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17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평화의광장에서 열린 ‘2022 제6회 대한민국 청년의 날’ 기념식에서 참가자들이 ‘청년, 먼저 미래로!’라고 적힌 펼침막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정지우 | 변호사·<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저자
‘저출생 고령화’ 문제의 당사자라고 하면 언뜻 현재의 노년 세대로 여긴다. 당면한 노인 빈곤이나 고령화로 늘어난 노년 인구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실질적 당사자는 현재의 ‘청년 이하 세대’라고 생각한다. 당장은 인구 구조나 산업 구조, 연금이나 사회 복지 제도 등이 버텨주고 있지만, 진짜 문제는 몇십년 뒤 후폭풍처럼 올 것이다.
고령화 사회의 정점은 지금이 아니라 청년 세대가 중장년 정도가 될 때다. 지방 소멸, 인구 절벽, 경제 침체와 사회적 재생산의 불가능은 청년이 맞이할 ‘미래’에 더 정확히 도착한다. 실제로 요즘 청년이 주로 사용하는 커뮤니티 등을 보면, 심심찮게 저출생 문제로 시끌벅적한 토론이 이뤄지는 걸 볼 수 있다. 이것이 자신의 문제라는 걸 청년들은 아는 것이다.
미래에 자신들을 위한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는 걸 그들은 정확히 알고 있다. 연금은 고갈될 것이고, 자신들의 노년과 복지를 받쳐줄 후속 세대는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이유에는, 마치 가뭄에 남은 웅덩이에 물고기 떼가 모여들듯 지방 소멸의 시대에 그나마 수도권에 있어야 직장, 인프라, 자산 보존 등이 가능할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이 깔려 있다. 청년은 실질적 생존의 의미에서 각자도생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이런 상황에서는 결혼이든 출산이든 육아든 모두 최대한 ‘신중’할 수밖에 없다. 청년이 쓸데없이 따지는 걸 좋아하고 계산에 밝고 눈이 높은 게 아니라, 어지간해서는 ‘각’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결혼도 출산도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60살 이후 40년 동안 이 국가와 사회는 나를 전혀 보살펴주지 않을 텐데, 당장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인적인 사교육 경쟁을 시작해봐야 지옥도밖에 펼쳐지지 않으리라고 예상하는 것이다.
한 사회와 국가의 존립과 재생산의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이 문제에서, 기존 정책 등이 완전히 실패했다는 건 매우 자명하다. 우리나라는 출생률과 관련해 전 세계에서 가장 실패한 나라가 됐고,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초저출산 국가가 됐다. 지금까지 저출산고령화위원회라든지 기타 정부 기관에서 기성세대들이 모여 자문위원 등의 머리를 굴려 짜낸 정책들은 ‘전부다’ 실패했다.
나는 이 문제는 이제 당사자들에게 넘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련된 모든 정책 결정권을 청년에게 주고 독립된 정책 결정과 집행, 예산권을 줘서 그들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력 이양 절차를 밟아야 한다. 청년의 문제는 청년이 가장 잘 알고, 청년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그들이 가장 잘 안다. 당장 온라인 커뮤니티 같은 곳에서 펼쳐지는 ‘육아 대책 토론 게시글’의 댓글들만 봐도 어지간한 언론사 기사나 칼럼보다 훨씬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많다.
대표적인 몇 가지를 살펴보자. 우선, 육아와 관련된 휴가, 휴직, 근무시간 단축 같은 혜택이 모든 기업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이 필요하다. 그러한 혜택을 근로자에게 줄 경우, 기업에 파격적 보상을 줘서 기업이 ‘육아하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고용하고 싶을 정도가 돼야 한다. 그 밖에도 지역 거점 도시 위주로 일자리와 인프라를 개선하고, 청년이 가장 좌절하는 주거 확보 문제에 국가의 사활을 걸고 집중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전멸해가는 가장 큰 이유는 권력 이양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이토록 늙은 적은 없었다. 40대 미만 청년 정치인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다. 실질적인 역할을 하는 청년 지식인, 언론인도 찾아보기 어렵다. 기성 문화, 자본, 권력이 너무 공고한 나머지 청년은 자신의 권리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야기하고 주장해 받아들일 그들만의 통로 자체를 원천 차단당했다.
그 이후 남은 것은 갈기갈기 찢어진 청년들의 각자도생이다. 연대해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하면 할수록, 각자의 방으로 후퇴하고 개개인의 생존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남은 것은 마치 분절된 방마다 남은 각종 ‘도파민(만족감을 주는 신경전달물질)들’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각종 짧은 영상들(이른바 ‘릴스’와 ‘쇼츠’), 유튜브의 웃음거리와 저격 거리들, 익명 게시판에 모여 비교하고 비하하고 혐오하며, 상대적 박탈감과 자조의 늪 가운데, 때때로 갓생(god+인생, 허투루 쓰는 시간 없이 효율적으로 생활하기)을 살겠다는 의지가 반짝이는 혼자만의 ‘미라클 모닝’(성실한 아침을 살자는 캠페인) 정도만이 남은 것이 지금 이 시대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