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KBS) ‘뮤직뱅크’ 방청권. 사진 유지민
[똑똑! 한국사회] 유지민│서울 문정고 1학년
지난해 여름, 한겨레에 칼럼을 쓰기 시작하며 처음으로 다룬 주제가 ‘공연계의 장애인 접근성’이었다. 당시 글에서 지적했듯이 열악한 접근성과 시설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여러 콘서트를 관람해왔다. 그러나 한가지는 경험해보지 못했다. 지상파 방송국들의 음악방송 방청이다.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온갖 인터넷 커뮤니티를 다 뒤져봐도 휠체어 타고 방송국에 다녀왔다는 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음악방송을 보고 싶다는 갈증도 커갔다. 문전박대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무작정 방청을 신청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세번 방청을 다녀왔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을 장애인 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후기를 써본다.
첫번째 방청은 한국방송(KBS) ‘뮤직뱅크’ 생방송이었다. 추첨으로 관객을 선정하는데, 운 좋게 한번에 당첨되었다. 국회의사당역 인근에 있는 한국방송 신관 공개홀에 들어서는 순간 당황했다. 건물 안까지는 휠체어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스튜디오가 영화관처럼 뒷문으로 입장해 계단을 내려가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한 스태프께서 나를 업고 계단을 내려가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무모한 시도였지만 결과는 값졌다. 콘서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수들이 가까이 잘 보였다. 촬영 장비나 스태프들의 모습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콘서트장보다 장애인 화장실이 많은 것도 좋았다. 방송은 오후 다섯시부터 한시간 반가량 진행됐는데, 붐빌 인파가 걱정돼 조금 일찍 퇴장했다. 예상대로 퇴근 시간대 지하철역은 무척 붐볐다. 거동이 불편하다면 1위 곡 발표 전 퇴장을 추천한다.
한국방송(KBS) ‘뮤직뱅크’를 방청하면서 촬영 장비나 스태프들의 모습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사진 유지민
두번째 방청은 에스비에스(SBS) ‘인기가요’ 사전녹화였다. 새벽 6시 서울 강서구 등촌동 공개홀에 도착해 아침 9시께가 돼서야 촬영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공개홀 입구는 높은 계단이 있어 휠체어로 입장이 불가능했다. 스태프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잠시 뒤 다른 스태프가 후문으로 나를 안내했다. 입장 전 휴대폰 검사를 철저히 했는데, 계단을 피한 우회로가 출연진 대기실과 연결된 통로였기 때문이다. 잠깐이지만 마치 연예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곳 스튜디오의 규모는 한국방송 신관 공개홀보다 조금 더 컸다. 내 좌석은 2층이었는데, 경사가 가팔라 부축을 받아도 올라가기 어려워 보였다. 스태프는 1층에서 무대를 봐도 좋다고 허락해줬다. 덕분에 무대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지만, 정식 관람석이 아니기에 함성을 지를 수는 없었다.
일주일 뒤, 한국방송 공개홀을 다시 찾았다. 이번엔 ‘뮤직뱅크’ 사전녹화였다. 생방송 방청 때 이동을 도와주신 스태프들이 나를 먼저 알아보고 인사해오셨다. 휠체어가 아무리 눈에 띈대도 나를 기억해주다니, 신기하고 감동이었다. 이미 한번 와본 곳이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예상대로 녹화는 순조로웠다. 다만 생방송 때보다 스태프 수가 적어 이동을 도와달라고 부탁하지 못했다. 원래 자리보다 더 뒤에 앉았던 게 아쉬웠지만, 워낙 작은 공간이라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여전히 모두가 친절했고, 편하게 녹화방송을 봤다.
음악방송 접근성이 완벽하진 않았다. 하지만 스태프들이 친절하게 안내하고 이동을 도와준 게 인상 깊었다. 다른 관객들보다 먼저 입장해 핸드폰도 없이 어색하게 대기하던 내게 이것저것 질문하며 긴장을 풀어주신 에스비에스 스태프, 얼굴을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주신 한국방송 스태프들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한다.
얼마 전 보이그룹 ‘트레저’는 공연 전 시각장애인, 휠체어 이용 관람객들을 위한 공연장 접근 안내 영상을 공개했다. 그룹 멤버들이 안내 음성을 녹음한 이 영상은 소셜미디어에서 호평받았다. 이렇듯 케이팝 공연에서 장애인 관객 지원 서비스를 하나둘 마련하는 추세이고, 장애인 팬 수도 더욱 늘어날 것 같다.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세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