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 ㅣ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방송통신위원회가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을 위해 후보자를 공개 모집 중이다. 선임된 이사는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의 사장 선출을 비롯해 편성정책이나 예산집행 등 방송사 운영의 핵심 사항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말하자면 공영방송 사장은 여느 조직처럼 인사권과 예산권을 통해 조직을 장악하고, 자신의 방송 철학과 비전에 따라 방송사를 운영한다. 어떤 사장이 선출되느냐에 따라 방송사 운영의 향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사장 선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사회의 기능과 역할도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이사회 구성 문제가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 문제의 핵심 열쇠로 간주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사회 구성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정치적 편향성 문제 해결에만 집중된다는 점이다. 정치는 물론 자본, 종교, 이익단체에 이르기까지 방송사 운영을 통제하는 세력은 갈수록 복잡하고 정교해지고 있지만 ‘정권의 언론사 통제’라는 뼈아픈 역사를 경험한 탓인지 우리 사회는 유독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율성 확보, 이른바 ‘정치적 후견주의’를 탈피하는 문제에 논의가 집중돼 있다.
물론 정파성 탈피 문제는 공영방송의 공정성 문제를 결정짓는 사안으로 중요한 기준이 아닐 수 없다. 내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고, 현 한국방송 사장 임기가 오는 12월 만료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문제는 정파성 탈피가 마치 이사 선정의 알파와 오메가처럼 여겨진다는 점이다. 특히 아쉬운 대목은 이사 선임 논의에서 지역방송에 대한 진지하고 깊이 있는 고민이 전면에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5월 한국방송 노조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분권형 이사를 선임하자는 제안이 그나마 본격적으로 지역적 가치를 담은 제안으로 보이지만 전문가와 현장을 중심으로 잠깐 주목받았을 뿐 수면 아래로 사라진 상태다.
그러나 공영방송 이사를 선정할 때 공정성(정파성 탈피) 못지않게 중요한 기준은 다양성(지역성)이다. 급변하는 방송 환경에서 공영방송이 취해야 할 미래전략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최근 문화방송은 권역별 지역사 4~5개를 묶어 궁극적으로는 한국방송과 같은 전국 단일 조직으로 탈바꿈시키는 ‘하나의 문화방송: 원 엠비시(ONE MBC)’ 전략을 밝혔다. 누적되는 지역사의 경영난을 방치하다간 공영방송으로서의 위상과 역할마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하나의 문화방송 전략을 구상하게 된 배경이라고 전해진다.
지역사 구성원들은 일단 방향성에는 동의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하나의 문화방송’ 전략이 어떤 성과로 이어질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지역성 강화에 대한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대책이 전제되지 않는 광역화는 지역사의 존재 이유마저 없애버린다는 점이다. 문화방송이 추진하는 ‘하나의 문화방송’ 전략이 단순하게 경영 합리화를 추구하는 전략이 아니라 공영방송으로서의 책무와 역할을 다하기 위한 체질 개선이라면 지역 뉴스와 정보에 대한 비중과 가치를 더욱 강화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참고할 뒷이야기 하나. 한국방송이 지난해부터 지역방송 활성화를 방송 운영의 우선순위에 둘 수 있었던 것은 경영진의 노력 못지않게 한 이사의 노력과 관심이 뒷받침되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래서 공영방송 이사 선임의 기준에 대해 이렇게 강조하고 싶다.
‘문제는 지방분권형 이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