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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그만, 낙태죄를 놓아주십시오 / 천지선

등록 2020-10-05 18:34수정 2020-10-21 17:29

낙태죄 ‘완벽한 폐지’를 위한 숙의 ⓛ

천지선 ㅣ 변호사·낙태죄 헌법소원 대리인단

저는 낙태죄 헌법소원 사건을 수행했습니다. 반도체 여성 노동자의 유방암 업무상 재해 사건도, 소방관의 자살 공무상 재해 사건도 수행했습니다. 제 주요 관심사는 생명과 건강입니다. 임신 중 여성 노동자의 업무로 인한 2세의 건강 장해에 관한 칼럼을 쓰며, 남성 노동자의 업무로 인한 재생산·2세 건강 손상 문제도 함께 다룹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저를 보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임신 중 여성 노동자의 업무로 인한 2세의 건강 장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라는 주장과 낙태죄를 폐지하라는 주장을 동시에 하는 건 모순이 아니냐고 말입니다. 법률적으로 혹은 논리적으로는 모순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모순을 느낀 적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우선 우리 법률은 원칙적으로 태아를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법률에서 사람이란 자연인과 법인이고, 자연인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됩니다(민법 제3조). 태아가 자연인과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법과 판례 그리고 우리는 모두 생명이 절대적이지 않으며 상대적이라는 것, 다시 말해 생명의 가치가 늘 같지는 않음을 알고 있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4월11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국가에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하더라도 생명의 연속적 발전과정에 대하여 생명이라는 공통요소만을 이유로 하여 언제나 동일한 법적 효과를 부여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했습니다. 상대적인 생명의 가치 때문에 양심의 고통을 호소하는 분들께는 감히 부탁드리겠습니다. 절대적 가치에 대한 동경은 일종의 오만일 수 있으니, 멀고 허상일지 모르는 생명이라는 말에 붙들리지 말고 당신 가까이 있는 가족, 친구, 직장 동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밥 한 끼를 같이하며,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가족을 잃고 고통스러워하는 재해 피해자의 유족들과 연대하며, 그렇게 고통을 이겨내 달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감히 덧붙입니다. 낙태죄는 생명을 보호하지 않습니다. 생명과 건강을 중시하면서도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데 모순을 느끼지 않는 두번째 이유입니다. 낙태죄가 엄격해질수록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서의 임신중지와 그로 인한 모성 사망률이 증가할 뿐입니다. 루마니아의 과거 사례를 보면, 임신중지를 금지한 뒤인 1983년 모성 사망비(임신 중이거나 출산 뒤 7주 이내 사망하는 여성의 숫자)는 금지 전인 1966년보다 7배 늘었습니다. 헌재도 다음과 같이 낙태죄는 여성의 건강과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게 하며, 그 실효성이 크지 않음을 인정했습니다. “수많은 시대와 사회에서 여성들은 형벌의 위하(힘으로 으르고 협박함)를 무릅쓰고 자신의 건강 또는 생명의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원치 않은 임신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자기 낙태를 감행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임신한 여성이 낙태할 것인지 여부를 고민한 후 낙태하기로 결정한 경우에 있어서 형법적 제재 및 이에 따른 형벌의 위하로써 그 여성에게 임신의 유지 및 출산을 강제하는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세 번째 이유는 형벌은 최후의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헌재는 “원치 않은 임신을 예방하고 낙태를 감소시킬 수 있는 사회적·제도적 여건을 마련하는 등 사전적·사후적 조치를 종합적으로 투입하는 것이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실효성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자기결정권이 보장되려면 임신한 여성이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하여 전인적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을 실행함에 있어서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향후 입법 방향을 이미 제시했습니다. 낙태죄 때문에 “임신한 여성은 임신 유지로 인한 신체적·심리적 부담, 출산 과정에 수반되는 신체적 고통·위험을 감내하도록 강제당하는 것뿐만 아니라 (…) 경제적 부담, 직장 등 사회생활에서의 어려움, 학업 계속의 곤란, 경력단절 등을 포함한 각종 고통까지 겪을 것을 강제당”했다고도 보았습니다. 당신이 그저 태아를 인질로 잡아 여성을 억압하고 국가의 출산 기계로 삼으려는 것이 아니라면, 임신에 기여한 남성도 끝까지 추적해 처벌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이제 그만, 석달 후에 사라질 낙태죄를 마음에서도 놓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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