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연 국가보안법 2·7조 위헌심판 결정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반국가단체의 활동을 찬양하거나 선전하는 문서를 소지·취득하기만 해도 처벌하는 국가보안법 조항이 헌법재판소의 여덟 번째 심판에서도 ‘합헌’ 판단을 받았다. 국가인권위원회와 국제 사회의 폐지 권고에도 헌재는 국가보안법 ‘존치론’에 힘을 실어준 모양새다. 다만 찬양·고무죄 등이 포함된 이적행위 조항에 대해 처음으로 재판관 3명이 위헌 의견을 제시해 국가보안법 위헌 논의는 거세질 전망이다.
헌재는 26일 국가보안법 제2조 1항, 제7조 1·3·5항에 대해 합헌 및 각하 결정을 내렸다. 심판대상인 국가보안법 제2조 1항은 ‘반국가단체’ 정의 규정이다. 제7조 1항은 ‘반국가단체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한 자’, 3항은 이적행위를 목적으로 ‘단체에 가입한 자’, 5항은 같은 목적으로 ‘문서·그림을 제작·소지·운반·반포 또는 취득한 자’를 처벌하는 조항이다.
국가보안법 2조 1항과 7조 3항에 대해서 헌재는 전원일치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7조 1항 중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 부분과 7조 5항 중 ‘제작·운반·반포’ 부분은 재판관 6대 3의 의견으로, 7조 5항 중 ‘소지·취득’ 부분은 4대 5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위헌 혹은 헌법불합치 결정을 위해서는 재판관 6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헌재는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북한으로 인한 대한민국의 체제 존립의 위협 역시 지속되고 있다”며 “국가보안법의 전통적 입장을 변경해야 할 만큼 국제정세나 북한과의 관계가 본질적으로 변화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국가보안법 개정과 헌법재판소 결정, 대법원의 판결 등을 통해 이적행위 조항 및 이적표현물 조항의 적용 범위는 이미 최소한으로 축소됐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적행위 조항에 대한 위헌 의견은 재판관 3명으로, 역대 가장 많았다. 김이수 전 재판관이 2015년,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해당 조항의 ‘동조’ 부분에 대해 홀로 위헌 의견을 냈는데 이번에는 ‘찬양·고무·선전’도 위헌 논의에 포함됐다. 또 이적표현물 조항 중 ‘제작·운반·반포’ 부분에도 3명이 처음으로 위헌 의견을 냈다. 같은 조항 ‘소지·취득’은 2018년과 마찬가지로 위헌(5명)이 합헌(4명)보다 많았다.
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이적행위 조항에 대해 “우리 사회는 상당히 성숙해 있고 찬양·고무·선전·동조 행위는 어떠한 대상에 대한 지지의 태도를 나타내는 행위일 뿐”이라며 “이적행위만으로 위험이 즉각적으로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밝혔다. 또 “이적행위로 인해 구체적 위험이 임박한 경우에는 형법상 내란죄 등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도 했다.
국가보안법 7조는 모호한 내용 탓에 국가보안법 가운데서도 ‘공안 몰이’ 수단으로 악용되는 대표적 독소조항이다. 특히 찬양·고무·동조·소지만으로도 처벌해, 표현·양심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가인권위원회와 국제 사회는 오랫동안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해왔다. 인권위는 지난해 헌재에 “국가보안법 7조 1·3·5항은 명확성의 원칙 및 비례의 원칙 그리고 국제인권법 등을 위반해 표현의 자유와 사상·양심의 자유 등을 침해하므로 헌법에 위반된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2004년에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했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국가보안법의 단계적 폐지와 7조의 즉시 개정을 지속해서 촉구해왔다.
결국 국가보안법 7조 폐지는 정치권의 역할로 남게 됐다. 21대 국회에서는 국가보안법 7조 폐지안(이규민 의원안)과 국가보안법 전체 폐지안(민형배 의원안, 강은미 의원안)이 각각 2020년과 2021년에 발의돼 현재 계류 중이다.
박석운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공동대표는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 등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폐지 권고를 했음에도 국가보안법이 합법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은 국제인권 기준에 완전히 역행한다”며 “국가보안법은 형법으로 대체할 수 있는 만큼 이미 시대적 쓰임을 다했다고 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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