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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유럽 이주민 문제, 그리고 위선과 부정의 [현장에서]

등록 2023-10-19 06:00수정 2023-10-19 07:58

4일(현지시각) 오전 11시께 튀니지에서 출발한 이주민이 섬의 남동쪽 작은 만에 만들어진 파발로로 부두로 들어왔다. 부두 바로 옆에 자리한 해변에서 북부 이탈리아에서 온 관광객들이 파라솔을 펴 놓고 여유롭게 볕을 쬐거나 해수욕을 즐기는 모습이 보인다. 람페두사/노지원 특파원
4일(현지시각) 오전 11시께 튀니지에서 출발한 이주민이 섬의 남동쪽 작은 만에 만들어진 파발로로 부두로 들어왔다. 부두 바로 옆에 자리한 해변에서 북부 이탈리아에서 온 관광객들이 파라솔을 펴 놓고 여유롭게 볕을 쬐거나 해수욕을 즐기는 모습이 보인다. 람페두사/노지원 특파원

“이탈리아 사람이 아프리카에 가려고 할 때, 비자는 필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냥 비행기 티켓을 사면 된다. 반면, 아프리카 사람이 유럽에 오려면 수많은 관료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두 사람에게 어떤 차이가 있나? 이것이 지금 존재하는 부정의다.”

지난 4일(현지시각) 이탈리아 최남단 섬으로 아프리카 등에서 유럽으로 오는 이주민이 올해만 13만명 넘게 도착한 람페두사에서 만난 살라 하일라(28)의 말이다. 그는 “인도주의 응급 상황”을 마주한 이 섬에서 2년 동안 일하며 지중해를 횡단하는 이주민 구조 작업을 했다. 그 역시도 여섯살 때 서아프리카에서 부모를 따라 이탈리아로 온 이주민 2세대다. 아프리카인들 상당수에게 여권은 무의미하다.

2013년 10월3일 람페두사섬 해안에서 이주민 368명이 목숨을 잃은 참사 10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섬을 찾아 왔다는 살라와 우연히 만나 나눈 대화가 잊히지 않는다. 그는 현재 이주민 문제를 과거 유럽의 아프리카 식민 지배와 연관 지으며 반이민 정책을 펴는 유럽이 위선적이라고 했다. “역사적으로 서방은 아프리카를 수백 년 동안 식민지배했다. 아프리카인을 강제로 데려와 공짜로 원하는 것을 착취했다. 이제 서방은 충분히 발전했고 모든 것이 좋은 상태다. 그런데 이제는 아프리카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게 위선이 아니고 무엇인가.”

10년 전 람페두사 앞바다 사고에서 숨진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에리트레아 출신이었다. 이탈리아의 첫 식민지였던 나라다. 1880년대부터 유럽 각국은 경제적, 전략적 이득을 얻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식민지 경쟁을 벌인 바 있다. 영국은 수단과 남부 아프리카 대부분 지역을 장악했고, 프랑스는 서쪽과 북쪽 아프리카 지역을 지배했다. 독일, 벨기에,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도 뛰어들었고, 서유럽 주요 국가 중 식민 지배 역사에서 자유로운 나라를 찾기 어렵다.

그런데도 현재 유럽 각국에서는 ‘이주민이 국익을 위협한다’는 선전이 힘을 얻는다. 시칠리아의 호스텔을 운영하는 말리 출신 이주민 알리는 “언론은 이주민 이슈를 다루지만 실제 그들이 왜 이런 위험을 감수하는지, 유럽에 와서 삶이 어떻게 바뀌는지는 잘 이야기 하지 않고 정치인은 이주민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을 만들어낸다”라고 토로했다. 유럽에 정착한 이주민이 사회에 기여하는 긍정적 측면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고 일자리를 가로채거나 범죄를 저지른다는 프레임을 씌운다는 것이다. 이주민 대부분은 굶주림, 전쟁, 독재 정권, 종교적 박해, 기후위기 등 다양한 이유로 가진 것을 포기하고 목숨을 건 여정을 결심한다.

인구감소로 노동력이 부족한 유럽에 이주민이 필요하고, 이주민이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는 논리는 더는 새롭지 않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인간은 더 나은 삶을 살 권리가 있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 나라에서 자유롭고, 공정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 람페두사 해안 난파 사고의 최초 구조자인 섬마을 원로 비토 피오리노의 말이 무겁게 다가온다.

베를린/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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