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도쿄 외환시장에선 엔·달러 환율이 147엔대를 넘어서는 등 엔화 가치가 32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도쿄/EPA 연합뉴스
일본 엔화 가치(엔-달러 환율)가 32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14일 도쿄 외환시장에선 엔·달러 환율이 147엔대를 넘어서는 등 엔화 가치가 일본의 ‘거품경제’ 붕괴되기 시작할 무렵인 1990년 8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13일 발표된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8.2%)이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가 나오자,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강해지며 ‘엔저’ 흐름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미·일 금리 차가 계속 커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엔저 흐름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모습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거품경제 이래 엔화 약세 흐름은 일본 경제의 구조적 약점을 상징한다”고 진단했다.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상은 1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외환시장 동향을 높은 긴장감으로 주시하고 있다. 과도한 변동에는 적절한 대응을 취하겠다”고 시장 개입 가능성을 재차 밝혔다. 하지만 시장 관계자는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에 “일본이 단독으로 개입해도 효과는 제한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22일 24년 만에 달러를 팔아 엔화를 사들이는 외환시장 개입에 나섰지만, ‘약발’이 오래가지 못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금융완화 유지’ 메시지를 다시 강조하면서 엔저 흐름을 바꾸긴 힘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스즈킨 재무상과 같이 기자회견에 나선 구로다 총재는 “일본의 소비자물가가 2.8% 수준이지만 내년도 이후에는 2%를 밑돌 것이다. 물가목표의 안정적 실현을 위해 금융완화를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구로다 총재는 “일본 경제가 미국 등에 비하면 회복 속도가 느려, (아직) 지원이 필요하다. 금리를 올릴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현재 경제물가에 대해 가장 적절한 금융정책을 생각한다면 금리를 올리는 것은 필요 없고, 적절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엔저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자재 가격 인상 등이 겹치면서 가계와 기업의 고통은 커지고 있다. 기업들이 거래하는 물품가격 동향을 나타내는 일본 기업물가지수가 9월 기준 116.3으로 1년 전보다 9.7% 상승해 최고치를 경신했다. 소비자물가지수(신선식품 제외)도 8월 2.8%로 5개월 연속 2%를 웃돌고 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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