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베들레헴의 구유 광장에서 한 여성과 어린이가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촛불을 켜고 있다. AP 연합뉴스
[왜냐면] 타메르 나파르 | 이스라엘 국적의 팔레스타인 출신 래퍼·배우·작가·사회운동가
저는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래퍼이자 작가로서, 평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내며 활동해왔습니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예술가가 ‘공동 저항’을 지지하는 소규모 공동체를 구성하고 수년 동안 도우며 좋은 친구가 됐습니다.
지난 10월7일을 기점으로 내부 분위기가 갑작스레 바뀌었습니다. 인터넷에 공개된 하마스의 공격 영상이 우리 모두를 충격에 빠트렸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을 목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요. 애석하게도 이 저주받은 땅에서 그러한 참상을 몇 번이고 목격했습니다.
며칠이 지난 뒤에야, 우리가 새로운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정부와 군대, 또는 정착민이 야기한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목격했고, 함께 목소리를 내고 저항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이번 사태에 정체성을 위협받고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우리 모임의 유대인 형제자매들이라는 점을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습니다. 솔직히 말해, 이 사실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나 서방 언론과 마주할 때면, 인터뷰라기보다는 심문받는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하마스를 비난하나요?” 전 이렇게 묻습니다. “잘못된 질문에 정답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무고한 사람에 대한 모든 폭력을 규탄합니다. 산 사람을 향한 차별에 일평생 맞서 싸워왔는데, 어째서 죽은 이들을 차별해야 하나요?”
지금 당신 눈앞에 가자지구의 피 흘리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한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이 아이가 이 세계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 설명해보세요. “무기를 사용하면, 넌 테러리스트다. 우리는 유엔에 의거해, 미국에서 선박과 비행기와 탱크를 가져와 합법·불법 무기를 사용할 거다. 가자지구를 쓸어버릴 군대를 무장시킬 거다. 헤이그 국제사법회의에 우리가 한 일을 조사해달라고 요청한다면, 그 요구에 거부권을 행사할 동맹국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라. 네가 불매운동과 같은 비폭력 방식으로 저항한다면, 우리는 너를 반유대주의자로 몰아 체포하는 새로운 법을 통과시킬 테다!”
저는 유대인의 손에는 합법 무기가, 아랍인의 손에는 불법 무기가 쥐어져 있는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적이 없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부족한 것은 친구입니다. 우리는 친구를 집어삼키는 땅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 어느 때보다 친구가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친구를 잃은 경험이 있지요. 제 할머니는 1948년 팔레스타인 사회 전체가 찢겨 여러 지역과 전 세계로 흩어졌을 때, 가족과 친구를 잃었습니다. 부모님도 인티파다(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 봉기) 기간 친구를 잃었고, 저 또한 제가 사는 도시에서 친구를 잃었습니다. 지난달에는 가자지구에서 다섯 명의 가족을 잃었습니다. 제 친구는 이스라엘 남부 레임 키부츠에서 열린 음악 페스티벌에서 그들의 친구를 잃었습니다. 하마스는 다른 친구도 살해하고 납치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불공정한 위치에 놓이게 한 친구, 그리고 우리가 투표하지 않은 지도자의 행동에 대해 해명하라고 요구한 친구도 잃었습니다. 양쪽 모두가 자행하는 잔악한 행위들을 감내하기 힘들어한 친구들도 잃었습니다.
양쪽 진영 모두 고통받는 민간인 희생자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2의 나크바(이스라엘 건국 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었던 ‘대재앙’)를 볼 때면, 저는 영구적 휴전을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나크바의 여파는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 정확히 말해, 가자지구의 형제자매들이 학살당하고 무너진 집에서 쫓겨나는 일은 나크바 사태가 확장한 것입니다. 이를 목격할 때 느끼는 무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무력감을 설명할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했습니다.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저는 그로 인해 체포되겠지요.
투쟁에 참여한 친구는 그들이 선택한 방식으로 저도 함께 비난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위해 그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고통을 감내하고, 열린 상처를 치료해 흉터로 남을 때까지 말입니다. 어떤 군대 표창보다도 더 명예로운 일입니다. 친구를 선택하는 것은 인생의 여정에서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강하되 유연하고, 용감하되 동시에 취약한 친구들이 제 곁에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입니다. 그들과 계속 가까이 지내고 싶습니다. 이 땅에는 우리가 손봐야 할 일이 참 많으니까요. 그리고 이런 친구들과 함께하다 떠났거나 퇴출당했더라도 언제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권리가 당신에게 있다는 점을 명심하길 바랍니다.
번역 김지은. 경희대 영미문화 박사수료. 문학연구자. ‘식물의 사유’, ‘악어의 눈’, ‘영화와 문화냉전’ 등을 우리말로 옮겼고, ‘도래할 유토피아들’, ‘우리는 어떻게 사랑에 빠지는가’ 등을 함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