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6층 회의실에서 열린편집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의제 설정·기획물 분석
12월9일 아침, 열린편집위원회 회의의 표면적인 분위기는 평소와 큰 차이 없이 평온했다. 그러나 회의실의 공기는, 종교계와 정치권 일부의 ‘대통령 사퇴’ 주장에 대한 한겨레 보도 태도를 둘러싸고 사뭇 팽팽했다. 열린편집위원들은 다른 위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고개를 끄덕였으나, ‘사퇴’ 파장과 관련해 저마다 밝힌 의견의 밑바탕에는 논쟁적 대립각이 뚜렷했다. 특히 사외 열린편집위원들과 <한겨레> 내부 위원들 사이에, 때로는 사외 열린편집위원들 사이에도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과 관련한 ‘박근혜 대통령 사퇴’ 주장을 한겨레가 어떻게 보도해야 하는지를 놓고 판단을 달리했다.
또 12월3일치 한겨레 단독보도 이후 세간에 큰 화제를 모은 ‘조계종 승려들의 밤샘 술판’ 사진 및 기사와 관련해, 보도의 공익적 가치 등을 고려할 때 적절한 기사였는지를 두고 위원들 간에 다른 견해가 제기됐다.
신인령 위원장의 사회로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6층 회의실에서 열린 제2기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 12월 회의 내용을 정리해 지상 중계한다.
제2기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 위원(참석자)
<위원장>
신인령 전 이화여대 총장
<사외 위원>
고윤덕 변호사(법무법인 시민)
김영배 서울 성북구청장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윤고은 작가(소설가)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경제연구실장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사내 위원> 박찬수 <한겨레> 콘텐츠본부장(부위원장)
임석규 편집국 정치·사회에디터
김도형 편집국 경제·국제에디터
조계완 콘텐츠평가실 심의위원 ■ 한겨레, 시국미사 의제 선점 기회 놓쳐 vs 대통령 사퇴로 국면 옮겨지면 사태 본질 흐려져 신인령 위원장 천주교 전주교구의 ‘박근혜 대통령 사퇴’ 시국미사,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 파장, 북한 장성택 실각설 등 지난 한달간에도 많은 이슈가 <한겨레> 지면에 주요 기사로 비중 있게 다뤄졌다. 천주교 시국미사부터 말해보자.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사제와 수도사들이 밀양 송전탑, 제주 강정마을 등에서 약자들과 함께 낮은 곳으로 임하는 모습을 정리한 기사(<한겨레> 11월29일치 1·4면)가 좋았다. 다만 <한국일보>, <경향신문> 그리고 인터넷언론들에 전주교구 박창신 원로신부의 육성 인터뷰가 실린 반면 한겨레는 기사 안에서 몇 개 코멘트로만 나갔다. 육성 인터뷰가 아쉬웠다. 특히 박 신부가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군대에서 하사로 제대한 내가 무슨 종북이냐’고 한 말이 있는데 종북몰이를 무력화하는, 기존의 프레임을 깨는 통쾌한 발언이다. 인터뷰가 곤란했던 것도 아닐 것이고 한겨레 기자가 전화 통화도 했는데 정작 인터뷰 기사가 빠졌다. 임석규 정치사회에디터 당시 시국미사(22일 저녁)를 중요 사안으로 봤다. 기자와 사진기자가 박 신부가 미사를 주재한 군산 수송동 성당 현장을 취재했다. 현장 기자가 곧바로 인터뷰를 적극 요청했지만 그때엔 박 신부가 인터뷰에 난색을 표했다. 주말을 거치면서 온라인 매체 등에 인터뷰들이 실리고, 그러면서 한겨레가 별도로 인터뷰해야 하는 의미가 줄어든 점도 있다. 결과적으로 아쉬움이 남는다. 김재영 충남대 교수 한겨레는 시국미사 사실을 미리 인지하고 예고 보도까지 했다. 대통령 퇴진이 이 미사의 핵심 주장이고, 그 며칠 뒤인 27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회의 현실 참여’를 강조하는 권고문을 내놓았다. 이번 시국미사의 파장을 의제로 선점할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 한겨레가 이를 놓쳤다. 토요판(23일치)에 전날 밤의 시국미사 기사가 잠깐 나왔으나 그 뒤 월요일에 1면 머리기사로 치고 나가지 못했다. 박 신부의 연평도 포격 발언을 둘러싼 정치권 공방이 나오고서야 크게 보도했다. 중계보도 식이었다. 연평도 포격 발언 논란이 불거지면서 이쪽(종북 논란)으로 초점이 흐려지더라도, 한겨레가 먼저 ‘대통령 사퇴’ 발언을 제목으로 뽑아 의제로 설정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교황의 현실 참여 권고도 한겨레는 한발 늦게 크게 보도했다. 게다가 토요판(30일치) 커버스토리로 법륜 스님을 다뤘는데, 국정원 사태에 대한 종교계의 역할을 당연히 물었어야 했는데 전혀 그런 얘기는 없이 스님들의 인기 현상 위주로 다뤘다. 한겨레가 의제를 설정하고 다루는 장악 능력과, 파급력 있게 치고 나가는 힘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임석규 에디터 금요일(22일) 아침 편집국 편집회의에서 그날 저녁에 있을 시국미사를 어떤 식으로 지면에 소화할 것인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1면에 비중 있게 보도하자는 의견도 있었고, 1면에 보도하는 순간 한겨레가 대통령 사퇴 주장에 동조하는 것으로 해석될 것이라는 반론도 있었다. 판단의 초점은 이것이 천주교 내의 다수 의견인가 아니면 일부 의견인가, 그리고 일회적 사건인가 아니면 다른 교구, 다른 종교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는 맹아적 조짐인가 여부였다. 편집회의에선 ‘대통령 사퇴’ 주장을 1면에 크게 싣는 게 지금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그 대신 미사 장면을 1면 사진으로 실었다. 덧붙이면,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이 동원된 선거개입 사안을 (선거 무효를 주장할 만한) 부정·관권선거로 볼 것이냐, 민주주의·헌법 파괴의 관점에서 볼 것이냐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있다. 이전 정권의 국가기관이 저지른 선거개입을 현직 대통령 퇴진 문제로 설정할 수 있느냐는 논리적 설득력 문제도 제기된다. 한겨레가 국정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 등 국가기관의 조직적 선거개입 관련 팩트를 어느 매체보다 적극 파헤쳐 보도하고 있다. 대통령 사퇴를 요구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 중 하나는 선거개입과 박근혜 대선 캠프가 연계됐느냐는 것인데 지금까지 밝혀진 팩트만으로는 이 점을 단정 짓기 이르다. 국가기관들이 어느 정도로 부당한 정치개입을 했는지 그 팩트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모아야 할 때인데, ‘대통령 사퇴 논란’으로 국면이 옮겨지는 순간 오히려 사태의 본질이 흐려지거나 묻힐 수 있다고 봤다. “천주교가 내민 의제 제대로 못살려
종북 논란에도 더 세게 받아쳤어야”
“사퇴 요구, 아직은 대중정서와 거리
지금의 보도방향 적절하다고 본다” ■ ‘대통령 사퇴하라’ 제기할 시점 vs 사퇴 요구할 뚜렷한 근거 미흡 이남신 비정규센터 소장 박창신 신부의 말씀 중에 박 대통령 사퇴 못지않게 이명박 전 대통령의 책임과 구속을 말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불법·부정선거 문제가 정권의 안위와 직결되는 심각성을 띠고 있다는 점을 다시금 일깨워준 것이다. 물론 기득권이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성직자 직분에서 그런 말을 했겠지만, 사퇴 주장은 시대정신을 반영한 발언이었다. 천주교와 박 신부가 제공한 불씨를 한겨레가 불길로 붙여가지 못한 듯하다. 부정선거 이슈에 활동가들만 맞서는 형국에서 박 신부와 천주교가 문을 확 열어주었는데 한겨레가 이를 좀더 공격적으로, 위험부담을 무릅쓰고라도 제기해봐야 할 시점이다. 물론 대통령 사퇴를 앞세울 것이냐 아니냐를 두고 민주당 내부에서도, 또 시국회의(‘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총체적 대선개입 및 박근혜 정부의 수사방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사회 시국회의’) 안에서도 치열한 공방이 있다. 특검 수용 정도로 가는 게 맞는지, 사퇴를 걸고 나가는 게 정치적으로 바람직한지를 선도적으로 한겨레가 다뤄보면 좋겠다. 김영배 성북구청장 저는 의견이 좀 다르다. 부정선거가 문제라면 총책임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이고, 이전 정부의 국가기관들이 조직적으로 벌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1차적인 부정선거의 행정적·실체적 책임자는 전 정권으로, 어떤 이유에서든 다음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현직 대통령이 그 불법부정선거의 수혜를 보았는지 또 사전에 인지했는지는 그다음 별도의 문제다. 물론 집권하고 나서 그런 부정선거 사실을 은폐하려고 한 대목은 현직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 선거부정이 있었다면 논리적으로, 현실적으로 볼 때 일단은 전직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대목을 한겨레가 구분해서 명확하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곧바로 ‘현직 대통령 사퇴’ 요구를 하기에는 논리적 간극이 있는 게 사실이다. 오창익 사무국장 그러나 한나라당이 2012년 초부터 새누리당으로 간판을 바꾸고 박근혜 비대위 체제로 전환했다. 사실상 ‘박근혜 정당’으로 완전히 바뀌었고 2012년은 일종의 연합정권으로 볼 여지도 있다. 정부기관들이 이미 그 미래 권력으로 쏠리는 현상도 있었다. 따라서 선거부정 책임이 명백하게 박 대통령에게도 있다. 김도형 경제국제에디터 (전주교구에서 지난 대선을) 전체적인 부정선거로 규정했는데, 부정선거의 근거가 그럼 무엇이냐에 이르면 (현재까지 드러난 팩트를 바탕으로 볼 때) 과연 박 대통령 사퇴까지 요구할 사안이냐는 대목은 논란이 될 수 있다. (언론에서) 사퇴를 적나라하게 내세우는 건 부담이 있다. 엄격한 의미에서 (현 정권이 저지른) 부정선거의 근거가 명시적으로 제시됐다고 쉽게 말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경제연구실장 박 대통령 퇴진 문제가 쟁점화됐을 때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졌다’는 제목의 한겨레의 갤럽 여론조사 기사를 보니 여전히 지지율이 50% 이상이었다. 사퇴가 제기되고 있으나 대중적 여론 정서는 아직 다른 것 같다. 이러한 괴리를 정교하게 분석해 보여주는 기획을 지면에서 다뤄주면 좋겠다. 또 11월28일치 3면에 실은 교황의 현실 참여 권고문은 그 사안의 중요성에 비춰 볼 때 작게 다뤄진 것 같다. 권고문 중에 자본주의 비판 등 따로 뽑아내서 의제로 다뤄볼 만한 말들이 꽤 있었다. 고윤덕 변호사 한겨레에 실린 시국미사 사진 속 장면에 ‘박 대통령 사퇴하라’는 글씨가 선명한데, 한겨레의 관련 기사 제목은 ‘박근혜 책임져야’였다. 물론 ‘대통령 사퇴’라는 말을 꺼내기엔 한겨레 입장이 매우 조심스럽고, 선제적으로 치고 나가면 자칫 정치적 공방에 휩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에서 종북몰이로 대응한 이후, 교황청 권고가 나오면서 천주교의 입장이 좀더 순수하게 다가오는 극적 효과도 있었다. 임석규 에디터 박 신부의 발언 중에 ‘책임져야’라는 표현도 있었다. ‘사퇴’로 제목 뽑는 순간 불필요하게 초점이 흐려질 수 있다는 고민을 했다. 즉 종편들이 사퇴 주장을 맹비난하면서 근거도 없이 종북몰이를 쏟아냈는데 한겨레가 주장을 지나치게 앞세워 사퇴를 의제화하면 왼쪽 진영의 또다른 종편처럼 비칠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팩트에 입각해 근거를 제시하면서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주장을 할 때 신문의 힘이 더욱 강해지고 신뢰도 높아질 것이다. 왜 한겨레가 이번 사안에 대해 뜨뜻미지근하게 보도하고 대중적 여론 형성에 나서지 않는가 하는 지적이 있는데 이런 고민이 있다. 신문은 정치적 집단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 ‘신부 발언 오해 소지 있다’ 사설 소극적 vs 신문 게재 글 전부가 한겨레 입장으로 이해될 우려 이남신 소장 박 신부의 연평도 포격이나 천안함 북침 발언 대목을 전체적 맥락에서 보면 북한을 두둔한 게 아니다. 남북 평화를 함께 책임져야 하는데 어리석게 북한에 도발의 빌미를 제공한 데 대한 비판이었다. 그런데도 종편 등에서 종북논리로 몰아간 상황에서 한겨레가 좀더 왼쪽에 서는 모습은 필요했다. 물론 민감한 사안이고 공적 언론이 대통령 사퇴나 이명박 구속을 입장으로 표명하는 게 바람직한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부정·불법 선거 프레임이 한순간에 종북 프레임으로 바뀌고 있는 국면에서 그 대척점에 선 한겨레가 좀더 목소리를 키워 세게 받아쳤어야 한다. 김재영 교수 박 신부의 강론 파문이 일어나자 한겨레가 사설(11월25일치 35면)에서 ‘박 신부의 발언은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박 신부의 강론 동영상을 보면 다른 쪽에서 견강부회하고 있는 것이지, 오해할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그 사설은 한겨레가 이 사안에 굉장히 소극적으로 반응했음을 보여준다. 이른바 ‘조중동’이 되살아난 때가 오히려 참여정부 시절이었다고 한다. 당시 정부 비판을 무지몽매할 정도로 세고 선명하게 내지르면서 대중에게 각인된 것이다. 그에 비춰 볼 때 지금은 한겨레가 그 존재가치를 입증할 좋은 기회인데도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김도형 에디터 박 신부의 강론 전문을 실어서 독자에게 판단을 구하는 방식으로 해볼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좀 있다. 그러나 박 신부 강론 중 연평도 포격을 두고 ‘독도는 우리 땅인데 일본이 와서 훈련하면 쏴야 한다’고 비유한 대목은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신인령 위원장 시국미사 다음날인 11월23일(토)엔 대통령 사퇴 주장의 파장을 잘 파악하지 못했거나 박 신부의 강론 전문을 못 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겨레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자 하는 건 무난했다고 본다. 그러나 그 뒤 월요일치(25일)에서도 전체적 맥락을 놓치거나 박 신부가 말하려는 취지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한 느낌이다. 25일치 사설은 적절한 거리를 두는 정도가 아니라 한겨레가 사태 공방에 끌려간다는 느낌이었다. 한겨레가 둔해졌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설에서 굳이 박 신부의 연평도 포격 발언을 길게 언급하면서 한겨레 입장은 그와 다르다는 얘기를 했어야 했는지? 민주당이라면 다음 선거에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걱정과 이해관계 때문에 대중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적인 고려가 있겠지만…. 한겨레 사설은 마치 민주당의 그런 모습과 유사했다. 박찬수 콘텐츠본부장 명백하게 박 대통령이 선거부정에 직접 개입했다는 증거가 충분하게 나오지 않는 이상 ‘사퇴’를 앞세워 나가기는 어렵다고 본다. 우리는 여러 가능성과 여지를 열어두고 있는데도, 독자들은 기사 제목이나 개인 칼럼의 내용을 보고 그걸 신문사의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가령 전주교구 시국미사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다루면서 ‘대통령 사퇴해야’를 제목으로 뽑으면 외부에선 ‘이게 한겨레의 입장이구나’라고 받아들일 것이다. 전주 시국미사에 관한 기사 제목이 ‘대통령 책임져야’로 나간 데엔 이런 고민이 반영돼 있다. 사설에서 박 신부 발언의 일부 대목과 다소 거리를 두는 듯한 표현을 쓴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신문은 앞서나가는 것보다, 상황을 정확하게 독자에게 전달하고 판단을 하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 신인령 위원장 당장 속 시원하게 ‘사퇴’를 신문이 앞세우다 보면 계속 그런 논조로 밀고 가야 되고, 그러면 한계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내가 보기엔 지금 한겨레의 태도와 방향이 적절하다고 본다. 그러나 사태의 전개 국면에서 판단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더욱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승려들 술판, 보도 가치는 있지만
범죄 아닌데 너무 공격한다는 느낌
채동욱 정보유출 정부발표 썼다가
다음날 반박기사 실어 독자들 혼란” ■ ‘승려들 술판’ 기사 공익적 가치 있나? vs 금기인 ‘종교 내부’를 다룬다는 의미 있다 신인령 위원장 ‘조계종 승려들 밤새 술판’ 기사(<한겨레> 12월3일치 10면)가 큰 화제를 모았다고 들었다. 사진을 보면서 굉장한 것인가 보다 했는데, 내용을 보니 사안의 중요성에 비해 사진이 지나치게 컸다. 우리나라 종교 안에 비리와 위선이 심각할 정도로 있는데, 그런 지적은 없이 단순히 승려들이 술 마셨다는 기사였다. 술집에서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너무 불교 쪽을 공격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창익 사무국장 기사에서도 지적했지만 승려가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건 내부 기율이다. 술 마시는 게 성매매나 도박 등 구체적인 범죄를 구성하는 것도 아니다. 불교 매체라면 모를까, 스님들이 친구들끼리 모여 연수원 안에서 술 마신 걸 그렇게 크게 보도할 공익적 가치가 있는가? 종교인들이 술을 마신다는 건 별로 새로운 사실도 아니고, 어떤 의미에선 스님의 인권 측면에서도 이번 보도는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윤고은 작가 지역신문 등에서 다룰 만한 기사이지 중앙언론에서 크게 다룰 만한 것인지 의문이다. 어마어마한 비리의 시초가 그 술판에 숨어 있는 것도 아닌데…. 김재영 교수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 성역 중 하나가 종교다. 종교 영역 보도는 어떤 맥락에서든지 건드리는 것 자체가 나쁘지는 않다. 구구절절 기사로 얘기하는 것보다 한 컷으로 어필한 좋은 사진뉴스였다. 한겨레의 정체성 훼손과 직결되는 선정적 기사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임석규 에디터 누가 제보를 해온 건 아니고, 우연히 한겨레 기자가 현장을 목격하게 돼 사진을 찍었다. 조계종 내 계파 갈등 등 그 어떤 정치적 배경도 없다. 승려들이 술 마시는 사진이 이렇게 적나라하게 찍힌 건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보도사진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다수의 편집위원이 판단했다. 그 술자리에는 평범한 스님들만이 아니라 조계종 내부에서 꽤 유력한 스님들이 있었다는 점도 보도의 가치로 고려했다. 신인령 위원장 이제 중국 방공식별구역 확대, 북한 장성택 실각설 관련 기사, 그리고 한겨레에 최근 많이 선보이고 있는 여러 연재물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오창익 사무국장 장성택 실각설을 그 보도 첫날 4개면(12월4일치 1~4면)에 펼쳤다. 국정원의 입(국회 브리핑)만 보고 과도하게 도배하다시피 했는데, 그러다 보니 (그 전날 한겨레가 1면 톱으로 제기한) 채동욱 검찰총장 사퇴 사건에 대한 청와대 개입설이 뒤로 빠지고 말았다. 정부 내에 장성택 실각설의 진위를 두고 혼란이 있었음에도 대대적으로 지면을 깐 이유가 뭔지 납득하기 어렵다. 조계완 콘텐츠평가위원 채동욱 혼외 의심 아들 정보유출 사안은, 장성택 실각설에서도 그런 면을 노출했지만 발표나 사태 발생 초기에 한겨레의 보도 대응에 혼란이 있음을 보여줬다. 5일치 1면 머리기사로 곽상도 청와대 민정수석의 옛 부하라는 안전행정부 김아무개씨가 조아무개 행정관한테 정보 확인을 부탁했다는 청와대 발표를 그대로 받아썼다. 그러나 김씨가 왜 정보수집을 부탁했는지는 청와대 쪽도 못 밝혔고, 기사에 김씨의 해명도 없었다. 정작 다음날치 2면에선 김씨와의 인터뷰를 내보내면서, 자신이 정보 확인을 부탁하지 않았다는 김씨 주장을 근거로 전날의 청와대 발표가 의문만 키웠다고 보도했다. 그러다 보니 전날치 1면 기사를 뒤집은 격이 됐고, 독자에게 혼란을 줄 여지가 있었다. 신문의 공정성은 팩트뿐만 아니라 기사의 크기나 지면 배치에서도 좌우된다. ■ ‘장성택 실각설’ 첫 보도 너무 펼친 거 아닌가…무엇이 ‘21세기 디아스포라’인지 잘 안잡혀 후지이 다케시 연구실장 방공식별구역은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국내 상황과의 연관성을 제대로 짚지 못한 것 같다. 그 핵심은 태평양 지역에 전개하고 있는 미군 문제다. 최근 일본에서 통과된 특정비밀보호법 역시 일본과 미국의 군사적 강화를 위한 것이다.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북몰이도 안보 상황을 근거로 하고 있는데 이런 점을 연계해 방공식별구역 문제를 보도했다면 좀더 눈길을 끌었을 것이다. 김도형 에디터 장성택 건의 경우 (‘설’이라는 성격상) 문패 제목을 ‘실각설’로 하는 게 적절한지, ‘실각 관련 국정원의 국회 브리핑’으로 해야 하는지를 두고 편집국에서 논의가 있었다. ‘장성택 실각 가능성 농후’라는 제목 아래 와다 하루키 교수 인터뷰 기사(‘실각설 믿기 힘들다’)를 실었는데 오늘(9일) 아침 북한에서 실각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하루키 교수는 북한을 객관적으로 보려 하는 대표적인 전문가인데 대북 관련 정보는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고 특히 북한 고위 인사의 신상변동 사태는 판단하기 굉장히 어려운 점이 있다. 후지이 다케시 위원이 좀전에 종북몰이 안보 문제를 언급했는데, 정부의 방공식별구역 확대 발표를 다른 신문들은 동북아 정세에 큰 영향을 몰고 오는 것으로 보도했으나 한겨레는 오늘(9일)치 1면에서 차분하고 객관적인 제목(‘이어도 상공에…한·중·일 3국 감시망’)으로 보도했다. 오창익 ‘베이비박스’ 등 여러 연재 기획물들이 내용은 아주 좋은데 다만 연재 형식 때문에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 기획물 첫 보도 때 1면에 치고 나가지만 다음 회부터 안쪽 지면의 후순위로 밀리면서 긴장감이 뚝 떨어지고 눈이 잘 안 간다. 한 면 또는 절반 면을 통째로 쓰는 따위의 고정된 형식에서 탈피해 짧은 스트레이트 등 다양하게 변주하면서 연재를 끌어가면 좋겠다. 윤고은 작가 ‘21세기 코리안 디아스포라’ 기획은 총 6회에 담기엔 너무 큰 주제 설정이었던 듯하다. 해외 주재원으로 나가 있는 사람들, 네팔에 가서 살고 있는 부부들이 사례로 나왔는데 ‘디아스포라’라는 제목을 떼고 보아도 어느 잡지에서든 소개될 법한 사람들로 보인다. 이들이 어떠한 21세기 디아스포라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 더 압축적이고 정확하게 뽑아냈으면 좋았겠다. 무엇이 21세기 디아스포라인가 하는 느낌이 있었다. 정리 조계완 콘텐츠평가실 심의위원 kyewan@hani.co.kr
김영배 서울 성북구청장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윤고은 작가(소설가)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경제연구실장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사내 위원> 박찬수 <한겨레> 콘텐츠본부장(부위원장)
임석규 편집국 정치·사회에디터
김도형 편집국 경제·국제에디터
조계완 콘텐츠평가실 심의위원 ■ 한겨레, 시국미사 의제 선점 기회 놓쳐 vs 대통령 사퇴로 국면 옮겨지면 사태 본질 흐려져 신인령 위원장 천주교 전주교구의 ‘박근혜 대통령 사퇴’ 시국미사,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 파장, 북한 장성택 실각설 등 지난 한달간에도 많은 이슈가 <한겨레> 지면에 주요 기사로 비중 있게 다뤄졌다. 천주교 시국미사부터 말해보자.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사제와 수도사들이 밀양 송전탑, 제주 강정마을 등에서 약자들과 함께 낮은 곳으로 임하는 모습을 정리한 기사(<한겨레> 11월29일치 1·4면)가 좋았다. 다만 <한국일보>, <경향신문> 그리고 인터넷언론들에 전주교구 박창신 원로신부의 육성 인터뷰가 실린 반면 한겨레는 기사 안에서 몇 개 코멘트로만 나갔다. 육성 인터뷰가 아쉬웠다. 특히 박 신부가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군대에서 하사로 제대한 내가 무슨 종북이냐’고 한 말이 있는데 종북몰이를 무력화하는, 기존의 프레임을 깨는 통쾌한 발언이다. 인터뷰가 곤란했던 것도 아닐 것이고 한겨레 기자가 전화 통화도 했는데 정작 인터뷰 기사가 빠졌다. 임석규 정치사회에디터 당시 시국미사(22일 저녁)를 중요 사안으로 봤다. 기자와 사진기자가 박 신부가 미사를 주재한 군산 수송동 성당 현장을 취재했다. 현장 기자가 곧바로 인터뷰를 적극 요청했지만 그때엔 박 신부가 인터뷰에 난색을 표했다. 주말을 거치면서 온라인 매체 등에 인터뷰들이 실리고, 그러면서 한겨레가 별도로 인터뷰해야 하는 의미가 줄어든 점도 있다. 결과적으로 아쉬움이 남는다. 김재영 충남대 교수 한겨레는 시국미사 사실을 미리 인지하고 예고 보도까지 했다. 대통령 퇴진이 이 미사의 핵심 주장이고, 그 며칠 뒤인 27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회의 현실 참여’를 강조하는 권고문을 내놓았다. 이번 시국미사의 파장을 의제로 선점할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 한겨레가 이를 놓쳤다. 토요판(23일치)에 전날 밤의 시국미사 기사가 잠깐 나왔으나 그 뒤 월요일에 1면 머리기사로 치고 나가지 못했다. 박 신부의 연평도 포격 발언을 둘러싼 정치권 공방이 나오고서야 크게 보도했다. 중계보도 식이었다. 연평도 포격 발언 논란이 불거지면서 이쪽(종북 논란)으로 초점이 흐려지더라도, 한겨레가 먼저 ‘대통령 사퇴’ 발언을 제목으로 뽑아 의제로 설정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교황의 현실 참여 권고도 한겨레는 한발 늦게 크게 보도했다. 게다가 토요판(30일치) 커버스토리로 법륜 스님을 다뤘는데, 국정원 사태에 대한 종교계의 역할을 당연히 물었어야 했는데 전혀 그런 얘기는 없이 스님들의 인기 현상 위주로 다뤘다. 한겨레가 의제를 설정하고 다루는 장악 능력과, 파급력 있게 치고 나가는 힘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임석규 에디터 금요일(22일) 아침 편집국 편집회의에서 그날 저녁에 있을 시국미사를 어떤 식으로 지면에 소화할 것인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1면에 비중 있게 보도하자는 의견도 있었고, 1면에 보도하는 순간 한겨레가 대통령 사퇴 주장에 동조하는 것으로 해석될 것이라는 반론도 있었다. 판단의 초점은 이것이 천주교 내의 다수 의견인가 아니면 일부 의견인가, 그리고 일회적 사건인가 아니면 다른 교구, 다른 종교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는 맹아적 조짐인가 여부였다. 편집회의에선 ‘대통령 사퇴’ 주장을 1면에 크게 싣는 게 지금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그 대신 미사 장면을 1면 사진으로 실었다. 덧붙이면,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이 동원된 선거개입 사안을 (선거 무효를 주장할 만한) 부정·관권선거로 볼 것이냐, 민주주의·헌법 파괴의 관점에서 볼 것이냐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있다. 이전 정권의 국가기관이 저지른 선거개입을 현직 대통령 퇴진 문제로 설정할 수 있느냐는 논리적 설득력 문제도 제기된다. 한겨레가 국정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 등 국가기관의 조직적 선거개입 관련 팩트를 어느 매체보다 적극 파헤쳐 보도하고 있다. 대통령 사퇴를 요구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 중 하나는 선거개입과 박근혜 대선 캠프가 연계됐느냐는 것인데 지금까지 밝혀진 팩트만으로는 이 점을 단정 짓기 이르다. 국가기관들이 어느 정도로 부당한 정치개입을 했는지 그 팩트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모아야 할 때인데, ‘대통령 사퇴 논란’으로 국면이 옮겨지는 순간 오히려 사태의 본질이 흐려지거나 묻힐 수 있다고 봤다. “천주교가 내민 의제 제대로 못살려
종북 논란에도 더 세게 받아쳤어야”
“사퇴 요구, 아직은 대중정서와 거리
지금의 보도방향 적절하다고 본다” ■ ‘대통령 사퇴하라’ 제기할 시점 vs 사퇴 요구할 뚜렷한 근거 미흡 이남신 비정규센터 소장 박창신 신부의 말씀 중에 박 대통령 사퇴 못지않게 이명박 전 대통령의 책임과 구속을 말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불법·부정선거 문제가 정권의 안위와 직결되는 심각성을 띠고 있다는 점을 다시금 일깨워준 것이다. 물론 기득권이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성직자 직분에서 그런 말을 했겠지만, 사퇴 주장은 시대정신을 반영한 발언이었다. 천주교와 박 신부가 제공한 불씨를 한겨레가 불길로 붙여가지 못한 듯하다. 부정선거 이슈에 활동가들만 맞서는 형국에서 박 신부와 천주교가 문을 확 열어주었는데 한겨레가 이를 좀더 공격적으로, 위험부담을 무릅쓰고라도 제기해봐야 할 시점이다. 물론 대통령 사퇴를 앞세울 것이냐 아니냐를 두고 민주당 내부에서도, 또 시국회의(‘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총체적 대선개입 및 박근혜 정부의 수사방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사회 시국회의’) 안에서도 치열한 공방이 있다. 특검 수용 정도로 가는 게 맞는지, 사퇴를 걸고 나가는 게 정치적으로 바람직한지를 선도적으로 한겨레가 다뤄보면 좋겠다. 김영배 성북구청장 저는 의견이 좀 다르다. 부정선거가 문제라면 총책임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이고, 이전 정부의 국가기관들이 조직적으로 벌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1차적인 부정선거의 행정적·실체적 책임자는 전 정권으로, 어떤 이유에서든 다음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현직 대통령이 그 불법부정선거의 수혜를 보았는지 또 사전에 인지했는지는 그다음 별도의 문제다. 물론 집권하고 나서 그런 부정선거 사실을 은폐하려고 한 대목은 현직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 선거부정이 있었다면 논리적으로, 현실적으로 볼 때 일단은 전직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대목을 한겨레가 구분해서 명확하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곧바로 ‘현직 대통령 사퇴’ 요구를 하기에는 논리적 간극이 있는 게 사실이다. 오창익 사무국장 그러나 한나라당이 2012년 초부터 새누리당으로 간판을 바꾸고 박근혜 비대위 체제로 전환했다. 사실상 ‘박근혜 정당’으로 완전히 바뀌었고 2012년은 일종의 연합정권으로 볼 여지도 있다. 정부기관들이 이미 그 미래 권력으로 쏠리는 현상도 있었다. 따라서 선거부정 책임이 명백하게 박 대통령에게도 있다. 김도형 경제국제에디터 (전주교구에서 지난 대선을) 전체적인 부정선거로 규정했는데, 부정선거의 근거가 그럼 무엇이냐에 이르면 (현재까지 드러난 팩트를 바탕으로 볼 때) 과연 박 대통령 사퇴까지 요구할 사안이냐는 대목은 논란이 될 수 있다. (언론에서) 사퇴를 적나라하게 내세우는 건 부담이 있다. 엄격한 의미에서 (현 정권이 저지른) 부정선거의 근거가 명시적으로 제시됐다고 쉽게 말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경제연구실장 박 대통령 퇴진 문제가 쟁점화됐을 때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졌다’는 제목의 한겨레의 갤럽 여론조사 기사를 보니 여전히 지지율이 50% 이상이었다. 사퇴가 제기되고 있으나 대중적 여론 정서는 아직 다른 것 같다. 이러한 괴리를 정교하게 분석해 보여주는 기획을 지면에서 다뤄주면 좋겠다. 또 11월28일치 3면에 실은 교황의 현실 참여 권고문은 그 사안의 중요성에 비춰 볼 때 작게 다뤄진 것 같다. 권고문 중에 자본주의 비판 등 따로 뽑아내서 의제로 다뤄볼 만한 말들이 꽤 있었다. 고윤덕 변호사 한겨레에 실린 시국미사 사진 속 장면에 ‘박 대통령 사퇴하라’는 글씨가 선명한데, 한겨레의 관련 기사 제목은 ‘박근혜 책임져야’였다. 물론 ‘대통령 사퇴’라는 말을 꺼내기엔 한겨레 입장이 매우 조심스럽고, 선제적으로 치고 나가면 자칫 정치적 공방에 휩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에서 종북몰이로 대응한 이후, 교황청 권고가 나오면서 천주교의 입장이 좀더 순수하게 다가오는 극적 효과도 있었다. 임석규 에디터 박 신부의 발언 중에 ‘책임져야’라는 표현도 있었다. ‘사퇴’로 제목 뽑는 순간 불필요하게 초점이 흐려질 수 있다는 고민을 했다. 즉 종편들이 사퇴 주장을 맹비난하면서 근거도 없이 종북몰이를 쏟아냈는데 한겨레가 주장을 지나치게 앞세워 사퇴를 의제화하면 왼쪽 진영의 또다른 종편처럼 비칠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팩트에 입각해 근거를 제시하면서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주장을 할 때 신문의 힘이 더욱 강해지고 신뢰도 높아질 것이다. 왜 한겨레가 이번 사안에 대해 뜨뜻미지근하게 보도하고 대중적 여론 형성에 나서지 않는가 하는 지적이 있는데 이런 고민이 있다. 신문은 정치적 집단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 ‘신부 발언 오해 소지 있다’ 사설 소극적 vs 신문 게재 글 전부가 한겨레 입장으로 이해될 우려 이남신 소장 박 신부의 연평도 포격이나 천안함 북침 발언 대목을 전체적 맥락에서 보면 북한을 두둔한 게 아니다. 남북 평화를 함께 책임져야 하는데 어리석게 북한에 도발의 빌미를 제공한 데 대한 비판이었다. 그런데도 종편 등에서 종북논리로 몰아간 상황에서 한겨레가 좀더 왼쪽에 서는 모습은 필요했다. 물론 민감한 사안이고 공적 언론이 대통령 사퇴나 이명박 구속을 입장으로 표명하는 게 바람직한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부정·불법 선거 프레임이 한순간에 종북 프레임으로 바뀌고 있는 국면에서 그 대척점에 선 한겨레가 좀더 목소리를 키워 세게 받아쳤어야 한다. 김재영 교수 박 신부의 강론 파문이 일어나자 한겨레가 사설(11월25일치 35면)에서 ‘박 신부의 발언은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박 신부의 강론 동영상을 보면 다른 쪽에서 견강부회하고 있는 것이지, 오해할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그 사설은 한겨레가 이 사안에 굉장히 소극적으로 반응했음을 보여준다. 이른바 ‘조중동’이 되살아난 때가 오히려 참여정부 시절이었다고 한다. 당시 정부 비판을 무지몽매할 정도로 세고 선명하게 내지르면서 대중에게 각인된 것이다. 그에 비춰 볼 때 지금은 한겨레가 그 존재가치를 입증할 좋은 기회인데도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김도형 에디터 박 신부의 강론 전문을 실어서 독자에게 판단을 구하는 방식으로 해볼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좀 있다. 그러나 박 신부 강론 중 연평도 포격을 두고 ‘독도는 우리 땅인데 일본이 와서 훈련하면 쏴야 한다’고 비유한 대목은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신인령 위원장 시국미사 다음날인 11월23일(토)엔 대통령 사퇴 주장의 파장을 잘 파악하지 못했거나 박 신부의 강론 전문을 못 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겨레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자 하는 건 무난했다고 본다. 그러나 그 뒤 월요일치(25일)에서도 전체적 맥락을 놓치거나 박 신부가 말하려는 취지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한 느낌이다. 25일치 사설은 적절한 거리를 두는 정도가 아니라 한겨레가 사태 공방에 끌려간다는 느낌이었다. 한겨레가 둔해졌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설에서 굳이 박 신부의 연평도 포격 발언을 길게 언급하면서 한겨레 입장은 그와 다르다는 얘기를 했어야 했는지? 민주당이라면 다음 선거에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걱정과 이해관계 때문에 대중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적인 고려가 있겠지만…. 한겨레 사설은 마치 민주당의 그런 모습과 유사했다. 박찬수 콘텐츠본부장 명백하게 박 대통령이 선거부정에 직접 개입했다는 증거가 충분하게 나오지 않는 이상 ‘사퇴’를 앞세워 나가기는 어렵다고 본다. 우리는 여러 가능성과 여지를 열어두고 있는데도, 독자들은 기사 제목이나 개인 칼럼의 내용을 보고 그걸 신문사의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가령 전주교구 시국미사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다루면서 ‘대통령 사퇴해야’를 제목으로 뽑으면 외부에선 ‘이게 한겨레의 입장이구나’라고 받아들일 것이다. 전주 시국미사에 관한 기사 제목이 ‘대통령 책임져야’로 나간 데엔 이런 고민이 반영돼 있다. 사설에서 박 신부 발언의 일부 대목과 다소 거리를 두는 듯한 표현을 쓴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신문은 앞서나가는 것보다, 상황을 정확하게 독자에게 전달하고 판단을 하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 신인령 위원장 당장 속 시원하게 ‘사퇴’를 신문이 앞세우다 보면 계속 그런 논조로 밀고 가야 되고, 그러면 한계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내가 보기엔 지금 한겨레의 태도와 방향이 적절하다고 본다. 그러나 사태의 전개 국면에서 판단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더욱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승려들 술판, 보도 가치는 있지만
범죄 아닌데 너무 공격한다는 느낌
채동욱 정보유출 정부발표 썼다가
다음날 반박기사 실어 독자들 혼란” ■ ‘승려들 술판’ 기사 공익적 가치 있나? vs 금기인 ‘종교 내부’를 다룬다는 의미 있다 신인령 위원장 ‘조계종 승려들 밤새 술판’ 기사(<한겨레> 12월3일치 10면)가 큰 화제를 모았다고 들었다. 사진을 보면서 굉장한 것인가 보다 했는데, 내용을 보니 사안의 중요성에 비해 사진이 지나치게 컸다. 우리나라 종교 안에 비리와 위선이 심각할 정도로 있는데, 그런 지적은 없이 단순히 승려들이 술 마셨다는 기사였다. 술집에서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너무 불교 쪽을 공격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창익 사무국장 기사에서도 지적했지만 승려가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건 내부 기율이다. 술 마시는 게 성매매나 도박 등 구체적인 범죄를 구성하는 것도 아니다. 불교 매체라면 모를까, 스님들이 친구들끼리 모여 연수원 안에서 술 마신 걸 그렇게 크게 보도할 공익적 가치가 있는가? 종교인들이 술을 마신다는 건 별로 새로운 사실도 아니고, 어떤 의미에선 스님의 인권 측면에서도 이번 보도는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윤고은 작가 지역신문 등에서 다룰 만한 기사이지 중앙언론에서 크게 다룰 만한 것인지 의문이다. 어마어마한 비리의 시초가 그 술판에 숨어 있는 것도 아닌데…. 김재영 교수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 성역 중 하나가 종교다. 종교 영역 보도는 어떤 맥락에서든지 건드리는 것 자체가 나쁘지는 않다. 구구절절 기사로 얘기하는 것보다 한 컷으로 어필한 좋은 사진뉴스였다. 한겨레의 정체성 훼손과 직결되는 선정적 기사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임석규 에디터 누가 제보를 해온 건 아니고, 우연히 한겨레 기자가 현장을 목격하게 돼 사진을 찍었다. 조계종 내 계파 갈등 등 그 어떤 정치적 배경도 없다. 승려들이 술 마시는 사진이 이렇게 적나라하게 찍힌 건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보도사진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다수의 편집위원이 판단했다. 그 술자리에는 평범한 스님들만이 아니라 조계종 내부에서 꽤 유력한 스님들이 있었다는 점도 보도의 가치로 고려했다. 신인령 위원장 이제 중국 방공식별구역 확대, 북한 장성택 실각설 관련 기사, 그리고 한겨레에 최근 많이 선보이고 있는 여러 연재물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오창익 사무국장 장성택 실각설을 그 보도 첫날 4개면(12월4일치 1~4면)에 펼쳤다. 국정원의 입(국회 브리핑)만 보고 과도하게 도배하다시피 했는데, 그러다 보니 (그 전날 한겨레가 1면 톱으로 제기한) 채동욱 검찰총장 사퇴 사건에 대한 청와대 개입설이 뒤로 빠지고 말았다. 정부 내에 장성택 실각설의 진위를 두고 혼란이 있었음에도 대대적으로 지면을 깐 이유가 뭔지 납득하기 어렵다. 조계완 콘텐츠평가위원 채동욱 혼외 의심 아들 정보유출 사안은, 장성택 실각설에서도 그런 면을 노출했지만 발표나 사태 발생 초기에 한겨레의 보도 대응에 혼란이 있음을 보여줬다. 5일치 1면 머리기사로 곽상도 청와대 민정수석의 옛 부하라는 안전행정부 김아무개씨가 조아무개 행정관한테 정보 확인을 부탁했다는 청와대 발표를 그대로 받아썼다. 그러나 김씨가 왜 정보수집을 부탁했는지는 청와대 쪽도 못 밝혔고, 기사에 김씨의 해명도 없었다. 정작 다음날치 2면에선 김씨와의 인터뷰를 내보내면서, 자신이 정보 확인을 부탁하지 않았다는 김씨 주장을 근거로 전날의 청와대 발표가 의문만 키웠다고 보도했다. 그러다 보니 전날치 1면 기사를 뒤집은 격이 됐고, 독자에게 혼란을 줄 여지가 있었다. 신문의 공정성은 팩트뿐만 아니라 기사의 크기나 지면 배치에서도 좌우된다. ■ ‘장성택 실각설’ 첫 보도 너무 펼친 거 아닌가…무엇이 ‘21세기 디아스포라’인지 잘 안잡혀 후지이 다케시 연구실장 방공식별구역은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국내 상황과의 연관성을 제대로 짚지 못한 것 같다. 그 핵심은 태평양 지역에 전개하고 있는 미군 문제다. 최근 일본에서 통과된 특정비밀보호법 역시 일본과 미국의 군사적 강화를 위한 것이다.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북몰이도 안보 상황을 근거로 하고 있는데 이런 점을 연계해 방공식별구역 문제를 보도했다면 좀더 눈길을 끌었을 것이다. 김도형 에디터 장성택 건의 경우 (‘설’이라는 성격상) 문패 제목을 ‘실각설’로 하는 게 적절한지, ‘실각 관련 국정원의 국회 브리핑’으로 해야 하는지를 두고 편집국에서 논의가 있었다. ‘장성택 실각 가능성 농후’라는 제목 아래 와다 하루키 교수 인터뷰 기사(‘실각설 믿기 힘들다’)를 실었는데 오늘(9일) 아침 북한에서 실각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하루키 교수는 북한을 객관적으로 보려 하는 대표적인 전문가인데 대북 관련 정보는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고 특히 북한 고위 인사의 신상변동 사태는 판단하기 굉장히 어려운 점이 있다. 후지이 다케시 위원이 좀전에 종북몰이 안보 문제를 언급했는데, 정부의 방공식별구역 확대 발표를 다른 신문들은 동북아 정세에 큰 영향을 몰고 오는 것으로 보도했으나 한겨레는 오늘(9일)치 1면에서 차분하고 객관적인 제목(‘이어도 상공에…한·중·일 3국 감시망’)으로 보도했다. 오창익 ‘베이비박스’ 등 여러 연재 기획물들이 내용은 아주 좋은데 다만 연재 형식 때문에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 기획물 첫 보도 때 1면에 치고 나가지만 다음 회부터 안쪽 지면의 후순위로 밀리면서 긴장감이 뚝 떨어지고 눈이 잘 안 간다. 한 면 또는 절반 면을 통째로 쓰는 따위의 고정된 형식에서 탈피해 짧은 스트레이트 등 다양하게 변주하면서 연재를 끌어가면 좋겠다. 윤고은 작가 ‘21세기 코리안 디아스포라’ 기획은 총 6회에 담기엔 너무 큰 주제 설정이었던 듯하다. 해외 주재원으로 나가 있는 사람들, 네팔에 가서 살고 있는 부부들이 사례로 나왔는데 ‘디아스포라’라는 제목을 떼고 보아도 어느 잡지에서든 소개될 법한 사람들로 보인다. 이들이 어떠한 21세기 디아스포라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 더 압축적이고 정확하게 뽑아냈으면 좋았겠다. 무엇이 21세기 디아스포라인가 하는 느낌이 있었다. 정리 조계완 콘텐츠평가실 심의위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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