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주 크로토네 해안에서 난민을 가득 실은 목선이 침몰해 40여명이 숨졌다. 크로토네/로이터 연합뉴스
이탈리아 남부 해안에서 100여명의 난민을 태운 배가 육지로 접근하는 과정에서 부서져 80여명이 구조되고 40여명이 숨졌다. 배에 250여명이 타고 있었다는 증언도 있어 희생자 수는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26일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주의 도시 크로토네 해안에서 100여명의 난민을 태운 길이 20m 정도의 배가 육지에 접안하는 과정에서 파손돼 침몰하며 40여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사고가 난 곳은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반도의 발바닥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현장 상황을 전하는 외신 사진을 보면 높은 파도가 치는 가운데 배의 잔해로 보이는 나뭇더미들이 해안에 흩어져 있는 모습과 구조된 뒤 이불을 뒤집어쓰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이들을 확인할 수 있다.
<에이피>(AP) 통신도 이탈리아 해양경비대를 인용해 배가 파손된 뒤 육지로 올라온 이들을 포함해 80명이 구조됐고, 해변에서 43구의 주검이 수습됐다고 전했다. 숨진 이들 가운데는 태어난 지 몇달밖에 되지 않은 아기와 7살 된 남자아이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탈리아 <안사>(ANSA) 통신은 “배에 정원을 훨씬 넘어서는 250여명이 타고 있었다”는 생존자들의 증언을 전하고 있어, 희생자 수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해양경비대는 사고 해안 주변에서 구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 배가 정확히 어느 지역에서 출발해 어떤 항로를 거쳐 사고 해안에 닿았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이탈리아 현지 언론은 배에 타고 있던 이들이 주로 이란·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출신이라고 밝혔다. 또 난민들을 가득 태운 목선이 거친 파도를 뚫고 접안하는 과정에서 바위에 부딪혀 부서진 것 같다고 전했다.
난민 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밝혀온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희생자들의 죽음에 “깊은 슬픔”을 전한다고 밝혔다. 멜로니 총리는 이날 성명에서 “안전한 여행이 될 것이라는 잘못된 기대를 품고 티켓을 산 대가로 남성과 여성과 아이들의 목숨이 희생된다는 것은 비인도적인 일”이라며 “정부는 이 같은 (난민의 위험한 항해를)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명에서 이런 위험한 항해를 알선한 이들을 ‘인신매매범’(human traffickers), ‘인간밀수범’(human smugglers) 등의 거친 표현을 써가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26일 이탈리아 남부 해안에서 난민을 가득 실은 목선이 침몰해 40여명이 숨졌다. 구조된 이들이 크로토네 해안 주변 공터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크로토네/EPA 연합뉴스
2011년 봄 시작된 시리아 내전이 장기화되며 이 지역 난민이 대거 유럽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2014년 이후 이탈리아·그리스 주변에선 난민을 가득 태운 배가 가라앉는 조난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그로 인해 지금까지 무려 2만여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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