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엔숍으로 대표되는 저가 브랜드와 가격·품질에서 차별화를 시도하던 일본 무인양품이 도쿄 미타카역 상가 안에 ‘무인양품 500엔숍’을 열었다.
18일 저녁 7시 일본 도쿄도 서부 외곽에 자리한 미타카역 상가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 층 더 올라가면 새로운 형태의 무인양품 점포가 나온다. 100엔숍으로 대표되는 저가 브랜드와 가격·품질에서 차별화를 시도하던 무인양품이 지난달 30일 ‘무인양품 500엔숍’을 연 것이다. 한국에서도 친숙한 무인양품 42년 역사상 첫 저가형 독립 매장이다.
옷·가구·가전제품 등 다양한 물건을 파는 기존 점포보다 면적(181.82㎡)은 작지만, 소비자들이 생활하면서 꼭 필요한 3000여개 상품을 취급한다. 이 가운데 70% 정도인 2000여개 품목이 500엔(약 4800원) 이하의 가격이다. 카레 등 식품을 비롯해 문구·속옷·양말·화장품, 욕실·주방용품 등을 500엔 ‘원 코인’(동전 하나)으로 쇼핑이 가능하도록 부담을 낮췄다. 상품을 진열할 때도 저렴한 가격을 큼직하게 표시해 눈길을 끌었다.
신주쿠로 직장을 다니는 30대 여성은 “꼭 무엇을 사야겠다는 생각보다 퇴근길에 편의점 가듯이 편하게 들르고 있다. 가격이 대부분 500엔 이하라 부담이 덜하다”고 말했다. 이 점포는 출입문이 없는 오픈 형태라 주변 상가를 오가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발을 멈추고 물건을 살펴볼 수 있다. 7일엔 오사카 이바라키시에 두번째 ‘무인양품 500엔숍’이 문을 열었다.
무인양품 500엔숍에는 소비자들이 생활하면서 꼭 필요한 3000여개 상품을 취급한다. 이 가운데 70% 정도인 2000여개 품목이 500엔(약 4800원) 이하의 가격이다.
무인양품이 콧대를 꺾고 이번에 저가형 매장을 새로 만든 것은 최근 급등한 일본 물가 탓이다. 도무지 물가가 오르지 않아 ‘디플레’가 생활화됐다는 자조 섞인 한숨이 나오는 일본에도 변화가 시작됐다. 지난 2월 말 터진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에너지·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엔 약세가 심화되며 물가가 크게 오른 것이다. 8월 소비자물가지수(신선식품 제외)는 1년 전보다 2.8% 상승하는 등 7년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10% 안팎으로 오른 미국·영국 등에 비하면 양호한 수준이지만 일본인들이 느끼는 충격은 상당하다. 일본 경제의 침체가 시작된 ‘잃어버린 30년’ 이후 처음 겪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전국적 노동조합인 ‘렌고’는 내년 춘투(봄철 임금협상) 때 5% 임금 인상을 실현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최근 물가가 급등하면서 소비자들 사이에 가격이 저렴한 상품을 찾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수요를 끌어들이기 위해 무인양품에서 ‘저가형 매장’을 만든 것”이라고 전했다. 나가하라 다쿠오 무인양품 영업본부장도 지난달 30일 ‘무인양품 500엔숍’ 출점에 맞춘 기자회견에서 “물가가 급등하고 있지만 저렴하고 품질이 좋은 상품을 소비자들에게 계속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무인양품은 내년 2월 말까지 도심역 등을 중심으로 500엔숍을 30곳으로 늘리고, 이후 매년 20곳씩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내년 봄·여름에는 500엔 이하 상품 100여개를 새롭게 개발해 출시할 방침이다.
도쿄/글·사진 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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