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블래터
“위기? 무슨 위기?”
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FIFA·피파) 회장은 30일 홀로 연 기자회견에서 “우린 위기가 아니라 약간의 어려움에 처했을 뿐이다. 그런 어려움은 축구연맹 안에서 해결될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럴 만하다. 차기 피파 회장 선거의 유일한 경쟁자였던 모하메드 빈 함맘 아시아축구연맹 회장이 ‘투표 매수’ 혐의로 후보를 사퇴해, 블라터가 경쟁자 한 명 없이 1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리는 회장 선거에 단독으로 나서 4선이 확정적이다. 1998년부터 피파 회장직을 맡아왔으니 17년을 국제 축구계의 ‘제왕’으로 군림하는 셈이다.
블라터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피파에 불었던 변화의 바람도 당분간 잦아들게 됐다. 지난해 월드컵 개최지 선정과 관련한 뇌물 의혹으로 내홍을 겪었던 피파는 블라터의 재선으로 지금까지와 별로 다르지 않은 형태로 운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피파는 월드컵 개최와 후원 등을 통해 엄청난 이권을 휘두르지만 자세한 내역은 거의 공개되지 않을 정도로 폐쇄적이다.
월드컵 개최지 선정 때마다 뇌물이 오갔다는 의혹이 불거졌지만 피파 윤리위원회는 제대로 의혹을 파헤쳐 본 적도 없다는 비판이 높다. 지난달에도 일부 피파 집행위원이 2022년 월드컵 개최지를 카타르로 선정하는 과정에서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졌지만 조사는 진척이 없다.
그러나 피파의 부패 문제가 조용히 해결되리란 보장은 없다. 우선 블라터에게는 ‘혐의 없음’을, 함맘에게는 ‘자격 정지’를 내린 이번 뇌물 조사의 신뢰성에 의문이 일고 있다. 함맘은 30일 “윤리위원회가 집행부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다”고 격하게 반발했다. 잉글랜드축구협회의 데이비드 번스타인 회장도 피파 회장 선거를 하루 앞둔 31일 “블라터에 맞서는 믿을 만한 개혁 후보가 나올 수 있도록 선거를 연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재 스위스 정부는 피파의 세금 탈루와 반부패 협약 위반건을 조사중이다. 카타르 월드컵 뇌물 수수 의혹을 제기했던 영국 하원의원 데이미언 콜린스도 최근 각국 정부를 상대로 피파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중이라고 <가디언> 등이 전했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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