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객장에서 한 트레이더가 울적한 모습을 한 채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쥐고 있다. 이날 월스트리트 주식시장은 1987년 ‘블랙 먼데이’ 이래 최악의 폭락세를 보이며 곤두박질쳤다. 뉴욕/AP 연합뉴스
“투자자들 그 누구도 날마다 곤두박질치고 있는 시장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다. ‘팔자 물결’에 맞서 싸울 것이냐 도망칠 것이냐를 놓고 대부분 일단 도망치는 쪽을 선택하면서 숨을 곳을 찾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13일 자신의 주문데스크에 전화벨이 끊임없이 울린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의 증권브로커 제임스 타오의 말을 전하며, 전세계 증시 폭락을 ‘궤멸적 공황 상태’라고 표현했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시장 폭락세를 진압하려고 가용 정책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음에도 1987년 10월 ‘검은 월요일(-22.6%)’과 1929년 10월 대공황 당시의 ‘검은 목요일(이틀간 -23.0%)’에 맞먹는 폭락이 동시 출현하면서 코로나19발 공중보건 위기가 전세계 금융·실물경제를 강타하는 불길로 급속히 번지고 있다.
<로이터>는 이날 지난 한달간 전세계 주식 14조달러(1경7129조원)가 증발했다고 보도했다. 전세계 주식 시가총액(약 85조달러)의 16.4%가량이 사라진 셈이다. 주가 급락세에 놀란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전날 5천억달러의 유동성을 금융시장에 투입하겠다고 발표한 뒤에 이날도 1조달러 추가 투입을 발표했다. 하지만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재정·통화정책을 총동원하고 있음에도 이미 질식 상태에 빠진 시장 공포를 진압하기란 역부족이다. 미쓰비시파이낸셜그룹의 금융분석가 크리스 루프키는 “내가 금융업무에 종사한 이후 최악이자 속도가 가장 빠른 주가 곤두박질 양상”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유럽발 미국 입국금지 조처 등으로) 미국에서 앞으로 한달간 경제활동이 사실상 중단 상태에 빠져들면 시장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음울하게 말했다. 미국 월스트리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빠른 속도의 폭락세를 경험하고 있다.
특히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금과 국채까지도 투매를 견뎌내지 못하는 등 모든 자산시장이 총체적 궤멸에 빠져들고 있다는 점이 공포를 가중시키고 있다. 국제 금가격(현물)은 이날 온스당 1563달러로 1주일 새 6.6% 폭락했다. 2013년 6월 이래 최대 하락폭이다. 미국 재무부 10년물 채권을 비롯해 일본·호주·한국의 국채가격도 하락(수익률 상승)을 면치 못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위험자산’ 주식이 폭락하면 투자자금이 금과 국채로 몰려들어 두 자산가격은 오르기 마련인데, 지금은 금·채권까지 모든 자산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외신들은 “금과 원유도 폭락하고, 안전자산이라는 국채도 기존 통념이 깨지고 있다”고 전했다. 주식에서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자 투자자마다 손에 현금 유동성을 쥐려고 모든 자산을 앞다퉈 내다팔고 있는, ‘현금 확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외환거래업체 악시코프의 수석전략가 스티븐 이니스는 “주식과 채권시장이 동반 폭락하면서 투자자들 사이에 유동성 부족 사태가 극적으로 닥치고 있다. 돈이 말라붙자 금까지 청산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주가 폭락으로 주식 신용거래계좌 예탁증거금(일정 비율 의무유지) 부족 사태가 대거 발생하고, 증거금을 당장 채워넣으라는 ‘마진콜’이 증권회사에서 쇄도하자 보유한 금까지 팔아 충당하고 있는 것이다.
분석가들은 세계보건기구(WHO)의 12일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선언과 미국의 ‘유럽발 미국 입국금지’ 시행이 공포 방아쇠를 자극한데다 전날 유럽중앙은행(ECB)이 금리 인하를 보류해 시장의 실망감을 부추겼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자산가격의 ‘금융 부문 발작’을 넘어 전세계 산업·생산 활동에서 실물경제가 침체 경로에 급속히 들어설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에이피>(AP) 통신은 “공급 측면에서 중국발 글로벌 생산 공급망 파열이 더 길어져 생산이 구조적으로 손상되고 있는데다, 각국의 입국·여행 금지와 기업의 일시 해고 등으로 소득과 구매력 같은 수요도 급락하는 데 따른 ‘소비 급감’ 충격이 시장을 패닉에 몰아넣고 있다”고 전했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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