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폐막한 주요·신흥 20개국(G20) 정상회의는 화려한 ‘말잔치’에 그치던 기존 국제 정상회의와 달리, 나름대로 실질적인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전세계가 경기후퇴에 맞서 함께 뭉친” 모두의 승리라지만, 더 큰 성과를 거둔 쪽은 있기 마련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국제통화기금(IMF) 그리고 중국이 이번 회의의 ‘승리자들’로 꼽힌다.
■ 사르코지·메르켈 금융규제 이끈 ‘쌍두마차’
이번 정상회의 최대 쟁점은 경기부양 확대와 금융규제 강화 중 무엇이 우선이냐였다. 공동성명에는 프랑스와 독일이 강조한 금융규제의 구체적 방안에 무게가 실렸다. 금융안정포럼(FSF)을 금융안정위원회(FSB)로 확대 개편하고, 헤지펀드·조세피난처·신용평가사에 대한 규제·감독을 강화하는 내용 등이다. 프랑스와 독일이 정상회의에 앞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공허한 회담은 안 된다. 규제 강화는 양보하지 않겠다’며 압박한 결과물이다. 반면, 미국이 주장한 경기부양 확대는 “지속적인 재정 노력을 다짐한다”는 추상적 내용만 포함됐다. 사르코지는 “기대 이상의 결과다. 무척 만족한다”고 밝혔다. <워싱턴 포스트>는 3일 “사르코지와 메르켈이 구속 없는 영미식 자본주의를 상대로 승리를 선언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카지노 자본주의’에 고삐를 채우는 유럽식 모델의 승리라는 것이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도 “새로운 세계 질서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 IMF 재원 3배 확대…경제위기로 위상 우뚝
국제통화기금의 재원이 현재의 3배인 7500억달러로 확대된다. 이 가운데 특별인출권(SDR)의 규모를 2500억달러 확대한다. 미국 등 선진국 중심의 지배구조는 신흥국과 개도국에 더 많은 지분을 양보하는 구조로 재편된다. 국제통화기금은 금융안정위원회와 함께 국제경제 및 금융감시기구 역할까지 수행하게 됐다.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뒤 국제통화기금은 ‘군림하는 신자유주의 전도사’로 비판받았지만, 역설적으로 이번에 자유방임적인 세계 금융자본을 감독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또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국제금융기구로 발돋움했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총재는 “오늘 국제통화기금이 진정으로 돌아왔다”고 반겼다. <이코노미스트>는 2일 “세계경제 호황으로 실효성이 떨어졌던 이 기구의 대반전”이라고 평가했다.
■ 중국 ‘달러 패권 도전’ 경제대국 힘 드러내
중국은 국제 금융질서 개혁을 강력히 촉구함으로써, 떠오르는 경제대국의 힘을 과시했다. 특히 기축통화 대체를 둘러싼 논란을 확산시켜 미국의 달러 패권에 파열구를 내는 데 성공했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신흥국의 대변자’를 자처하며 국제 금융기구에 대한 발언권을 확대하는 데 주력했다. 이런 요구는 국제 금융기구를 개혁하는 데 있어서 “세계 경제의 변화와 세계화의 새로운 도전을 반영한다”는 공동선언에 스며들었다. 중국이 국제통화기금에 400억달러를 출연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이런 행보의 연장선에 있다. 중국은 또 미국과의 양자 정상회담에서 경제와 외교안보 분야를 통합한 새로운 전략대화의 틀을 만들기로 합의함으로써 국제질서의 한 축으로 떠올랐음을 과시했다. 미국의 유일지배체제가 미국과 중국의 견제와 협력을 중심으로 한 다극체제로 변할 것임을 예고한다.
김순배 기자, 베이징/유강문 특파원marcos@hani.co.kr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 총재가 2일 G20 정상회의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런던/신화 연합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과 왕치산 중국 부총리가 2일 G20 정상회의에서 만났다. 런던/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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