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현지 시각) 콜롬비아 대선 결선에서 페트로가 당선되자 지지자들이 축하하고 있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전통적인 친미 국가였던 콜롬비아에서 게릴라 출신의 좌파인 구스타보 페트로 상원의원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콜롬비아에서 첫 좌파 정권이 탄생하면서 남미에서 속속 좌파 정권이 탄생하는 흐름을 뜻하는 ‘핑크 타이드’ 현상이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콜롬비아 선거관리 당국은 19일(현지시각) 치러진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좌파 연합인 ‘역사적 조약’의 구스타보 페트로(62) 후보가 50.47%를 기록해 우파를 대변하는기업인 출신 로돌포 에르난데스(77) 후보(47.27%)를 꺾었다고 밝혔다. 전체 유권자 3900만명 가운데 약 2160만명이 투표해 투표율은 약 55%를 기록했다.
페트로의 이번 당선으로 콜롬비아는 첫 좌파 대통령이자 첫 흑인 여성 부통령을 갖게 됐다. 페트로 후보의 러닝메이트였던 환경·인권운동가 프란시아 마르케스는 가사노동자 출신이자 싱글맘이라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우파 성향의 이반 두케 현 대통령은 8월6일 임기가 종료되는대로 퇴임하게 된다.
대선에 세번째 도전하는 페트로는 당선이 확정된 뒤 자신의 트위터에 “최초의 민중 승리를 기념하자. 오늘은 시민의 기념일이다. 오늘 국토의 심장부가 범람하는 기쁨에 수많은 고통이 완화되기를 바란다”고 썼다. 젊은 시절 페트로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좌익 게릴라 단체 ‘엠(M)-19’(4월19일 운동) 사회운동으로 투옥됐고 사면을 받은 경험이 있다. 이어 그는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의 시장직을 지냈고 현재 상원 의원으로 입법활동을 해 왔다.
부동산 재벌이자 기업인 출신인 로돌포 에르난데스는 빠르게 패배를 인정했다. 그는 “나는 결과를 받아들인다. 나는 이 결정이 모두에게 유리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말했다. 그는 한때 존경하는 인물로 나치를 이끌었던 아돌프 히틀러를 언급해 큰 설화를 빚기도 했다. 그 때문에 ‘콜롬비아의 트럼프’라는 악명을 얻었다.
페트로는 연금·세금 개혁, 석탄·석유산업 축소, 부자 증세 등 전통적인 좌파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보건 분야와 농업 분야를 개혁하고, 마약 카르텔과 무장 단체들과 싸우는 방법에 변화를 줄 것도 제안했다.
이번 선거는 콜롬비아에서 인플레이션과 불평등이 확산되는 것에 대해 불만이 커지는 와중에 치러졌다. 이는 지난 달 대선 1차 투표에서 유권자들은 오랜 기간 집권해온 중도 및 우파 성향의 정치인들에게 등을 돌리고 페트로와 마르케스를 결선 투표 후보자로 선택했다. 외신들은 페트로의 등장에 대해 유권자들 사이에 변화에 대한 열망이 커져가는 가운데 남미에서 가장 최근 이뤄진 좌파 정치인의 승리라는 분석을 내놨다. 현 두케 대통령이 미국과 밀월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페트로의 취임으로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중남미에서는 연달아 좌파 성향의 대통령이 집권해 제2차 ‘핑크 타이드’(pink tide)가 도래할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1998), 브라질의 룰라(2002) 등 1998년부터 2000년대에 중남미 국가 여러 곳에서 좌파 정권이 집권하며 이를 핑크 타이드라 불렀었는데, 2010년대에 들어서며 다시 우파 정권이 확산되면서 이 흐름은 옅어졌다. 하지만 2018년 말 이후 멕시코·아르헨티나에 이어 지난해 칠레·페루·온두라스까지 줄줄이 우파에서 좌파로 정권이 바뀌었다. 19일 콜롬비아에 이어 10월 대선을 앞둔 브라질에서도 좌파 후보가 우세를 보이면서 핑크타이드 재연 흐름이 분명해지고 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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