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그리스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아미니를 추모하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시위를 하고 있다. 아테네/AP 연합뉴스
22살 여성의 의문사로 촉발된 이란의 반히잡 시위가 유럽과 아메리카 등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24일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그리스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지난 16일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했다 체포돼 끝내 숨을 거둔 마흐사 아미니를 추모하며 “이란에서 자유를”이라 쓰인 손팻말을 높이 들었다. 시위에 참가한 이들은 가위와 바리캉을 들고 나와 직접 자신과 서로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란과 국경을 맞대댄 이라크 쿠르드족 자치구 수도 아르빌의 유엔(UN) 사무소 앞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아미니와 같은 민족인 쿠르드족 시위 참가자들은 검은 천을 넓게 깔고 숨진 이로 상징되는 인물을 눕힌 뒤 장미꽃과 추모 사진들을 하나하나 늘어 놓으며 죽음을 애도하는 모의 연극을 진행했다.
애도 물결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17일 아미니의 고향 쿠르디스탄에서 처음 시작된 시위는 곧바로 수도 테헤란 등 국내 전역으로 번졌다. 20일엔 튀르키에 이스탄불의 거리, 21일엔 유엔(UN) 총회가 열린 미국 뉴욕 유엔본부 앞에서 집회가 열렸다. 24일엔 스웨덴 스톡홀름에 자리한 스웨덴 외교부 건물 앞, 미국 메사추세츠 보스톤의 보스톤 커먼 공원에서도 사람들이 모였다. 이란인뿐 아니라 현지인들도 집회에 나와 아미니의 죽음을 애도했다.
일주일째 접어든 이란의 반히잡 시위는 24일 이란 국영 티브이 집계 기준으로 사망자가 총 41명에 이르는 등 더욱 격화되고 있다. 이란 전국 31개주에서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하며 북부 길란주에서만 여성 60명 등 시위대 700여명 체포됐다. 이란에서 2019년 연료값 인상으로 인한 대규모 시위와 강경 대응으로 무려 1500명이 숨진 참사가 발생한 뒤 최대 규모다.
이란 종교경찰이 22살 여성의 복장 위반을 문제 삼으며 시작된 이번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는 것은 미국의 오랜 제재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경제가 엉망이 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정부에 대한 불만이 치솟은 상황에 자유를 억압당한 여성들의 분노가 도화선 역할을 하며 시위가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다. 이란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반체제 운동가 알리네자드(Alinejad)는 24일 뉴욕에서 <에이피>(AP) 통신과 인터뷰를 갖고 “지금 이란 시민들은 가장 눈에 띄는 억압의 상징 중 하나에 항의하고 있지만, 이는 정권 전체에 대해 항의이기도 하다”며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이란 정권이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2014년부터 미국에서 반히잡 운동을 벌인 그는 “정권이 시위를 단속하든 인터넷을 차단하든, 이란 국민들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3일 이란 테헤란에서 히잡 착용을 강제하는 정부 의견을 두둔하는 수천명이 ‘친히랍 시위’에 나와 행진하고 있다. 이들은 행진 중 지난 17일 시위 발발 이후 일주일간 진압 과정에서 사망한 보안군을 추모했다. 테헤란/AFP 연합뉴스
친정부 세력들은 23일 수도 테헤란 등에서 조직적인 히잡 착용 찬성 맞불 집회를 열었다. 수천명 가까이 모인 친정부 시위대는 히잡을 착용하고 나와 이란 국기를 흔들며 “쿠란(이슬람 경전)을 위반한 자들은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사진을 들고 “우리는 지도자에 복종한다”고 외쳤다. 이튿날인 24일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전국을 휩쓸고 있는 시위에 대해 “이란의 안보와 평온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란 국영 티브이에 따르면, 라이시 대통령은 이번 시위를 ‘폭동’이라 칭하며, 친정부 시위에 대해선 “이슬람 공화국의 힘과 명예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한편, 이란에선 인터넷 접속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인터넷 접속차단 감시단체 ‘넷블록스’는 이번 주 최소 세 차례 모바일 인터넷이 중단됐다고 밝혔다. 넷블록스는 이란 내부의 시위 영상이 전 세계에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가 손을 쓰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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