며 그래서 침묵을 지키고 있을 수 없었다는 걸 믿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국영 매체는 정부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특별 군사작전”이라고 부르고, 우크라이나를 침략자, 우크라이나의 선출 정부를 신나치로 묘사하고 있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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