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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노조 상대 손배소 남용 막을 ‘노란봉투법’ 제정을 기다리며

등록 2022-08-15 18:18수정 2022-09-16 15:16

‘비정규직이제그만 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 관계자들이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교섭타결로 파업을 끝낸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에 대해 ‘점거농성은 불법'이라며 ‘법과 원칙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밝힌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비정규직이제그만 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 관계자들이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교섭타결로 파업을 끝낸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에 대해 ‘점거농성은 불법'이라며 ‘법과 원칙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밝힌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왜냐면] 한상희 |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거대 야당이 정기국회에서 일명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 입법을 다짐했다. 너무도 늦었지만, 정의와 공정의 가치가 사라져버린 우리 노동 현실을 제자리에 갖다 놓겠다는 정치권의 최소한의 약속이라 자못 기대해본다.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50여일 동안 목숨을 건 파업을 이어나가자 회사 쪽은 “8천억원 규모 손실”을 내세우며 손해배상소송을 거론한다. 10년을 근속해도 최저임금 수준 임금을 받을 뿐인 노동자들에게, 그것도 지난날 조선업 불황이 닥쳤을 때 상생의 약속으로 삭감에 응했던 임금을 호황기를 맞은 지금 원상회복이라도 시켜달라고 요구하는 바로 그 노동자들에게 8천억원 손해배상 청구를 하겠다고 한다. 돈이 만능 척도가 돼버린 세상에서 당신과 당신 가족과 당신 주변의 모든 이들의 전재산을 헌납하고 생을 포기하든지, 아니면 그딴 노조 활동은 집어치우고 회사 명령에 충실한 노동 기계가 되든지 선택을 강요한다.

문제는 이런 ‘죽거나 나쁘거나’의 갈림길을 만든 주체가 바로 법원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노조에 대한 손배소 대부분은, 일자리를 빼앗는 정리해고에 대항하는 쟁의나 불법파견 등 원청기업의 횡포에 항의하는 하청업체 노조의 쟁의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노동쟁의권을 보장한 우리 헌법의 관점에서 보면 이 쟁의들은 의당 노조의 몫이며,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다. 그런데도 법원은 ‘경영권’과 ‘사용자성’이라는 담론 조작을 통해 노동자들의 이 권리 주장을 불법으로 왜곡시킨다.

실제 헌법이나 노동법 어디에도 ‘경영권’이라는 말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헌법재판소가 직업 선택의 자유에서 끄집어낸 “영업의 자유” 혹은 “경영의 자유”의 기업-법원판 용어에 불과하다. 반면 쟁의권을 비롯한 노동3권은 헌법이 작정하고 보장하는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다. 기업 쪽 재산권이나 계약의 자유, 영업의 자유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것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노동자들에게 인간의 품위를 유지하는 노동에 종사할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게 헌법의 의지다. 요컨대, 헌법은 경영권이나 재산권 문제보다 노동자의 권리를 더 중하게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은 이런 헌법 명령에 눈감아왔다. 경영권과 노동권을 동일한 수준에 놓는 것도 모자라 ‘기업의 경쟁력’이라는, 헌법이 전혀 알지 못하는 기준을 가져와 양자를 저울질한다. 정리해고는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경영자의 고유 권한이기에 노동쟁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고 한다. 경쟁력은 곧 경영의 문제이며 따라서 그것은 ‘경영권’의 동어반복에 불과하지만,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동권은 경영권에 양보해야 한다는 억지 판결을 내놓고 있다.

‘사용자성’이라는 말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원청기업은 하청업체 위에 군림하는 지배자다. 그래서 하청노동자의 처우나 지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원청기업의 협력이 필수다. 하지만 예의 대우조선해양 사례에서 보듯, 원청기업은 사용자가 아니라는 명분으로 노사 협상에서 사라져버린다. 협상 테이블에서는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노조와 아무런 실권도 없이 유령이 돼버린 하청업체만 앉아 실속 없는 신세타령만 교환한다. 이런 모습을 두고 우리 법원은 정상이라고 강변한다.

노조와 노동자의 삶을 비틀어버리는 거액의 손배소는 이런 법원의 비정상적 법 해석에서 비롯한다. 기업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헌법이 부여한 노동자의 권리를 일거에 부정하고 노동쟁의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해 천문학적 손배액을 부과하거나 가처분 결정을 통해 노동자들의 삶을 밑바닥에서부터 들어낸다.

노동쟁의 범위를 확장하고 노조에 대한 손배액 상한을 설정하는 ‘노란봉투법’은 기업과 법원의 연합세력이 구사하는 이런 폭력을 차단하고자 한다. 헌법상 보장된 노동쟁의권이 법원의 잘못된 법 조작에 의해 형해화하는 현실을 그나마 법률로써 바로잡고자 한다. 노동쟁의 자체가 불법이어서가 아니라, 사쪽에 경도된 법원이 불법이라 하기에 불법쟁의가 돼버리는 현실, 그 속에서 노동자가 죽어나가거나 삶의 근거를 박탈당하는 현실을 입법으로써 교정하고자 한다.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 그 중심에 인간이 자리하고, 경제 질서 핵심에 노동자 사람이 살아간다. 2014년 손배소에 처단된 노동자들을 향해 시작된 노란봉투법은 이를 재확인한다. 조속히 입법돼 일그러진 우리 시대의 한켠이라도 제대로 펴나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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