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이탈리아의 새 총리 조르자 멜로니가 전 총리 마리오 드라기로부터 업무 인수인계를 뜻하는 종을 받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사상 첫 이탈리아 여성 총리인 조르자 멜로니가 총리 명칭 앞에 붙이는 정관사를 여성형 대신 남성형으로 쓰고 있어 젠더 논쟁이 일고 있다.
24일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멜로니 총리는 지난 23일 업무 개시일부터 총리 공식 명칭 ‘프레지덴테 델 콘실리오’(Presidente del Consiglio) 앞에 정관사 ‘일’(il)을 쓰고 있다. 이탈리아어에선 명사에 성별이 존재하는데 문법적으로 남성 명사 앞에 정관사 ‘일’(il)을, 여성 명사 앞에 정관사 ‘라’(la)를 붙인다. 하지만 멜로니 총리는 취임 이후 사용한 총리실 공문을 비롯해 지난 24일 의회에서도 정관사 ‘라’(la) 대신 ‘일’(il)을 선택했다.
논란은 총리실이 멜로니 총리를 지칭할 때 남성 명사 앞에 쓰는 관사를 사용해 달라고 언론사에도 공식 요청하면서 커졌다. 이탈리아 공영방송 <라이>(Rai) 최대 노동조합인 우시그라이는 이날 성명을 내고 “경영진은 멜로니 총리가 요청했다는 이유로 총리를 언급할 때 남성 관사를 써달라고 요구했다. 이는 ‘위험한 퇴행’이다”고 반발했다. 이어 우시그라이는 “라이의 기업 젠더 정책에 의하면 여성성이 존재하는 곳에는 언제나 여성 관사 형태를 써야 한다. 어떤 기자에게도 남성 형태를 쓰라고 강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멜로니는 지난달 25일 열린 총선에서 자신이 대표로 있는 극우정당 이탈리아형제들(FdI) 승리를 이끌었고 약 한 달 뒤인 지난 21일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총리로 취임했다. 극우 정당 대표인 멜로니는 의회에서 여성 할당제에 반대하며, 여성이 할당이 아닌 자신의 능력을 통해 최고 자리에 올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번에 꾸린 24명의 내각에 단 6명의 여성을 임명했다.
중도 좌파 성향의 라우라 볼드리니 전 하원의장은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정당 ‘이탈리아형제들’(FdI)의 명칭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볼드리니 전 하원의장은 “멜로니 총리의 정당명은 ‘자매들’(Sisters)이 빠진 ‘이탈리아형제들’이다. 이 정당의 대표가 여성 관사를 사용하는 것은 무리인가”라고 반문했다.
이탈리아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기관 ‘아카메디아 델라 크루스카’의 클라우디오 마라치니 회장은 이탈리아 통신사 <아드크로노스>와의 인터뷰에서 “문법적으로는 여성이 맡은 직책에 여성 관사를 사용하는 것이 맞지만, 이념적인 이유나 세대에 따른 인식 차이로 전통적 남성 형태를 선호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할 권리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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