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의 임시 대피소에서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불을 쬐고 있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는 가자지구 전체인구의 80% 이상인 약 190만 명이 전쟁 발발 후 지역 내에서 피란한 것으로 집계했다. 칸유니스 신화/연합뉴스
[왜냐면] 황호진 | 전북대 특임교수·전 전북 부교육감
한치의 틈도 없는
높이 6m, 길이 65㎞ 콘크리트 장벽
더 이상 도망갈 곳도 막아선다
독 안에 든 쥐보다 못하다
마실 물도, 식량도, 연료도 끊었다
나무도 건물도 사람도 모두 무너진다
하늘에서 바다에서 땅에서
전투기가 군함이 탱크가
미사일과 포탄을 쉼 없이 쏟아낸다
부서지지 않은 집 하나 찾을 수 없고
끝없는 대량학살이 일상의 풍경
초토화가 무색한 살 수 없는 땅이 되어간다
눈물은 말라붙었고
울음소리는 가슴만 치다가 주저앉는다
산 자는 죽은 자가 부럽다
아침 여명은 피지도 못하고 시들고
시간은 날개를 펴지도 못하고 꺾인다
목 잘린 꽃 한 송이도 죽음에 동행하지 못한다
적들이 가라고 한 빼곡한 난민촌에
고성능 미사일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셀 수 없는 사람들을 하늘로 쓸어낸다
환자와 시신이 가득한 병원에
폭탄이 수시로 날아든다
환자들이 앞다퉈 죽음의 길을 떠난다
인큐베이터에 전기와 산소가 끊겨
아기들은 울음소리 한 번 내보지 못하고
엄마 품에 안겨보지도 못하고 떠난다
100만 유튜버를 꿈꿨던 13살의 엘도스
15명 가족 모두와 함께 숨진 뒤에야
전 세계 누리꾼들과 꿈을 이룰 수 있었다
해맑은 27살 비디오 블로거 하두라
마지막 영상 소망은 가방이 아니라 무덤에 묻히는 것
그녀는 가족 모두와 함께 그렇게 천사가 되었다
시체들 틈에서 잠이 들고
시체 위에서 잠을 깬다
생명은 죽음의 힘으로만 버티고 있다
폭발음도 사라진 텅 빈 고요 속에서
시체 썩는 냄새조차 없는 공허 속에서
네 이름만 아름답게 빛난다
둥둥 북소리 울리고
이제야 하늘문이 열린다
내가 세상에 나왔을 때부터
죽음의 사신은 항상 나를 잡아끌었다
지금 나는 그를 따라나선다
가장 가까이 살면서도
너와 나는
우주에서 가장 먼 다른 종족
개돼지보다 못한 삶을 더는 버틸 수 없다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는데
무수한 전투기와 탱크가 불을 뿜는다
인간성의 위기이다
아니 문명의 위기이다
인간의 문명이 제 그림자에 갇혀 울기만 하고 있다
성모마리아 상에서 피눈물이 그치지 않고
십자가에서 진득한 피가 멈추지 않는다
전세계 양심들이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다
색색으로 아름다운 가을 단풍이 서럽다
늦가을 애기단풍이 이렇게 붉은 것은
가자를 떠난 혼들이 이곳에 핀 것이리라
나무는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서 있다
탱크에 넘어진 나무는
깊은 땅속에서 길을 찾고 있다
땅에서 꺾인 무수한 여린 생명들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부활할 것이다
어둠에서 다시 빛으로 솟구칠 것이다
초록별 부활의 땅에서
너의 존재가 나에게 기쁨이 되고
나의 존재가 너에게 희망이 되자
생명의 환희를 우리 함께 노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