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날트 투스크 전 폴란드 총리가 15일 바르샤바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15일 치러진 폴란드 총선에서 도날트 투스크 전 폴란드 총리가 이끄는 야권 연합이 53.71%를 득표해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우파 포퓰리즘 성향의 법과정의당(PiS)의 8년 집권이 끝나게 되면서 인구 3800만명의 동유럽 주요국 폴란드의 많은 정책이 온건한 쪽으로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가디언은 16일 투스크 전 총리가 이끄는 야권 연합이 다시 정권을 획득하게 되면서 폴란드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법과정의당 소속의 안제이 두다 대통령이 먼저 자기 당에 조각을 지시할 것으로 보이지만, 성공 가능성이 없어 정권 교체는 사실상 정해진 상태다. 이 과정에 앞으로 몇주가 걸리게 된다. 투스크 총리는 15일 밤 “민주주의가 승리했다. 법과정의당 정권은 끝났다”고 자신감을 드려냈다.
앞으로 이뤄지게 될 가장 크고 중요한 변화는 유럽연합(EU)과의 관계다. 우파 법과정의당 정부는 그동안 법원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기 위해 여러 무리수를 두면서 유럽연합과 갈등해왔다. 이 과정에서
경제 회복을 위한 기금으로 폴란드에 할당된 354억유로(약 50조5천억원)의 집행이 동결된 상태다.
하지만 2014~2019년 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직을 맡았던 투스크 전 총리가 다시 집권하게 되면 유럽연합과 관계 개선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 피오트르 부라스 유럽외교관계위원회 바르샤바 사무소 대표는 투스크 정부가 “친유럽적 자격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유럽연합 정치에서 더 건설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투스크 전 총리는 그 연장선상에서 법과정의당 집권 기간 후퇴한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도 할 것으로 보인다. 법과정의당은 2015년 집권 이래 사법부를 길들이기 위한 이른바 ‘사법 개혁’을 추진해왔다. 2019년에는 대법원 아래 판사 징계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이 담긴 법을 도입했다. 하지만 유럽연합의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는 지난 6월 이 법이 ‘법의 지배’ 원칙을 훼손하고 유럽연합 법률에도 위배된다고 최종 결론내렸다. 투스크 전 총리가 선거운동 기간 사법기관의 정치화 문제를 바로잡겠다고 공약한 만큼 변화가 예상된다.
법과정의당이 도입한 엄격한 임신중지 규제에도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투스크 전 총리는 12주까지는 임신중지를 합법화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주장해왔다. 지난봄엔 “임신중지는 성직자나 검사, 경찰관, 정당 활동가가 아닌 여성의 결정”이라며 “총선이 끝난 뒤 첫날 의회에 (임신중지 제한 완화 관련 법안을) 제안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이를 실현할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다소 불확실하다. 연정 파트너인 제3의 길 일부 의원들이 보수적 견해를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2025년까지 임기가 남아 있는 두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법과정의당은 그동안 성소수자(LGBTQ+)에 대한 혐오를 용인하고 심지어 장려하기까지 했다. 투스크 전 총리가 ‘동성 시민 파트너십’을 도입하는 법안을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공언한 만큼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야권 연합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어 실제 변화가 이뤄질지 지켜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투스크의 폴란드가 지난해 2월 말 러시아의 침공 뒤 1년8개월째 전쟁을 이어가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재개할지도 관심사다. 법과정의당 정부는 최근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입 문제를 두고 우크라이나와 공개적으로 갈등을 빚었다.
폴란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우크라이나산 곡물이 들어오면 자국 농부들이 피해를 본다는 이유로 금수 조치를 내렸고 이에 우크라이나가 반발하자 군사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맞섰다. 야권 연합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베를린/노지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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