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서 일하다 타이로 귀환한 노동자가 지난달 12일 타이 수완나품 국제공항에서 현지인과 얼싸 안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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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전쟁과 상관이 없습니다. 왜 타이 사람을 해치고, 내 아들을 납치하나요?”
타이의 평범한 어머니인 왓사나 요잠파는 요즘 애끓는 마음을 말로 다 드러내지 못한다. 지난달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 지역을 기습공격 할 때 아들 아누차 앙카우가 인질로 끌려갔기 때문이다. 하마스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한 사진을 보면, 복면을 쓴 무장대원들이 당장이라도 아들을 쏠 듯 소총으로 위협하고 있다.
앙카우가 ‘가족이 살 집을 마련하겠다’며 고향을 떠나 이스라엘로 떠난 것은 2년 전이었다. 일터는 가자지구 접경 지대에 자리한 아보카도 농장이었다. 아들은 얼마 전 전화 통화에서 “집 외벽은 현대적인 회색풍으로, 딸의 방은 보라색으로 꾸미자”고 말했다. 이게 앙카우가 가족과 나눈 마지막 통화였다고 뉴욕타임스는 5일(현지시각) 전했다.
앙카우처럼 이스라엘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다 하마스 인질로 끌려간 타이인은 무려 54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대부분 한달이 지나도록 생사 여부조차 묘연한 상태다.
외국인 인질 가운데 타이인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이스라엘의 농촌 이주노동자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일상적인 무장 도발 위험이 있는 접경지역 키부츠(농업 공동체)에 자국민 배치를 최소화하고, 싼값에 노동력을 부리려고 동남아시아 인력을 대거 들여왔다. 특히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의 점령 정책에 저항해 1989년부터 1993년까지 1차 인티파다(봉기)를 일으키자 이런 움직임은 더 빨라졌다. 이스라엘 정부가 키부츠에서 일하던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을 대거 쫓아냈기 때문이다.
하마스의 도발이 잦은 곳이었지만, 타이 노동자에겐 이스라엘 일반 가정에선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공습 대피소’조차 제공되지 않았다. 대신 컨테이너나 차량형 숙소인 카라반 같은 곳에 임시로 몸을 숨겨야 했다. 이들이 일하는 곳 역시 인구밀도가 낮은 시골이어서 이스라엘의 로켓 요격 시스템인 ‘아이언돔’이 미치지 않았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지난 3일 “하마스가 주도한 공격으로 아시아 이주노동자들이 희생되고 있다”며 “이스라엘에서 일하는 타이 노동자은 (그렇지 않아도) 저임금, 과도한 노동 시간, 위험한 근무 환경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꼬집었다. 현재 이스라엘에서 일하는 타이인은 불법으로 체류하는 7천여명을 포함해 3만여명에 이른다. 하마스의 공격이 이뤄지던 지난달 7일에도 수천여명이 가자지구 근처 농장에서 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타이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스라엘로 향하는 까닭은 두 나라의 임금 차이 때문이다. 타이 내 하루 일당이 10달러 정도지만, 이스라엘에선 50달러 수준이다. 뉴욕타임스는 “타이인이 가장 탐내는 해외 일자리가 고국보다 임금이 최소 5배 이상 높은 이스라엘”이라며 “그러나 현지에 오고 난 뒤 자신들이 일하는 오렌지·딸기·아보카도 농장이 가자지구에서 쏘는 로켓 사정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설명했다.
전쟁 개시 뒤 위험이 고조되자 타이 정부는 귀국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 보상금 5만 바트(약 183만원)와 저리 대출을 해주고 있다. 지난달 30일 타이 정부가 제공한 귀국 항공편을 통해 7천명 이상이 귀국했다. 하지만 상당수는 이스라엘로 오는 데 진 빚을 갚기 위해 떠나지 못하는 신세다. 이스라엘 정부도 이번 전쟁 이후 귀국하려는 타이인들에게 추가적인 금전 혜택과 안전 강화 조처를 약속하며 현지에 남아주기를 권고하고 있다. 타이 현지 언론 피비에스(PBS)는 “이스라엘로 가기 위해 12만바트(440만원)을 빌려야 했다”는 한 타이 노동자의 사연을 소개했다.
타이 정부는 인질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나서고 있지만 아직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타이 현지 언론 피비에스는 5일 타이 국회 관계자 말을 따 “하마스에 인질로 잡힌 모든 타이인의 안전을 확인했다”며 “이란 당국을 통해 하마스가 일정에 따라 타이 인질 석방을 준비하고 있다고 알려왔다”고 보도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