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 | 영화감독
몇해 전 한낮의 7011 버스 안에서였다. 그날따라 창밖 경치가 아주 선명해 보였다. 버스 안 사람들의 낮은 속삭임 소리와 6월의 바람도 충만했다. 그때 내가 탄 버스의 운전기사분이 반대 방향에서 오는 7011 버스 기사분에게 손을 크게 흔들어 인사했다. “어이, 어이!” 차가 스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서로를 온몸으로 반가워하며. 이 모든 풍경이 영화 속 느린 동작처럼 다가오며 문득 이렇게 느꼈다.
“모든 것이 완전하구나.”
스티브 테일러의 <보통의 깨달음>은 말로 잘 표현할 수 없던 일상 속 깊은 연결감, 바로 ‘보통의 깨달음’에 관해 쓴 책이다. 저자는 ‘깨달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신화적 오해를 넘어,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채 삶에서 경험하는 일시적, 지속적 ‘깨어남’에 대해 체계적으로 밝힌다.
명상가 에크하르트 톨레는 깨어난다는 것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강박적인 생각들이 ‘내’가 아님을 알 때”라고 정의한다. 그는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가 ‘순간을 살고, 알아차리고, 깨어나’ “‘인간’ 그 배후에 있는 ‘존재’”를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톨레에게 깊은 영향을 받은 저자 스티브 테일러는 이 깨어남의 반대 개념인 ‘잠을 자는’ 상태를 정의하며 책의 첫 장을 연다.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이 ‘분리와 단절’, ‘머릿속 수다’, ‘불안과 불만’이 있는 괴로움의 상태에 있다고 말한다. 이 의식 상태에서는 에고가 가져오는 머릿속 수다로 인해 에너지를 대량으로 낭비하여 늘 피곤하고 삶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전락과 깨어남
테일러는 신비와 경이로 가득한 어린 시절에서 더는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어려운 성인기를 ‘전락’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표현을 빌리면 ‘감옥의 그림자가 덮이는’ 시기다. 그러나 우리는 ‘제정신’을 거의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잠자는 상태가 자연스럽다고 착각한 채, 티브이, 돈, 소유물 등으로 도망치는 데 최선을 다한다.
다행히 이 ‘전락 후 세상’에서 깨어나려는 이들이 있다. 저자는 다양한 영적·종교적 전통에서 어떤 식으로 수면 상태에서 벗어나 깨어남으로 가려 했는지 흥미롭게 서술한다. ‘천 개의 태양’, ‘내면의 빛’, ‘아트만의 빛’ 등으로 각 종교에서 표현되는 이 상태는 깨어남에 대한 다양한 언어들이다. 이 깨어난 상태의 공통점은 삶 속에서 신을 감지하는 합일의 상태다. 그리하여 내면의 고요함, 세상에 대한 깊은 이해, 깊은 행복감 등이 수반된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은 이러한 영적 깨어남이 자신과 거리가 먼 개념이라 생각한다. 스티브 테일러는 바로 이 지점에 질문을 던지며 깨어남 상태를 경험한 ‘평범한 사람들’을 인터뷰한다. 이 조사를 통해 저자는 깨어남이 두 가지 형태, 즉 명상이나 정화로 인한 점진적 형태와, 혼란이나 쿤달리니 변형으로 인한 급작스러운 형태로 찾아옴을 깨닫게 된다. 극심한 혼란 끝에 오는 깨어남은 ‘외상 후 변형/성장’ 개념과 일치한다. 이 다양한 형태의 깨어남은 계속 지속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간헐적으로 찾아오고 사라지기도 한다. 물론 지속된다고 해서 그가 에고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집으로 마침내 돌아오다
<보통의 깨달음>에서 정의하는 ‘깨어남’은 미신적인 특별함이 아닌 아주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상태다. 깨어남은 우리를 현재에 머물게 한다. 과거나 미래로의 머릿속 재잘거림이 줄고 그로 인해 낭비됐던 에너지를 삶을 알아차리는 데 온전히 쓰게 된다. 그리하여 산책, 요리, 먹기 같은 단순한 일상이 놀랍도록 새롭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저자는 어떻게 하면 이 깨어남 상태가 더 안정되고 정제될 수 있는지 방향 역시 제시한다. 이 책을 읽으며 그날 버스에서 받았던 인상이나 홀로 산책을 하거나 자연 속에 담가져 있을 때의 내적 상태를 비로소 언어화할 수 있게 됐다. 많은 시간을 잠에 빠져 있다가 문득 나를 깨우는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을 총천연색으로 자각함으로써 찾아오는 ‘집으로 마침내 돌아온’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