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17일(현지시각) 미국 덴버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국제온라인뉴스협회(ONA) ‘ONA 16 컨퍼런스’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기자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이제 공중을 떠다니는 경량 무인카메라(드론)가 쉴 새 없이 사진과 동영상을 편집국으로 전송하는 것이 미래 뉴스룸의 흐름이 될 것이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과 360도 비디오, 챗봇(chatbot·문자 대화를 통해 사람에게 답변하는 인공지능 커뮤니케이션 소프트웨어)은 스토리텔링과 실시간 팩트 체킹, 그리고 독자와의 실시간 쌍방향 대화 등을 위해 편집국의 필수 기자재가 될 것이다.”
지난 17일(현지시각) 국제온라인뉴스협회(ONA·Online News Association)가 미국 덴버에서 개최한 ‘제16회 ONA 콘퍼런스’의 한 세션에서 쏟아진 말들이다. 1999년 설립된 국제온라인뉴스협회는 온라인 뉴스와 관련된 기자, 프로듀서, 디자이너, 에디터, 사진기자, 기술 인력 등으로 구성된 국제 비영리단체로 매해 전세계 디지털 저널리즘의 동향과 전망 등을 짚어보는 콘퍼런스를 각 도시를 돌아가면서 개최한다. 올해 콘퍼런스(9월15~17일)에는 세계 40개국 2014명의 기자, 프로듀서, 교수 그리고 미디어 관련 학생들이 모여 열띤 토론과 교제를 했다. 3일간의 콘퍼런스에는 모두 100개에 이르는 다양한 세션들이 같은 시간에 4~5개가 동시에 열리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때문에 참석자들은 대학 수업을 듣는 것처럼 프로그램 시간표를 보고 강의실을 옮겨가는 모습이 3일 내내 이어졌다. 강사 대부분은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시엔엔>(CNN), <가디언> 등 언론 현장의 기자들이 자신들이 개별 회사에서 추진해왔던 디지털 실험의 성과와 한계 등을 소개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대학교수, 인터넷 테크니션, 페이스북과 유튜브의 뉴스 관계자들이 강연자로 나서기도 했다.
지난 15~17일(현지시각) 미국 덴버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국제온라인뉴스협회(ONA) ‘ONA 16 컨퍼런스’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기자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 비디오 퍼스트 자신이 속한 언론사가 방송사냐, 신문사냐라는 구분은 컨퍼런스 현장에선 큰 의미가 없어보였다. <뉴욕 타임스>는 가상현실 프로그램의 성과를 이야기했고, <시엔엔>(CNN)은 방송이 아니라 소셜미디어에서의 ‘CNN 디지털’ 상황을 이야기하는 식이었다.
언론연구기관인 ‘퓨처 투데이 인스티튜트’의 개설자인 에이미 웹은 강연에서 “가까운 미래에 모든 언론사는 ‘영상’을 다루는 기관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는 “세계 70억 인구 모두가 카메라를 갖고 자신과 주변을 찍고 이를 전세계에 전송할 수 있게 된다”며 “그때 기존 미디어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뉴욕 타임스를 필두로 각 언론사가 진행하고 있거나 준비 중인 가상현실 프로그램은 이런 ‘영상물’의 확대판이라 할 수 있다. 웹은 가상현실과 360도 비디오에 대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가상현실 프로그램이 작성한) 난민 위기, 시카고 경찰 총기 사건, 기후변화 등의 주제에 대한 스토리텔링 기사를 가장 잘 보여준 효과적인 도구”라며 이런 분위기가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3일간의 콘퍼런스에서 가상현실 관련 성과, 새로운 기술 등을 소개하는 세션이 10개가 넘었다.
피지 사이모 페이스북 소셜네트워크 디렉터는 지난 15일 강연에서 ‘페이스북 라이브, 360’을 소개하면서 “앞으로 페이스북 뉴스피드는 더욱 비디오에 집중될 것”이라며 “특히 단순 영상물보다는 실시간 영상물, 그리고 가상현실 등 기술이 더욱 부가되는 형태로 확장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페이스북 영상물은 1년 전에는 하루 10억뷰였는데, 현재는 하루 80억뷰에 이른다. 신문사인 뉴욕 타임스의 영상물도 지난 5월 2600만뷰에서 6월 5540만뷰, 7월 5810만뷰 등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콘퍼런스에 참석한 구글은 15일 구글뉴스랩과 존 앤드 제임스 나이트 재단이 제휴해 ‘저널리즘 360’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상현실 스토리텔링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 내년에 50만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피지 사이모(오른쪽) 페이스북 소셜네트워크 디렉터가 15일 강연에서 페이스북의 방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 가상현실(VR) 에디터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가상현실 프로그램’이 투자에 비해 효과가 적지 않으냐’는 의문에 대해 “뉴욕 타임스 안에도 회의론이 많다. 지금 가상현실이 뉴스에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다”라면서도 “하지만 나중에 이를 준비하려면 그땐 이미 늦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해 6월 가상현실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8~11월 실제 프로그램을 준비해 10월에 처음 띄워 지금까지 10편을 내보냈다고 그는 소개했다.
지난해부터 <뉴욕 타임스> 가상현실(VR)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제나 피로그 <뉴욕 타임스> VR(Virtual Reality) 에디터
■ 소셜 퍼스트 ‘소셜 퍼스트’는 또다른 화두였다. 과거의 ‘일방향 소통식’ 기사와는 달리 독자들과의 ‘대화형 저널리즘’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는 기사에 대한 댓글을 관리하고 이에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코럴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이끄는 앤드루 로소스키 프로젝트 리더는 ‘한국에선 댓글 문화가 미국과 달리 진영 간 다툼으로 상황이 열악한 편’이라는 질문에 “한국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 언론은 독자들의 댓글을 사실상 방치한 것 아니냐. 언론사가 반응하고, 응대하면, 가치있는 댓글과 그렇지 않은 댓글들이 분리될 것이고, 전반적인 댓글 문화도 향상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의 ‘코랄 프로젝트’를 이끄는 앤드루 로소스키 ‘모질라 그룹’ 프로젝트 리더
애슐리 코디아니 CNN 소셜미디어 디렉터는 강연에서 미국 대선을 언급하면서 “더이상 텔레비전 화면으로 미국 대선을 온전히 다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우리의 목표는 대선 텔레비전 토론이 진행되는 동시에 (시엔엔) 디지털에서 독자들끼리 논쟁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애슐리 코디아니 CNN 디지털 소셜미디어 디렉터
‘소셜 퍼스트’의 또다른 형태로는 독자 맞춤형 기사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하나의 기사를 전통적인 피처성 긴 기사 외에도 짧은 요약형 기사, 그리고 팟캐스트, 영상 등 다양한 형태로 변주시켜 내보내고, 독자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맞는 것을 취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즉, “저널리즘은 서비스”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서비스는 모든 이들에게 동일한 제품을 주는 것이 아닌, 각자에게 각자의 필요에 맞는 형태로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커니 저널리즘 스쿨의 제레 헤스터 뉴스디렉터는 “이제 뉴스는 개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 데일리 뉴스>의 크리스틴 리 디지털 디렉터는 ‘안전한 어린이집’이라는 인터렉티브 지도 기사를 소개했다. 뉴욕 지도에 어린이집의 모든 통계를 넣고 이를 점수화해 해당 우편번호를 클릭하면 가장 가까운 곳의 어린이집의 안전도를 보여주는 형태다. 뉴욕 데일리 뉴스는 이를 계속 업데이트하고 있다.
■ 팩트 퍼스트 이처럼 새로운 기술과 방향의 어지러움 속에도 팩트의 중요성과 정확성, 뉴스의 투명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여전했다. 강연자들은 이제 각종 데이터 등으로 무장한 뉴스는 더욱 투명해져야 하고, 뉴스 조직도 마찬가지라며, “저널리스트들은 팩트에 더욱 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거와 달리 수많은 ‘증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팩트 체킹’의 중요성도 더욱 커질 것이라고 지적됐다. 웹은 “다음 선거 때는 로봇을 이용한 릴타임 팩트체킹이 상시화될 것”이라며 앞으로 인공지능의 미디어 활용도 먼저 팩트체킹 분야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인터랙티브 뉴스에서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품질 제고를 지적하기도 했다. 뉴욕 데일리 뉴스의 리 디지털 디렉터는 “테스트, 테스트, 또 테스트”라고 말했다. 한 번의 실수가 신뢰성을 잃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제 언론산업의 위기와 기술발달로 인해 투자의 범위와 다양성이 점점 확대되면서 언론사간 협력은 필수적이라는 점도 거론됐다. 인터렉티브 뉴스를 위해 <뉴욕데일리뉴스>는 탐사전문매체인 <프로퍼블리카>와 데이터를 공유했고, 전통적인 경쟁자인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가 댓글 프로그램 제휴 작업을 벌이고 있다. 또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도시의 홈리스 문제와 관련된 탐사보도를 10여개 지역방송사와 신문사가 한데 모여 별도의 조직을 만들어 기사화하기도 했다는 점이 소개되기도 했다.
한 세션이 끝나면, 참석자들이 강연자에게 다가가 줄을 서서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는다. 사진은 <가디언 유에스>가 자신들의 디지털 전략을 소개한 뒤, 리 글렌딩 에디터(사진 왼쪽) 등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올해에도 이번 콘퍼런스 세션의 주제는 다양하고, 외형은 화려한 디지털 기술이 먼저 눈을 끌었지만, 결국 정확과 객관에 대한 엄정함을 잃지 않는 저널리즘의 기본이 흔들려선 안 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었다.
<한겨레>는 올해 ONA 콘퍼런스에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선발 과정과 개별 지원을 통해 다녀왔다.
덴버/글·사진 권태호 기자
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