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5일(현지시각) 저녁 우크라이나에서 온 난민과 이들을 도우려는 자원봉사자들로 북적이던 폴란드 바르샤바 중앙역의 모습(왼쪽 사진). 약 석 달이 지난 12일 같은 장소가 비교적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5일 폴란드 국경을 넘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수는 12만 9000여 명에 달했지만 지난 9일 하루 동안 폴란드로 입국한 난민은 6분의 1 수준인 2만 5200여 명으로 줄었다. 바르샤바/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한겨레> 취재진은 개전 110일째를 맞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의 참상을 전하기 위해 지난 3월에 이어 2차로 우크라이나 현지 취재에 나섰다. 13일부터 2주 동안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중심으로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남긴 깊은 상흔을 짚어본다. 앞서 노지원·김혜윤 기자는 3월5일부터 2주간 우크라이나 접경 지대를 취재한 바 있다.
12일(현지시각) 오후 5시 바르샤바 서부 버스터미널.
지난 3월 말 이후 석 달여 만에 다시 찾은 폴란드 바르샤바는 어느 새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초여름으로 변해 있었다. <한겨레> 취재진은 지난 3월 초부터 3주 동안 우크라아나 서부와 국경을 접하는 폴란드에 머물며 전쟁을 피해 국경을 넘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다양한 사연을 전했다. 습기와 냉기가 합쳐진 강력한 추위가 뼛속을 때렸던 3월과 달리 훈훈함이 가득한 날씨였다. 터미널을 오가는 사람들의 복장도, 표정도 한결 가벼워졌다.
12일(현지시각) 저녁 폴란드 바르샤바 서부 버스터미널 9번 탑승장이 우크라이나 키이우와 체르니히우로 가는 버스에 오르려는 승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바르샤바/김혜윤 기자
이후 석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3월 말~4월 초 수도 키이우 주변에서 러시아군이 철수하고, 동부 돈바스를 중심으로 전선이 교착되면서 난민 수는 크게 줄었다. <한겨레> 취재진이 폴란드 현장에 있던 3월8일 하루에만 우크라이나인 14만명이 폴란드로 입국했는데 그 규모는 6월 현재 2만명 수준으로 줄었다. 개전 이후 10일 현재까지 폴란드로 들어온 우크라이나 피란민은 모두 395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고향을 떠난 우크라이나인들이 견뎌야 하는 고단한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미 장기화된 전쟁이 언제 끝날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난민들은 폴란드에 머물거나 이곳을 거쳐 새 정착지를 찾아 나서는 중이다. 3월16일부터 폴란드 정부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상대로 은행 계좌 개설, 취업, 병원 이용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신분증 역할을 하는 ‘페셀(PESEL)’ 번호 발급을 시작했다. 페셀을 신청한 난민은 지난 4월 말 기준 100만명을 넘었다.
11일(현지시각) 폴란드 바르샤바 서부 버스터미널에 마련된 푸드 텐트. 우크라이나에서 온 난민들은 이곳에서 무료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같은 날 버스터미널 게시판에 붙은 안내문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온 이웃의 폴란드 체류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내용이다. 안내문은 난민에게 안내문에 적힌 큐아르코드로 접속하면 폴란드 내에서 합법적 체류가 가능하도록 신분증 역할을 하는 `페셀(PESEL)' 번호 발급, 의료 서비스 이용, 일회성 재정 지원, 학업 지속, 법적 도움 등 서비스를 받기 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알리고 있다. 노지원 기자
지난 3월 밀려드는 난민들로 매일 북적이던 바르샤바 기차역, 버스터미널은 6월 현재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다. 물론 난민들에게 임시 거처와 교통편을 연결해주는 인포메이션 센터나 이른 아침부터 밤늦도록 음식을 제공하는 ‘푸드 텐트’는 여전히 가동 중이다. 무엇보다 난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별도의 공간’은 이용자 수와 관계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군인 너덧 명이 입구 앞을 지키는 삼엄한 모습도 여전했다.
경비를 서는 군인에게 허락을 구해 바르샤바 서부 버스터미널 2층에 마련된 여성과 아이를 위한 공간에 들어가 봤다. 어림잡아 100평은 돼 보이는 넓은 공간이 각각 놀이방·식당·침실 등으로 나뉘어 정돈돼 있었다. 놀이방에서는 한 소녀가 책상에 앉아 그림 그리기에 집중했다. 나이 든 여성 서너명은 식당 칸에 모여앉아 차를 마셨다. 가장 넓은 공간에는 간이침대 50여개가 나란히 놓였다. 10명이 채 되지 않는 여성들이 각자 모양대로 눕거나, 앉거나 한 채로 한숨을 돌렸다. 주방 앞 기다란 테이블에는 우유, 과자 등 먹을 것이 쌓였고, 커다란 방의 한쪽 모서리에는 유모차, 휠체어가, 또 한 쪽에는 이불이 가지런히 정리됐다. 구호물자가 여기저기 쌓이고 난민과 자원봉사자들로 붐벼 발 디딜 틈 없던 3월 초 풍경과는 많이 달랐다.
입구에서 경비를 서던 군인은 “다른 행선지를 정한 난민들이 몇 시간 뒤, 또는 다음 날 타고 갈 버스나 기차를 기다리는 공간”이라며 “이용자가 많은 날엔 하루에도 수백 명이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바르샤바/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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