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규ㅣ‘국가보안법 폐지 국민행동’ 공동대변인·화성노동인권센터 소장
북한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출간·판매 문제로 소란스럽다.
지난 1일 국내 한 출판사가 북한의 원전을 그대로 옮겨 8권 세트로 발간했다. 교보문고에서도 온라인으로 이미 10여부가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일부 보수단체에서 법원에 ‘판매 및 배포 금지’ 가처분신청을 냈고, 교보문고는 지난 23일 대책회의를 열어 ‘판매 중단’을 결정했다. 책을 구매한 고객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리고 27일 서울경찰청 안보수사대는 고발장이 접수되어 수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도저히 웃을 수도 없는, 기가 막힌 희극의 현장이다. 그 정점을 찍은 것은 바로 ‘국민의힘’이다. 지난 22일 박기녕 부대변인 명의의 논평에서 ‘비록 대법원이 이적 표현물로 판단했으나, 국민에게 맡겨도 충분하다’는 취지를 밝혔다. 27일 주호영 대표 권한대행은 “좀 더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말했다.
부장판사 출신으로 법학박사 학위까지 갖고 있는 주호영 권한대행에게 묻는다. “과연 이게 법인가?” 무릇 법이라면 ‘집행의 엄정함’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런데 이 ‘국가보안법’은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법인가? 논평에서도 밝힌 것처럼 ‘대법원에서도 이적 표현물로 판단했다’면 그에 맞게 처벌을 하는 것이 옳을 터인데, 국회 제1야당 대표 권한대행은 “논의가 좀 더 필요하다”고 했다. 참으로 희한하다. 논의를 해서 ‘그냥 넘어가자’고 하면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갈 수도 있고, ‘그래도 처벌해야 한다’고 하면 엄정하게 처벌을 하겠다는 것인가? 게다가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은, 그 판단의 권한을 누가 국민의힘에 주었다는 것인가? 삼권분립주의와 법치주의에 입각하여 법을 해석하고 판단하여 적용하는 헌법기관은 엄연히 사법부일진대, 주호영 대표 권한대행은 무엇을 더 논의하겠다는 것인지도 참으로 알쏭달쏭하다.
국가보안법이 이런 법이다. ‘법’이라는 이름은 달고 있되, 그간 권력자의 입맛에 따라 기분 내키는 대로 휘둘렀던 것이 바로 국가보안법이다. 오죽하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 이 법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문구가 되었겠나. 그리고 그렇게 자의적으로 휘두른 서슬 퍼런 칼날에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 특히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과 자주와 통일을 외쳤던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어 왔나!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고, 촛불혁명 이후 들어선 인권변호사 출신 문재인 정권에서도 버젓이 자행되는 일이다.
그러니 이제 그만, 늦어도 한참 늦은 지금이라도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는 것 아니겠나. ‘법 같지도 않은 법’이 최고 법규인 헌법마저 무참하게 짓누르며 ‘사상·양심·표현의 자유’를 질식시키는 이 현실을 우리가 어떻게 ‘민주주의 국가’, ‘법치국가’라고 일컬을 수 있겠나.
바로 그래서, 지난 22일 국민의힘 논평은 ‘국가보안법 폐지에 동의한다’는 선언으로밖에는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다. ‘대법원이 이적표현물로 판단했으나, 국민의 판단에 맡기자’고 했다. ‘국민 개개인의 판단에 맡겨도 충분한 일’을 법으로 규제해서는 안 된다. 아니, 애당초 법률로 성안이 가능할 수가 없는 문제였다. 법학박사 출신이니 주호영 대표 권한대행이 누구보다 잘 알 터다. 늦게라도 동참 의사를 표한 데 대해 뜨거운 환영의 마음을 전한다. 모든 정당과 시민사회단체에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행동’에 국민의힘도 함께하길 바란다. 무엇보다 국민의힘이 직접 나서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공식 발의한다면, 그보다도 더 멋진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