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의정 활동 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용 의원은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정부의 부실 대응과 무책임을 폭로하고, 성평등·소수자 의제에 앞장서면서 주목받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지난달 한국갤럽의 ‘국감에서 가장 돋보인 의원’ 조사에서 거대 양당 의원들을 제치고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5%)이 가장 많은 응답을 받았다. 그는 앞서 시사주간지 시사인의 ‘가장 신뢰하는 정치인’ 조사에서도 8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1990년생으로 원내 1석인 소수정당 소속이지만, 용 의원은 ‘사이다’ 발언과 전투력 있는 의정 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지난해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정부의 부실 대응을 폭로하고 질타하는 장면은 많은 이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여성·청년·엄마 등 국회 안의 ‘희귀한’ 존재로서 성평등·소수자 의제에도 적극적이다. 지난 6일 의원회관에서 만난 용 의원은 “기존 정치가 주목하지 않았던 과제들을 제시하고, 비전과 대안을 찾는 역할에 집중했다”며 “기본소득 실현에 동의하는 세력들과 폭넓게 연대 연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감 잘하는 정치인, 신뢰받는 정치인 조사에 모두 이름이 올랐다.
“저희에게도 굉장히 놀라운 결과였다. 특히 두 조사 모두 주관식 응답이었는데, 국민들이 직접 용혜인이라는 이름을 말씀해주셨다는 점에서 더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기본소득당은 정당 지지 여론조사에도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더 반가웠다.”
―어떤 활동이 인상적으로 다가간 것 같나?
“아무래도 이태원 참사 당시 모습들이 많은 분들에게 (맺힌 것을 풀어주는) 속 시원함 혹은 울림 같은 것을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태원 유가족이 정권 위험 요인?…정부 대응, 세월호 때보다 더 냉혹
―얼마 전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대한민국이 뭐가 바뀌었나, 수도 한복판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나, 이런 질문이 이태원 참사 이후 저를 가득 채웠던 질문이었다. 세월호 참사 때 25살이었는데 (당시) 뭐라도 해야겠다라고 생각해 ‘가만히 있으라’ 침묵 행진을 제안했고, (그때) 직접 정치를 해야겠다라고 마음 먹었다. 세월호 때 유가족들을 대하는 정치권의 태도를 보면서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모습이 이태원 참사 이후에도 반복됐다. 이번에도 유가족을 고립시키고, 유가족들을 정권에 대한 위험 요인으로 바라보고 있다. 심지어 더 비정하고 냉혹한 모습으로 반복되고 있다.”
―국가의 책임 문제는 어떤가?
“가장 황당한 건 159명이 사망한 참사가 발생했는데 당시 책임자들이 1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는거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와 오송 참사 이후 국정감사를 하면서 대한민국 공직사회의 기강이 정말 많이 무너져 있다는 생각을 했다. 참사 이후에 고위 공직자 또는 책임자들이 법령을 위반한 게 있는가, 같은 적법성만 따지고 있다. 당시 최선의 노력을 했는가 혹은 할 수 있는 책임을 다했는가, 이런 것에 대한 적절성을 따져야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여전히 형사적인 책임만 묻고 있다.”
―노동당 대표를 지냈는데, 기본소득당을 창당한 이유는 무엇인가?
“진보 정치가 시대의 변화와 조응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에 새로운 담론과 비전을 제시하고, 4차 산업혁명과 기후위기 등 시대 변화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된다. 그래서 기존 당(노동당)에서 기본소득당으로의 당명 개정을 추진했는데 부결됐다.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한 기존 정치 노선을 계속하는 결정을 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기본소득이라고 하는 새로운 사회 비전이 유효하다고 생각해, 2020년 1월 창당까지 하게 됐다.”
―지금 당원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
“코로나19 등으로 당 활동에 정체기가 있었지만 현재 2만2000명 정도다. 특히 올들어 한 달에 500명 이상씩 입당했고, 규모도 커지고 있는 추세다.”
―신규 가입자는 어떤 분들인가?
“굉장히 다양하다. 대학생도 있고, 지역 대안학교 등을 운영하는 분들도 있다. 특히 처음 정당에 가입한다는 분들이 많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연령대도 젊은 분들이 많은가?
“창당할 당시에는 20대가 80% 정도였다. 내가 국회에선 거의 막내인데 당에선 나이가 있는 편이다.(웃음) 지금은 다양한 연령대 분들이 입당하고 있지만 여전히 20대가 대부분이다. 입당 원서 직업란에 쓴 것을 보면, ‘알바, 백수, 편돌이(편의점 알바), 편순이, 쿠팡맨’ 등 다양하다. 불안정 노동을 하니 더욱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기본소득을 강조하는 이유는?
“디지털 전환의 시대 그리고 에너지 위기의 시대, 기후위기의 시대에 새로운 사회 원칙이 뭐냐라고 할 때, 그것이 기본소득이라고 생각한다. 토지나 천연자원, 생태 환경, 빅데이터 등은 공유하는 것이다. 국가가 대규모 공공투자를 하면 민간기업이 수혜를 독점하는 결과를 많이 목격했다. 기본소득은 공공 투자를 통해 발생하는 수익의 일부를 국민들께 돌려드리는 개념이다. 산업 재편의 동력이 되면서도 분배 정의는 바로 세우고, 또 불평등 완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희가 생각하는 새로운 정치의 핵심 내용이 기본소득인 것이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왼쪽)은 의원실 내 의원 전용 공간을 보좌진들과 함께 이용한다. 용 의원이 6일 오전 양다혜 선임비서관과 함께 일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하지만 소수정당으로서 활동하는게 쉽진 않을 것 같다.
“법안 발의부터 쉽지 않다. 얼마 전 선거제 개혁 법안 같은 경우는 성안을 하고도 발의자 10명 모으는 데 넉 달 걸렸다. 큰 정당에선 의원들 텔레그램방에 ‘발의해 주세요’라고 올리면 뚝딱 모은다고 하더라. 저는 (다른 당 의원에게) 한 명 한 명 다 전화하고, 공문 보내고, 이런 과정을 거쳐야 법안 하나를 발의할 수 있다. 국회에선 정당 이름 부르는 순서도 의석 수를 따르고, 국회 내 사용공간 확보, 출입증 갯수 등 하나하나가 다 장벽이다. 의사 일정도 뒤늦게 통보받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언론을 통해 본회의가 열린다는 걸 아는 경우도 많다.(웃음)”
―다양성을 위한 선거제 논의는 진전되지 않고 있다.
“9월에 여야가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면서 비례대표를 3개 권역으로 나눠 뽑는다는 것에 합의했다고 공식적으로 얘기했다. 하지만 권역별 제도라는 건 비례대표 의석 수가 충분히 늘어나지 않는다면 장벽을 더 높여 소수 정당들의 진입을 더 확실하게 차단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여당은 병립형 비례대표제(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배정) 회귀를 주장하고 있는데, 애초 연동형 비례대표제(전체 의석을 정당 득표율에 연동)를 만들었던 건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라는 촛불 개혁 과제의 일환이었다. 국민의힘이 이걸 되돌리자는 건 대한민국 정치를 탄핵 이전으로 돌리자라는 주장이다. 민주당에게도 국민들께 한 (정치개혁) 약속을 끝까지 지킬 수 있도록 시민사회를 비롯한 많은 압박이 필요하다.”
―여성, 청년, 엄마라는 정체성이 의정활동에도 영향을 미치나?
“문제의식을 갖게 되는 것들이 있다. 본회의장에 300개 의자가 있는데 여성 정치인들의 의자는 (현재) 57개다. 여성들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개선방안들을 고민하게 된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면서 갖게되는 경력 단절 문제도 고민하게 된다.”
―본회의장 아이동반법도 화제가 됐다. 이후 어떻게 되고 있나?
“계류 중이다. 그 법을 발의할 때 여야 할 것 없이 많은 의원들이 동의해 줬다. 하지만 막상 법안 심사 단계에 들어가면 큰 관심사가 되진 못한다.”
―국회에서 (아이 동반 출석 가능성이 거의 없는) 중년 남성 비율이 높아 논의가 뒤로 밀리는 건가?
“그런 측면도 있다. 하지만 젊은 정치인들이 늘어나고 있고, 그러면 양육자인 국회의원들도 앞으로 더 늘어날 텐데, 그 분들을 위한 상징적인 의미도 있다고 생각한다. 국회부터 그런 노력들을 해나간다면 사회 전반의 분위기와 문화를 만드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아이동반법, 생활동반자법, 여성 정치활동 보장 등 의미있는 법을 많이 발의했다.
“(동거인에게 혼인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생활동반자법은 헌정 사상 처음 발의했다. 이번 국회에선 기존 정치가 주목하지 않던 여러 과제들 및 비전,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에 집중했다. 22대 국회에선 실제로 법안 통과에서도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었으면 한다.”
―더불어시민당의 선거연합으로 원내에 들어왔다. 더불어민주당과의 관계설정은 어떻게 하나?
“기본소득당의 원칙이 있다. ‘기본소득 실현에 동의하는 세력들과 폭넓게 연대 연합할 수 있다. 그리고 사안마다 폭넓게 연대 연합할 수 있다’이다. 그래서 민주당, 정의당, 진보당과 함께 법안이나 의정활동에서 연대·연합을 한다. 개혁을 견인해내는 것도 소수 정당에겐 중요한 역할이라 생각한다. 야당 간 협력을 통해 윤석열 정부의 퇴행을 막아내거나 혹은 제도적 개선을 만들어 내는 건 그것대로 하고, 또 각 정당의 원칙들을 원칙대로 세우는 건 별도로 해야 할 일이다.”
―총선 구상은?
“아직 선거 관련 논의가 당내에서 많이 진행되지 않았다. 세운 원칙은 두 가지다. 하나는 윤석열 정부가 폭주하며 거대한 퇴행을 만들고 있는데, 이를 막기 위한 야권의 큰 승리가 필요하다. 두 번째는 기본소득당이라는 정치 세력의 의정활동이 확장되어야 된다. 11월 말 쯤 구체적인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시민당에 함께 한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국민의힘으로 갔다.
“더불어민주당과 86세대의 낡은 정치는 당연히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저도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낡은 정치세력과 손을 잡는다는 게, 그 명분이 충분히 소명이 되는 것이냐,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윤석열 정부의 퇴행을 바라보면서 어떤 고민을 갖고 계신지 알 수 없지만, 동의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윤 대통령, 스타일 일부 변화…국정기조 변화 없어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의정 활동 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용 의원은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정부의 부실 대응과 무책임을 폭로하고, 성평등·소수자 의제에 앞장서면서 주목받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 참패 이후) 윤 대통령이 바뀐 점이 있다고 보나?
“굉장히 형식적인 것들이다. 국회의원들과 악수를 한다거나, 누가 봐도 결격 사유가 분명한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지명을 철회한다거나, 하는 형식적 변화들만 보인다. 실제 국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예산안에 대해선 자화자찬만 늘어놓았다. 태도나 스타일을 바꾸려 노력하지만 실제 기조에는 변화가 없다.”
―이태원 참사 대응 모습은 어떻게 보나?
“(지난해) 참사 직후부터 매우 일방적이었지 않느냐. 영정과 위패없는 분향소에 가 매일 참배했다. 당시 유가족 분들이 했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국화꽃이 참 부러웠다”는 말이다. 위패도 영정도 없는 분향소에서 추모를 혼자 받고 있는 국화꽃들이 너무 부러웠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유가족을 만나 위로의 말을 한다거나, 피해자 지원이나 진상 규명 역할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또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제에 정치 집회 프레임을 씌웠다. 유가족들이 대통령을 초청한 것이다. 백번 양보해 정치 집회여서 문제가 된다면 대통령 관저로 유족들을 부르면 된다. 여전히 유가족들을 적대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태도가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마지막 남은 임기 동안 하고 싶은 이슈는 뭔가.
“일단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입법의 영역에선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 같다. 유가족 분들이 전국을 돌며 직접 국민들 서명을 받아 국회에 넘어오게 된 법이다. 법안 심사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여당은 회의를 보이콧하고, 정부는 내내 반대 입장만 밝혔다. 그럼에도 안건조정위원회에서 정부·여당이 문제 삼았던 조항들까지 고려해 신뢰할 수 있는 합의안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여당이 좀 더 협조적인 태도를 보여 패스트트랙 기한 전이라도 법안이 통과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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