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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이 23일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행한 불법 행위에 대해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놓으면서,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한-일 간 역사 문제는 모두 해결됐다고 안도해왔던 일본 정부는 외무상 담화를 내며 강하게 반발했다. 양국의 진정한 화해를 위해 일본이 ‘물컵’의 나머지 반을 채우려는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역사 문제가 다시 한번 양국 관계 전반을 뒤흔드는 변수로 커질 수 있다. 일본 외무성은 23일 저녁 가미카와 요코 외무상 명의로 “극히 유감”이라는 담화를 내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외무성은 담화문에서 “이 판결은 2021년 1월8일 (1차) 판결과 같이 국제법 및 일·한 양국 간의 합의에 명백히 반하는 것으로 극히 유감이며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한국 정부가 “스스로의 책임으로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기 위한 적절한 조처를 강구할 것을 다시 한번 강하게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오카노 마사타카 사무차관은 윤덕민 주일대사를 초치해 이번 판결은 “극히 유감”이며 “일본 정부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의했다. 일본 외무성은 윤 대사 초치를 밝힌 문서에서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일-한 간 재산·청구권 문제는 1965년 일한청구권·경제협력 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이 끝났다. 또한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2015년 일-한 합의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을 일·한 양국 정부 사이에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 판결이 한-일 관계에 얼마나 큰 파장을 남길지는 원고와 일본 정부의 대응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2021년 1월 나온 ‘1차 위안부 판결’(원고들이 1심에서 승소한 뒤 일본 정부의 항소 포기로 확정) 때처럼 판결 자체를 무시하면서, 상고하지 않을 태세다. 아사히신문은 23일 총리관저 관계자가 “이번에도 (1차 판결 때와) 같은 대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원고 대리인인 이상희 변호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고령의 원고들의 염원대로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 말대로 원고 이용수 할머니와 대리인들은 한국 정부에겐 판결을 통해 확인된 피해자의 권리 행사에 협조할 것을 요구하고 일본 정부에겐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적극적 진실 규명과 사과에 나서도록 압박해 갈 예정이다. [%%IMAGE2%%] 당장 한·일 양국 정부가 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한 전향적인 대응을 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이 판결이 한-일 관계 전체에 끼치는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잔뜩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외교부는 판결이 나온 뒤 “상세 내용을 파악 중”이라면서 “정부는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양국 간 공식 합의로 존중한다”는 입장을 내놓는데 그쳤다. 일본 정부도 이날 밝힌 강경한 입장에서 볼 수 있듯 타협적 태도를 보이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역사 문제에 억지로 뚜껑을 덮으려는 양국 정부의 태도가 장기적으로 한-일 관계에 더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앞선 3월 윤석열 정부가 대법원 강제동원 피해 배상 판결에 대한 대폭 양보안을 내놓은 뒤에도 “역사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했을 뿐,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의 핵심인 지난 식민지배에 대해 “통절히 반성하고 마음으로부터 사죄한다”는 구절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후 한국 정부의 양보에 호응하려는 모습을 일절 보이지 않고 있다. 그로 인해 윤 정부의 ‘졸속 양보안’은 사실상 파탄에 이른 상황이다. 한국 법원은 지난 8~9월 무려 12차례에 걸쳐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돈 받기를 거부한 원고 4명(생존 피해자 이춘식·양금덕씨와 2명의 사망 피해자 유족)에게 억지로 돈을 지급할 수 없다며 정부 공탁금 불수리 결정을 내렸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지난 8월 이 4명의 원고들을 위해 시민 모금으로 마련한 ‘응원기금’(각 1억원)을 전달했다. 결국 일본의 비협조에 실망한 원고들이 끝까지 뜻을 꺾지 않으면 정해진 법적 절차에 따라 ‘부분적 현금화’가 이뤄지게 된다. 이런 아슬아슬한 상황 속에서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한국 사회가 다시 움직이면 ‘한-일 관계’는 다시 출렁일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유일한 외교적 성과가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길윤형 기자, 도쿄/김소연 특파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