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말레이시아 쿠칭에서 열린 ‘제13회 아시아 포 애니멀스’ 콘퍼런스에서 참가자가 발표를 하고 있다. 아시아동물연합 제공
며칠 남지 않은 2023년을 뒤돌아보면, 몇몇 인상적인 순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가장 큰 일은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오랜 기간 노력해온 야생동물카페와 실내동물원 문제를 해결할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수족관법) 개정안이 시행된 것이다. 또 하나는 지난 10월 말레이시아 북부 도시 쿠칭에서 열린 ‘제13회 아시아 포 애니멀스(Asia For Animals) 콘퍼런스’에 참가해 한국의 야생동물카페 현황과 법 개정을 통한 금지 과정 등을 소개한 일이다.
‘동물 문제’ 총출동…올해의 주제는요?
아시아 포 애니멀스 콘퍼런스는 아시아 국가에서 활동하는 동물단체들의 연대체인 ‘아시아동물연합(Asia for Animals Coalition, AFA)’ 주최로 2년에 한 번씩 개최된다. 2001년 필리핀을 시작으로 홍콩, 중국, 싱가포르, 인도, 인도네시아, 네팔 등에서 개최됐다. 이번에는 말레이시아에서 10월11일부터 14일까지 나흘간 진행됐다. 비영리단체, 정부 기관, 학계, 정치인, 언론사 등 동물복지에 관련이 있는 참가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아시아권 국가에서 발생하는 동물복지 문제와 활동, 연구 성과 등을 공유하고 해결 방안 등을 모색하는 자리다.
2년마다 개최되는 ‘아시아 포 애니멀스’ 콘퍼런스는 아시아 각국의 활동가, 정치인, 정부 관계자, 언론인이 모여 동물과 관한 현안과 활동 등을 공유하는 자리다. 아시아동물연합 제공
매회 콘퍼런스는 하나의 주제로 열리는데, 이번 콘퍼런스의 주제는 ‘변화를 가져오는 교육과 참여’(Education and Engagement Bring Change)였다. 나흘간 열린 각 세션은 교육, 참여, 변화 등 세 가지 열쇳말로 진행됐는데 아시아 각국에서 참가한 발표자만 65명에 달했다.
많은 참가 인원만큼이나 발표 주제도 다양했다. 보호소 동물복지 분야는 정책, 교육, 수의학, 법학 등 세분된 주제로 발표가 이뤄졌고, 동물 학대와 동물 보건, 동물법, 동물보호와 보전 교육에 대한 발표도 이어졌다. 길고양이 중성화(TNR)나 야생동물 재활, 생크추어리 운영 등 최근 관심이 높은 주제들도 포함됐다.
발표자로 참여한 어웨어는 ‘야생동물카페 현황과 법 개정을 통한 금지 과정’에 대해 발표했다. 과거 우리나라는 동물원과 수족관에 대한 법률이 없었다. 그러다 2016년 동물원수족관법에 제정되며 동물원의 설립과 운영 근거 등을 마련하게 되었는데, 이 법안에는 동물복지에 대한 규정이 없고 종별 서식 기준이나 야생동물의 전시 규정 등이 미비했다.
6년 만에 이뤄진 동물원수족관법 개정
2017년 동물원수족관법이 시행되자 아이러니하게도 법적인 사각지대를 이용해 야생동물을 오락의 대상으로 제공하는 전시시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동물원은 아니지만, 야생동물을 전시하며 만지기, 먹이주기 등의 체험을 벌이는 야생동물카페, 실내동물원 등이 늘어난 것이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이형주 대표가 ‘제13회 아시아 포 애니멀스’ 콘퍼런스에 참가해 발표를 하고 있다. 아시아동물연합 제공
그중 가장 인기를 끈 야생동물카페는 동물에게는 최악의 환경이었다. 대부분의 업체가 상가 건물에서 운영되었는데, 이러한 실내 시설은 야생동물의 습성을 충족할 시설과 환경 조성이 애초에 불가능했다. ‘동물과의 접촉’이 목적이다 보니 동물과 관람객 간의 최소한의 거리나 경계도 존재하지 않았다. 동물의 복지가 훼손될 뿐 아니라 질병 감염, 물림 사고 위험성도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2020년에는
국내 실내동물원 두 곳에서 인수공통감염병 병원체가 검출되는 일도 있었다.
어웨어는 이렇게 야생동물카페가 동물복지, 공중보건, 생물다양성에 끼치는 다양한 위험성에 대해 증거를 수집하고 공개하며 정책 개선을 요구해왔다. 지속적인 활동을 펼친 결과 정부와 국회도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데 공감대를 형성했고, 지난해 마침내 활동 6년 만에 동물원수족관법과 야생생물법 개정이 이뤄졌다.
어웨어는 이번 콘퍼런스에서 ‘야생동물카페 현황과 법 개정을 통한 금지 과정’에 대해 발표했다. 어웨어 제공
개정 법안은 지난 14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는데, 이에 따라 동물원은 기존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운영 기준이 강화됐고 동물원이 아닌 장소에서는 야생동물을 전시하지 못하게 됐다. 기존에 운영되던 야생동물카페는 4년간의 유예기간을 뒀지만, 이 기간에도 야생동물을 만지거나 올라타는 행위는 금지됐다. 더불어 야생생물법 개정으로 ‘백색목록 제도’가 도입돼 2024년 시행을 앞두고 있다.
야생동물카페 금지, 모범사례로 꼽히다
어웨어의 발표는 특히 다른 아시아 국가 활동가들의 관심을 모았다. 코끼리 트레킹, 악어쇼 등 야생동물을 오락·관광 산업에 동원하는 것은 이미 익숙한 문제이긴 했지만, 야생동물을 ‘카페’에서 전시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산업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번 법 개정을 통해 야생동물카페를 관리하는 분위기지만, 아시아 다른 국가에서는 문제를 방치하거나 오히려 심각해지는 추세였다. 일본에서는 수달카페, 부엉이카페 등이 성행하고 있는데 아직 정책적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없고, 인도네시아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야생동물 카페를 모방한 사향고양이 카페 등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발표 내용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끈 것도 백색목록 제도였다. 백색목록 제도는 사업자 등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야생동물 종을 정부가 지정하도록 한 제도다. 개인 소유가 금지되는 일부의 야생동물 종을 지정하는 방식 대신, 개인 소유가 ‘허용되는 종’을 지정함으로써 국내 생태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래 야생생물을 폭넓게 관리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서구권 국가 참가들이 주로 큰 관심을 보였는데, 대부분 법 시행이 부럽다는 반응이었다. 어떻게 법 개정까지 이끌어낼 수 있었는지 구체적인 질문이 이어졌고, 야생동물 거래 규모가 큰 홍콩의 참가자들은 정부에 해외 모범사례로 우리나라를 소개하겠다며 추가 자료를 요청하기도 했다.
‘온라인 동물학대’ 중요 문제로 다뤄져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주제는 바로 유튜브, 틱톡 등 소셜미디어에 공유되는 동물학대 영상 문제였다. 이번 콘퍼런스에서도 이 주제를 중요하게 다뤘는데, 아시아동물연합(AFA)은 2020년부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대체(SMACC, Social Media Animal Cruelty Coalition)를 구성하고 매년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이번 콘퍼런스에서는 온라인 동물학대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아시아동물연합(AFA)은 2020년부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대체(SMACC, Social Media Animal Cruelty Coalition)를 구성하고 매년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아시아동물연합 제공
현재 여러 소셜 플랫폼에서는 동물 성 학대, 반려동물 학대, 야생동물 거래, 관광 산업에서 발생하는 학대, 잔인한 사냥 장면 등 다양한 동물학대를 담은 영상이 유통되고 있다. 아시아동물연합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 등에서 마카크원숭이가 등장하는 콘텐츠 1226개를 분석해 지난해 발표했는데, 60%가 원숭이에게 직접적이고 신체적인 학대를 가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등의 학대 영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콘텐츠의 조회 수는 총 120억 회에 달했다. 원숭이 학대 영상뿐 아니라 최근에는 일부러 동물에게 부상을 입힌 뒤 동물 구조 장면을 연출하는 ‘가짜 구조 영상’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러한 온라인 동물 학대는 다국적 플랫폼 특성상 범죄자를 찾아내기 어렵다는 점, 국가마다 동물 학대에 대한 정의나 관련 법률이 달라 법적 대응이 쉽지 않다는 점, 신체적 상해만을 동물 학대로 보는 관점 탓에 동물에게 겁을 주거나 열악한 환경에 처하게 하는 영상이 동물 학대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아시아동물연합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전 세계 사용자들에게 ‘5단계 캠페인’을 시행하자고 제안했다. 첫째, 문제를 인식하기. 둘째는 시청하지 않기, 셋째는 댓글로 참여하지 않기, 넷째는 공유하지 않기, 다섯째는 보고하기 등이다. 특히 영상에 ‘싫어요’를 누르거나 비난 댓글을 다는 것도 조회 수를 올리는 데 기여하게 되고 결국 게시자에게 경제적 이익을 준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면서 이 또한 자제하길 권했다
“동물운동의 핵심은 협력”
우리는 도대체 왜 2년 마다 한 자리에 모여 동물 문제를 논하고, 고민하는 걸까. “협력은 동물보호 운동의 핵심”이라는 사라 그랜트 아시아동물연합 대표의 말에 그 답이 있다. 아시아 포 애니멀스 콘퍼런스는 현장 활동가들의 정보 교환 이상의 의미가 있다. 동물보호라는 같은 목표를 지닌 사람들이 2년에 한 번 직접 만나 서로의 얼굴을 보고 어깨를 두드리며, 서로의 역할과 노력에 존경과 감사를 표하는 것만으로도 활동가들은 큰 동력을 얻는다.
우리는 도대체 왜 2년 마다 한 자리에 모여 동물 문제를 논하고, 고민하는 걸까. “협력은 동물보호 운동의 핵심”이라는 사라 그랜트 아시아동물연합 대표의 말에 그 답이 있다. 아시아동물연합 제공
지난 10월 말레이시아 쿠칭에서 열린 ‘제13회 아시아 포 애니멀스’ 콘퍼런스에 참가한 어웨어 이형주 대표(오른쪽)와 박도은 연구원. 어웨어 제공
‘눈만 돌리면 도움을 필요로 하는 동물이 보이는 세상’에서 내 손길이 닿지 못하는 곳에 내 동료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정신적 피로와 부담감이 덜어지는 기분이다. 특히 콘퍼런스를 마치고 싱가포르와 대만의 활동가들과 함께 바코국립공원(Bako National Park)에 방문해 코주부원숭이를 관찰한 것은 값진 경험이었다. 갇혀 있는 야생동물의 모습이 더 익숙한 나에게, 나름의 방식으로 온전한 삶을 사는 야생동물을 먼 거리에서 마주한 순간은 내가 왜 이 일에 몰두하고 있는지 일깨워주는 기회가 됐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