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현지시각) 워싱턴포스트(WP)는 일본 도쿄 서부의 오렌지 데이 센가와에서는 한달에 한번 점심시간에 치매를 앓는 노인들이 손님들을 맞는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 누리집 갈무리
“어서오세요!”
일본 도쿄에 사는 85살 종업원 모리타 토시오가 카페를 찾은 손님들을 반갑게 맞았다. 그러나 주문을 받을 차례가 되자 상황은 복잡해졌다.
모리타는 주문서도 깜빡 잊은 채 테이블로 향했고 손님이 주문한 케이크 한 조각을 엉뚱한 손님에게 내놓기도 했다. 또다른 손님은 자리에 앉은 뒤 물 한잔을 마실 때까지 16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이 카페를 찾은 그 누구도 불평하거나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오히려 손님들은 함께 웃으며 그의 실수를 이해했다.
19일(현지시각) 워싱턴포스트(WP)는 ‘주문을 틀리는 카페’로 알려진 일본 도쿄 서부의 오렌지 데이 센가와에서 흔히 펼쳐지는 풍경이라고 소개했다.
12석 규모의 이 카페는 지난 4월부터 한달에 한번씩 낮 12시부터 오후 2시30분까지 치매를 앓는 노인들이 손님들을 맞는다. 주방 근처에는 잠시 쉴 수도 있게 의자도 따로 마련돼 있다.
함께 일하는 자원 봉사자들은 직원들이 주문서에 손님들의 주문을 받아 적을 수 있게 돕는다. 자리 번호를 기억하기 어려운 직원들을 배려해 테이블 가운데에는 다른 색깔의 꽃이 한 송이씩 놓여 있다.
‘주문을 틀리는 카페’는 현재 카페를 운영하는 주인이 치매를 앓던 자신의 부모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카페 일을 맡겨달라는 전 주인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문을 열게 됐다. 현재 이 카페는 지역 당국과 손잡고 지역의 치매 환자들을 직원으로 뽑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카페가 치매를 앓는 사람들이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필요한 존재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퇴행성 신경질환인 치매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일(현지시각) 워싱턴포스트(WP)는 일본 도쿄 서부의 오렌지 데이 센가와에서는 한달에 한번 점심시간에 치매를 앓는 노인들이 손님들을 맞는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 누리집 갈무리
보험 판매원으로 일하며 오랫동안 지역 협회 회장도 도맡았던 모리타 역시 2년 전 갑자기 이웃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계속 일을 하고 싶었지만 일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워싱턴포스트에 “이곳은 정말 재밌다”며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젊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출근날 아침이면 혹시라도 지각을 할까 봐 부인에게 10분마다 출발 시각을 묻는다. 이내 출발 시각을 잊어버리지만 그의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워싱턴포스트에 “그는 항상 이곳에 오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며 “한 달에 한 번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16살 된 딸과 함께 이 카페를 찾은 아리카와 토모미(48)는 워싱턴포스트에 “아버지와 함께했던 순간이 떠올라 눈물이 날 뻔했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도 4년 전 치매를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아리카와는 자신에게 ‘감사합니다’라며 미소를 짓던 직원을 바라보며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항상 어려운 일이 많지만 서로의 마음이 통했다는 걸 알 수 있는 순간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10명 가운데 1명이 80살 이상일 만큼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다. 일본 총무성이 이날 공개한 인구 추계를 보면, 65살 이상 고령자는 전체 인구 1억2442만명 가운데 3523만(29.1%)에 이른다. 역대 최고치다.
치매를 앓는 고령자도 증가하고 있다. 일본 후생성은 600만명 이상이 치매를 앓고 있고, 오는 2025년에는 65살 고령자 5명 가운데 1명꼴인 730만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카페 운영을 돕는 이와타 유이는 워싱턴포스트에 “많은 노인이 요양원에 있거나 집에만 격리돼 있기 때문에 우리의 시도가 치매를 앓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길 바란다”며 “사람들이 치매 환자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면 치매 환자들도 외출하기가 더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