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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연금개혁 올안 시행”…성난 민심에 정치위기 직면

등록 2023-03-23 19:17수정 2023-03-24 02:31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2일 파리 엘리제궁에서 텔레비전 인터뷰를 하는 모습이 스크린에 나오고 있다. AFP 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2일 파리 엘리제궁에서 텔레비전 인터뷰를 하는 모습이 스크린에 나오고 있다. AFP 연합뉴스

“내가 좋아서 개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아닙니다.”

“(연금재정의) 수지를 맞출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습니다. 이 개혁은 사치나 장난이 아닙니다. 국가를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땐 은퇴자가 1000만명이었습니다. 요즘은 1700만명이고, 2030년에는 2000만명이 됩니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계속하는 게 가능할 것이라 보시나요?”

정년을 현재의 62살에서 64살로 늦추는 것을 뼈대로 한 연금 개혁안을 강행 처리해 프랑스 전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시종일관 침착한 태도를 보이려 애썼다. 그는 22일 낮 1시 <테에프1>(TF1)과 <프랑스2>에 동시 중계된 35분에 걸친 인터뷰에서 단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이 추진한 개혁안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며, 이 안을 “올해 말까지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개혁안을 강행 처리하는 과정에서 국민을 “설득하는 데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은 인정하며 “(법안이) 인기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받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한 정치적 ‘양보안’을 내놓진 않았다. 현재 프랑스 야당과 연금 개혁안에 반대하며 시위와 파업을 이끌고 있는 노동조합은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 해임 △조기 총선 실시 △이번 안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 등을 요구하는 중이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마크롱 대통령이 이날 “이 중에 그 어떤 커다란 정치적 움직임도 선택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분노한 시민들은 다시 일터 대신 거리로 나서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의 인터뷰가 방영된 당일 프랑스 전역에선 다시 한번 대규모 시위와 파업이 이어졌다. 프랑스 최대 항구인 마르세유에선 부두 노동자들이 트럭 등의 항구 진입을 막아섰다. 파리의 거리는 17일째 이어진 미화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방치된 상태다. 프랑스 서부·남부 정유공장에서 파업이 잇따르며 전국의 주유소가 공급난을 겪고 있다. 노동조합은 23일 다시 한번 전국 규모 시위와 파업에 나섰다.

경찰과 저항하는 시민들의 충돌도 계속되는 중이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22일 밤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경찰이 수십명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최루탄을 사용했다고 전했다. 전국에서 경찰의 과도한 대응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프랑스 경찰의 “과도한 무력 사용, 자의적 체포”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일부에선 정부의 개혁안 강행이 일반적인 정치·사회적 위기를 넘어 “더 중요한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 상실이라는) 제도적 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르 몽드>는 23일 정부가 하원 표결 없이 법률을 만들 수 있는 헌법 49조3항을 사용해 연금 개혁안을 밀어붙이는 바람에 “극심한 정치적·사회적 위기가 촉발됐다”고 꼬집었다. 신문은 그로 인해 시민들이 “정부에 대한 불신, 유권자와 선출직 공직자 사이의 단절, 극악무도함”을 느끼게 했다고 지적했다. 도미니크 루소 파리1대학 교수(공법학)는 신문에 “1789년(프랑스 대혁명)부터 계승되고 우리의 기반이 되는 ‘선출직이 국민을 대표한다’는 원칙에 의문이 제기된다. 우리가 ‘체제 위기’에 직면했다”고 우려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총선에서 하원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해 표결에 나서면 부결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내몰리게 됐다. 임기를 4년이나 남겨둔 상태에서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해 ‘장기 레임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결국 △프랑스의 부활 △유럽연합(EU) 통합 강화 △전략적 자율성 확보 등 다른 핵심 정책들은 시도조차 못 해볼 가능성이 커졌다. 우크라이나 전쟁 대응 등 산적한 과제를 앞둔 프랑스에 깊은 암운이 드리우게 된 셈이다.

베를린/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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