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채혜원의 베를린 다이어리
17회 베를린의 여성 공간 ‘베기네’
1986년 문 연 여성 전용 카페 ‘베기네’
전시회·철학모임·요가·파티 등 열려
이주·난민여성 모두 따듯하게 품어
1977년 여성공동체 펍 ‘크랄레’ 설립
고용관계가 아니라 평등관계로 일해
힝켈슈타인 인쇄소는 여성 주도 작업장
17회 베를린의 여성 공간 ‘베기네’
1986년 문 연 여성 전용 카페 ‘베기네’
전시회·철학모임·요가·파티 등 열려
이주·난민여성 모두 따듯하게 품어
1977년 여성공동체 펍 ‘크랄레’ 설립
고용관계가 아니라 평등관계로 일해
힝켈슈타인 인쇄소는 여성 주도 작업장

2018년 8월 베를린 페미니스트들이 여성 전용 카페 ‘베기네’ 세미나룸에서 전쟁 성폭력 문제를 알리는 전시회와 토론회를 열고 있다. 채혜원 제공
“호기심과 연대의 여성 관객의 눈빛” 1986년 문을 연 여성 전용 공간 ‘베기네’는 베를린에서 게이들이 모여 사는 놀렌도르프플라츠 근처에 있다. 게이와 레즈비언, 트랜스 및 인터섹스들이 운영하는 다양한 상점과 카페, 레스토랑이 있는 동네다. 베기네의 역사는 1980년대 빈집을 점거하고 재건축한 ‘스콰팅’ 여성 운동가들이 카페와 문화센터로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베기네는 여성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았다. 3월 한달만 해도 여성 뮤지션과 함께하는 재즈의 밤, 요가 수업, 작가 크리스타 볼프 및 프란치스카 하우저와 함께하는 문학의 밤, 탱고&록 파티, ‘자유와 메타포’ 정치-철학 모임, 페미니즘 정당 모임, 퀴즈 파티 등 매일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특히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작품 낭독회나 영화 상영회 등을 통해 여성 예술가 작품이 알려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피아니스트 비르기타 알터만 역시 코리나처럼 베기네에서 연주할 때마다 예술활동을 이어갈 용기와 지지를 얻는다. 그는 “베기네는 여성들이 무언가를 보여주고, 또 무언가를 찾을 수 있는 곳”이라며 “호기심과 연대의 눈빛을 보내주는 여성 관객들 덕분에 베기네에서 연주하는 것을 오래전부터 좋아한다”고 말했다. 워낙 다양한 여성들이 베기네를 찾다 보니, 공간에 머물다가 우연히 독일 페미니스트 알리스 슈바르처나 배우 마렌 크로이만같이 잘 알려진 언니들을 만날 수 있는 건 덤이다.

베를린에서 게이들이 모여 사는 놀렌도르프플라츠 근처에 있는 여성 전용 카페 베기네에서는 매일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이 펼쳐진다. 베기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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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공동사업체 ‘힝켈슈타인 인쇄소’ 작업실에서 웃고 있는 노동자 코라와 자비네. 힝켈슈타인 인쇄소 제공
겉모습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베를린의 또 다른 유서 깊은 여성 공동사업체로는 ‘힝켈슈타인 인쇄소’(Hinkelsteindruck)가 있다. 여기는 베를린, 특히 크로이츠베르크 지역 활동가라면 모두가 아는 곳이다. 집회나 행사 등 정치활동을 조직할 때 홍보물, 출판물 등 인쇄물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독일에선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으로 인쇄하는 곳이 많은데, 복잡하고 큰 기계를 다루는 일이라 남성 지배적인 영역이지만 힝켈슈타인은 여성들이 이끄는 작업장이다. 힝켈슈타인 여성 회원들은 1980년대 옛 동독 체제에 대한 저항운동을 하던 중 동베를린 환경도서관의 지하 인쇄소에서 만났다. 1991년부터 인쇄소를 운영하고, 1995년부터는 직업교육산업체로 등록해 여성 직업훈련생에게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인쇄뿐만 아니라 디자인, 편집 등의 작업도 함께 진행한다. 힝켈슈타인은 내가 일하는 ‘국제여성공간’(IWS)과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 국제여성공간 동료인 데니지는 “우리는 기획부터 인터뷰, 번역, 편집, 교정, 사진, 레이아웃에서 인쇄에 이르기까지 여성이 참여한 독립출판물로 난민 여성 증언을 담은 두 권의 책을 만들어왔는데 누구보다 힝켈슈타인의 역할이 컸다”며 “인쇄비가 모자랄 때 그들은 언제나 돈 걱정 하지 말고 나중에 돈이 마련되면 가져오라며 늘 우리를 신뢰해주고 기다려줬다”고 말했다.

2018년 3월 힝켈슈타인 인쇄소에서 국제여성공간 활동가 리카에게 인쇄소 노동자 자비네가 기계 작동법을 알려주고 있다. 채혜원 제공
▶채혜원: 한국에서 여성매체 기자와 전문직 공무원으로 일했다. 현재는 독일 베를린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하며 국제 페미니스트 그룹 ‘국제여성공간’(IWS)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베를린에서 만난 전세계 페미니스트에 대한 이야기와 젠더 이슈를 전한다. 격주 연재. chaelee.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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