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에이에스엠엘’(ASML)의 직원들이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노광 장비를 조립하고 있다. 펠트호번/ASML 로이터 연합뉴스
세계 최고 수준의 핵심 반도체 장비 업체를 보유한 네덜란드가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기술 통제에 발맞춘 수출 통제 조처를 공식화했다. 이 조처가 중국에 생산 시설을 갖춘 한국 반도체 업체들에게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세부 사안은 공개되지 않았다.
리셔 스레이네마허르 네덜란드 무역부 장관은 8일(현지시각)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올여름 이전에 국가 안보를 위해 새로운 반도체 기술 수출 규제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하지만, 이날 수출 통제 대상 국가가 어디인지, 통제 대상 네덜란드 기업이 어디인지는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네덜란드 정부와 일본 정부는 지난 1월27일 미국에서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주재로 벌어진 협상에서 중국에 대한 반도체 기술 수출을 통제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미 정부는 당시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해 합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네덜란드 무역부의 이날 보고서는 이 합의 내용을 공식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네덜란드 수출 통제의 핵심 대상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업체인 ‘에이에스엠엘’(ASML)의 노광 장비가 될 전망이다. 노광 장비는 레이저로 실리콘 표면에 전자회로를 새겨넣는 것으로, 이 업체는 최첨단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와 현재 가장 널리 쓰이는 심자외선(DUV) 장비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특히, 극자외선 노광 장비는 이 회사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지난 2019년 극자외선 노광 장비의 중국 수출을 금지한 바 있어, 새 규제 조처는 심자외선 장비를 대상으로 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에이에스엠엘은 심자외선 장비 가운데 가장 성능이 좋은 장비가 수출 허가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이 회사가 심자외선 장비를 수출해온 중국 업체 가운데 첨단 반도체 제조사는 없다. 다만, 이 회사의 최대 고객인 한국의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는 중국에 대규모 생산 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로이터>는 지적했다. 이 두 기업의 중국 내 공장이 원하는 장비를 수입하는데 차질이 벌어질 수 있게 된 셈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기존에 판매한 반도체 장비의 유지·보수 지원 업무도 규제할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이 회사가 2014년 이후 지금까지 중국에 수출한 심자외선 장비는 80억유로(약 11조1천억원) 규모에 이른다. <로이터>는 일본 정부도 이르면 다음주 중으로 반도체 장비 수출 관련 최신 정책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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