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성이 붉게 물든 테헤란의 분수대 앞을 지나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새빨간 물이 가득한 공원 분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수염을 자르는 그림, 불길에 휩싸인 하메네이의 모습을 송출한 국영방송….
4주째로 접어든 이란 히잡 반대 시위에서 각종 퍼포먼스가 항거의 표현으로 쓰이고 있다. 지난 7일 트위터에는 이란 수도 테헤란 중심 시가지에 위치한 데인시주 공원 분수대 물이 붉게 물들어 있고 지나가던 시민이 이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의 영상이 올라왔다.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 물이 가득한 분수대는 파테미 광장 분수대와 예술가 공원 분수대 등 테헤란 시내 곳곳에서 발견됐다. 붉은 물 분수대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행위 예술로 알려졌다. 이 예술가는 지난달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게 붙잡한 뒤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 사건과 이 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반정부 시위를 당국이 유혈진압한 것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이런 행위 예술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위터 이용자들은 “피로 뒤덮인 테헤란” “정부의 폭력 진압에 대한 항거 표시다. 시위로 거의 150명 넘게 숨졌다” 등이라고 적었다.
아미니 의문사 뒤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히잡 반대 시위에 시민들은 풍자와 해학이 스며든 각종 그림과 춤도 선보이고 있다. 지난 6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열린 연대 시위에서는 시위 참여자가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수염을 자르는 그림을 그려 손팻말로 사용했다. 또한, 이날 같은 곳에서 열린 연대 시위에서는 이스라엘 유대인 여성들이 숨진 아미니를 지지하며 히잡을 쓰지 않고 추는 이란 전통 무용을 선보였다.
지난 6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열린 이란 히잡 반대 운동을 지지하는 연대 시위에서 한 시위참여자가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수염을 자르는 그림이 그려진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UPI 연합뉴스
지난 9일 이란 국영방송에서 뉴스 송출 중 해킹단체의 사이버 공격으로 방송 사고가 발생해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불타는 장면이 송출됐다. AFP 연합뉴스
8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이란 히잡 반대 시위에서 시위참여자들이 다양한 탈을 쓰고 나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를 조롱하는 그림을 내보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8일에는 정부를 옹호하는 입장에 있는 국영방송이 잠시 반체제 영상을 송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날 오후 9시께 국영방송 <채널 1번>(IRIB)과 <채널 6번>(IRNN)에서 긴급 뉴스가 시작된 뒤 갑자기 기존 방송이 중단되며 하메네이가 불길에 휩싸이고 아미니의 흑백 사진이 담긴 영상이 방영됐다. 영상 도중 시위 구호 “여성, 삶, 자유”를 외치는 군중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이 방송 사고는 ‘아달라트 알리’(알리의 정의) 라는 이름의 해킹 조직이 실행한 사이버 공격에서 비롯된 것으로, 11초간 진행되다 다시 국영방송의 뉴스 앵커가 등장하며 종료됐다고 <비비시>는 전했다.
지난 8일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이란 알자흐라 대학의 개강을 맞아 여학생들 앞에서 강연을 한 뒤 사진을 찍고 있다. 이란 대통령실이 배포한 사진. EPA 연합뉴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지난 8일 테헤란에 있는 알자흐라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기 초 기념 강연을 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라이시 대통령이 히잡을 쓴 여학생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어 언론에 배포했다. 이날 강연에서 라이시 대통령은 이란의 최근 시위를 지적하며 “‘적’들은 대학에서 그들의 사악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상상한다. 우리 학생들과 교수들은 경각심을 가지고 있기에 ‘적’들이 사악한 목표를 실현하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시 대통령의 강연이 진행되는 동안 캠퍼스의 학생들은 강연장 밖에서 “저리 가”, “꺼져”를 외치며 거세게 항의했다.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이란인권’(IHR)은 4주째 접어든 이번 시위로 지난 8일 기준 최소 185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 중 어린이 19명이 포함됐다고 덧붙였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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