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건강 노동자가 30일 독일 남부도시 존톤펜의 코로나19 백신센터에서 백신을 주사기에 넣고 있다. 존토펜/AFP 연합뉴스
전세계 28개 나라의 간호사들을 대표하는 국제기구가 유엔에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지식재산권 효력을 정지시켜달라고 청원을 했다.
국제간호사연대(GNU)와 진보주의 인터내셔널(PI)이 주도한 간호사 연합조직이 유엔 건강권 특별보고관 틀랄렝 모포켕에게 서한을 보내, 몇몇 부자나라들이 코로나19 백신 보급과 의료계 종사자의 건강에 핵심적인 백신 지식재산권의 효력 정지를 못하도록 막아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29일 보도했다. 이들 조직은 28개 나라의 의료·건강 노동자 250만명을 대표하고 있다고 국제간호사연대가 밝혔다.
이들은 유엔 특별보고관에게 최근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을 거론하며 백신의 불평등한 보급이 “새로운 변이의 발생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며 백신에 대한 지재권 효력의 일시 정지를 요구했다.
이들은 지난해 인도와 남아공이 제안한 백신 지재권 효력 유예를 “격렬히 막고 늦춘” 국가 및 조직으로 구체적으로 유럽연합과 영국, 노르웨이, 스위스, 싱가포르를 명시했다.
그동안 코로나19 백신의 지재권 유예를 주장하는 쪽에선 백신 제조법을 공개해 아프리카 등 저소득 국가에서도 백신 공급을 늘려야 코로나19를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쪽에선 이들 지재권 보호야말로 제약회사의 이익을 보장해 신약 개발에 동기를 부여할 핵심적인 장치라며 맞서왔다.
양 진영의 논쟁은 주로 ‘무역 관련 지식재산권 협정’(TRIPS)에 대한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의 합의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진행됐다. 유예 지지 진영에서는 2001년 카타르 도하에서 합의된, “무역 관련 지재권 협정은 회원국 정부가 공중 건강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것을 막지 않고 막아서도 안된다”는 규정이 코로나19 백신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이런 규정이 합의된 것은, 아프리카의 저소득 국가들에 값싼 에이즈 치료약을 제공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압력에 따른 것이다. 합의에 따라 에이즈 치료약의 지재권이 유예되고 복제약이 생산되어 에이즈 퇴치에 크게 이바지했다.
이번에는 지난해 10월 인도와 남아공이 “코로나19 백신의 지재권을 전 지구적 집단면역이 형성될 때까지 유예하자”고 세계무역기구에 제안했다. 올 5월에는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뜻밖에 지재권 유예에 찬성하고 나서며 지재권 유예 흐름에 힘이 실리는 듯했으나, 이후 추가적인 진전은 없는 형편이다.
‘국경없는의사회’의 제네바 센터 책임자인 레베카 파파도풀루는 성명을 내어 “코로나19 백신과 진단기구, 치료제에 대한 접근이 심각하게 제한된 곳이 많은 상황에서 저소득 나라들이 코로나19를 다루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무역 관련 지재권 협정의 유예와 같은 제안에 반대하는 국가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 비윤리적”이라고 비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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