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민형배 ㅣ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광주 광산구을)
“국가보안법은 폐지한다.” 제가 준비한 국가보안법 폐지 법률안의 본문입니다. 단 한 줄이면 충분했습니다. 무려 74년 동안이나 시민의 삶을 옥죄었던 악법을 없애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1945년 해방으로 일본은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해 만들었던 치안유지법의 망령은 국가보안법이란 이름으로 남았습니다.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가 자국 시민들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악법을 만들었습니다. 제정 당시부터 인권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식민지 시대 잔재를 계승하는 부끄러운 법입니다.
군사독재정권은 부당한 권력유지에 국가보안법을 악용했습니다. 간첩사건을 날조하고, 수많은 민주인사를 고문하고 가두었습니다. 소중한 생명을 함부로 앗아갔습니다. 이미 재심 등을 통해 다 밝혀진 사실입니다. 국가보안법이 아니라 정통성이 허약한 정권보안법이었습니다.
1987년 6월 항쟁을 거치면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시민적 공론이 뜨거웠습니다. 그럼에도 국회는 “폐지한다”는 단 한 줄의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했습니다. 입법노동자로서 아직껏 이 악법이 건재하다는 사실에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도 참담하고 안타깝습니다.
지난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국회의장과 법무부 장관에게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했습니다. 인권위는 국가보안법이 “제정 과정부터 태생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며 “수차례의 개정 과정도 국민적 합의를 거치지 않아 절차적 정당성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법률의 규범력이 부족한 법으로서 그 존재 근거가 빈약한 반인권적 법”이라고도 했습니다.
아울러 “국가보안법은 몇 개 조문 개정으로는 문제점들이 치유될 수 없고, 그 법률의 자의적 적용으로 인권을 침해”했으며, “규정 자체의 인권침해 소지로 인해 끊임없는 논란을 일으켜 왔다”고도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은 ‘전면 폐지’하는 것이 시대적 요구”라 밝혔습니다.
우리나라는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민주주의 발전과 경제 성장을 동시에 이루어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온 나라가 어려움에 허덕이는 상황 속에서도, 정부와 시민이 힘을 모아 모범적으로 위기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점차 극복해 나가는 중입니다. 한국은 위기에 강한, 단단한 나라입니다. 굳건히 자리 잡은 우리 사회의 토대가 국가보안법 폐지로 절대 흔들리거나 무너질 리 없습니다.
오히려 국가보안법이 우리 사회의 토대를 끊임없이 공격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공론장 형성을 파괴하고, 시민들 간의 연대를 방해하며, 사상의 자유시장을 폭력으로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이 아니라 되레 국가를 허약하게 만드는 ‘국가허약법’입니다.
국제적으로도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했습니다. 유엔 인권이사회 의장국을 맡은 바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유엔의 자유권규약위원회와 사회권규약위, 고문방지위 등 국제사회의 수많은 국보법 폐지 권고를 무시해왔습니다. 폐지는커녕 단 한 줄도 고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국제사회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최근 단 열흘 만에 국보법 폐지 국회 입법동의청원에 10만명이 동의했습니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청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되었습니다. 국회가 더 이상 망설이거나 머뭇거리지 말라는 시민의 명령입니다. 시민들의 양심과 인권의식을 믿고 나서라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촛불혁명의 뜻을 이어받은 21대 국회는 시민의 이 명령에 응답할 의무가 있습니다. 시민들의 인권 감수성에 발맞춰 시민들에게 정치·사상·표현의 진정한 자유를 되돌려주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은 악법인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염원하는 시민들의 뜻을 국회는 받들어야 합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한반도 평화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국회는 시민들과 함께 변화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구시대적이고 반인권적인 야만은 땅속 깊숙이 묻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국가보안법 없는 세상을 꾸려내야 할 때입니다.
국회는 변화한 세상, 한층 높아진 시민의식을 입법으로 구현할 책무가 있습니다. 세계 속에서 높아진 우리의 위치, 더 크게 도약할 대한민국의 제도 인프라를 정비해야 합니다. 21세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구시대의 반인권적 야만은 주저 없이 땅속 깊이 묻어야 합니다. 그 일 중 가장 중요한 하나가 국가보안법 폐지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한다” 열 글자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