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전 임시 국무회의가 열리고 있는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노란봉투법 재의요구안 의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끝내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을 좌초시켰다. 불법 파업을 조장하고 산업 현장 혼란을 야기할 것이란 재계 요구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적잖은 노동자의 희생을 딛고 간신히 국회 문턱을 넘은 노란봉투법을 합당한 근거도 없이 무산시킴에 따라, 향후 노-정 관계는 급속히 얼어붙을 전망이다.
1일 윤 대통령은 ‘방송 3법’과 함께 노란봉투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함에 따라, 해당 법안이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이 다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려면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한다. 야당 의석을 다 합쳐도 어려워, 앞서 무산된 양곡관리법·간호법 등과 같은 운명에 처해진 것이다. 이번이 벌써 세번째 대통령 거부권 행사다.
노란봉투법은 복잡한 원·하청 구조 아래에서 노동조합이 사용자 쪽과 안정적인 교섭을 하도록 하고 손해배상·가압류로 인해 노동자들의 삶이 파탄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를 위해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실질적 영향력을 지닌 원청으로 교섭 대상을 확대하고, 쟁의행위(파업)에 대한 손배 청구 소송을 낼 때 모두한테 책임을 묻지 않고 개별 가담자의 배상 범위를 특정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2003년 두산중공업 배달호, 한진중공업 김주익 등 기업의 무분별한 손배·가압류 부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극적 사연들이 쌓아올린 결과물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일관되게 노란봉투법에 대한 거부감을 보여왔다. 경제부총리가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해당 법안의 국회 상정을 철회하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고용노동부 장관은 경제부처보다 더 강경하게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근거는 산업 현장 질서와 법체계를 흔들어 갈등을 부추긴다는 경제단체 입장과 판박이였다. 하지만 노동계뿐 아니라 노동법 전문가들도 노란봉투법이 이미 사법부에서 확립된 법리를 입법화하는 수준에 불과하며, 자율 교섭의 틀을 확립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 노사 갈등을 줄이는 순기능이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초지일관 노사 법치주의가 중요하다고 외쳐온 윤 정부는 결국 재계 요구만 듣고 노란봉투법을 무산시켰다. 정부가 누구를 향하는지 스스로 드러낸 셈이다. 노란봉투법 거부권 행사 후폭풍은 거셀 것으로 보인다. 최근 사회적 대화 재개 방침을 밝혔던 한국노총은 이날 예정됐던 노사정 회의에 불참했다. 갈등을 부추기는 건 노란봉투법이 아닌 윤석열 정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