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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고노 담화 30년…일 우익 집요한 공격에도 끝내 살아남다

등록 2023-08-04 05:01수정 2023-08-04 08:08

일 정부 겉으로는 “계승한다” 외치며
속내로는 ‘아베 담화’로 사실상 대체
살아남은 담화 근거로 이행 촉구해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2021년 8월 `김학순의 용기가 세상을 깨우다! 이제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의 주제로 제9차 세계일본군‘위안부’기림일 맞이 세계연대집회(1인시위)가 열리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2021년 8월 `김학순의 용기가 세상을 깨우다! 이제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의 주제로 제9차 세계일본군‘위안부’기림일 맞이 세계연대집회(1인시위)가 열리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93년 8월4일. 퇴진을 눈앞에 둔 미야자와 기이치 내각의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은 이날 이후 일본의 전후 ‘반성적 역사 인식’의 근간이 되는 중요 담화를 발표했다.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큰 고통을 받았다는 김학순 등 피해자들의 호소를 정면으로 받아들여 위안부 문제가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임을 인정하고 “이른바 종군위안부로 많은 고통을 겪고 몸과 마음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힌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로부터 3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담화는 아베 신조(1954~2022) 전 총리 등 일본 역사 수정주의 세력으로부터 길고 집요한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를 뿌리치고 끝내 살아남았다.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는 지금도 ‘담화를 계승한다’는 것이다.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3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문제에 관한 정부의 기본적 방침은 1993년 8월4일 내각관방장관 담화를 계승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속내는 크게 다르다. 일본 정부는 ‘역사 교육·연구를 통해 위안부 문제를 오래 기억하겠다’는 담화의 약속을 사실상 크게 훼손한 상태다. 지난 2월 출간된 ‘아베 신조 회고록’을 보면, ‘겉 다르고 속 다른’ 일본의 맨얼굴이 가감 없이 등장한다. 아베 전 총리는 2017년 8월 고노 담화의 주인공인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의 아들인 고노 다로를 외무상에 임명할 때 그를 사무실로 불러 “아버지와는 완전히 다른 입장에서 일해주게. 고노 담화의 ‘고’라는 글자도 언급하지 말게”라고 말했다. 또 “아베 정권은 고노 담화를 수정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진 않지만 그게 좋은 것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며 “모든 것은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다. 70년 담화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말해주게”라고 덧붙였다. 2015년 8월 나온 아베 담화가 껍데기만 남은 고노 담화를 사실상 대체했다는 인식을 밝힌 것이다. 위안부 문제를 역사의 교훈으로 직시하겠다는 고노 담화와 달리 아베 담화는 “아이들과 손자 세대에까지 계속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제강점하유족회가 2016년 8월15일 일본 정부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규탄대회를 열면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사과 행위극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일제강점하유족회가 2016년 8월15일 일본 정부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규탄대회를 열면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사과 행위극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일본 정부의 공식적 역사 인식이 ‘더 이상 사죄할 필요 없다’는 아베 담화로 바뀌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장면은 지난 5월7일 한-일 정상회담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해 일방적인 ‘양보안’을 내놓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한-일 관계 개선을 가속화하기 위해 방한을 전격 결단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 자리에서 ‘물컵의 나머지 반’을 채워주길 원한 한국의 기대와 달리 지난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 대신 “마음이 아프다”는 개인적 감상을 말하는 데 그쳤다.

이런 암담한 현실 속에서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지난 2일 오후 2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한·일의 학자·활동가들이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한 ‘고노 담화 30주년 한·일 심포지엄’ 참석을 위해 ‘줌’으로 모였다. 전문가들은 고노 담화에 대한 집요한 공격에도 담화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정책실장은 “담화를 부정하려는 일본 정부의 시도는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담화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지금까지 연구 성과를 토대로 위안부 문제란 무엇인지를 정리하는 ‘시민 담화’를 만드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가토 게이키 히토쓰바시대 교수는 많은 일본인이 “일본 시민사회에서 식민지배 실태나 불법성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게 긴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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