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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불법 적치’ 된 노동자들

등록 2021-07-19 04:59수정 2021-07-19 07:56

홍익대 총학생회와 건축공사 동아리 ‘한울’이 2017년 5월 청소노동자 휴게실을 고치는 공사를 했다. 제4공학관 티(T) 동 지하휴게실은 높이가 무려 6m라서 안정감을 주지 못하는 쉼터였다. 윗부부은 짙은 갈색, 아랫부분은 연한색으로 칠해 천장이 낮아보이도록 했다. 냉장고를 중고 냉장고로 교체했고 공기청정기도 들여놨다. 한쪽 벽에는 선반을 달아 컵과 그릇용 수납공간을 만들었다. 한겨울에 대비해 전기온돌판넬도 바닥에 깔았다. 홍익대학교 총학생회 제공
홍익대 총학생회와 건축공사 동아리 ‘한울’이 2017년 5월 청소노동자 휴게실을 고치는 공사를 했다. 제4공학관 티(T) 동 지하휴게실은 높이가 무려 6m라서 안정감을 주지 못하는 쉼터였다. 윗부부은 짙은 갈색, 아랫부분은 연한색으로 칠해 천장이 낮아보이도록 했다. 냉장고를 중고 냉장고로 교체했고 공기청정기도 들여놨다. 한쪽 벽에는 선반을 달아 컵과 그릇용 수납공간을 만들었다. 한겨울에 대비해 전기온돌판넬도 바닥에 깔았다. 홍익대학교 총학생회 제공

[시론] 김동수
기록노동자·<유령들: 어느 대학 청소노동자 이야기> 저자

한 대학생이 자신이 다니는 대학의 관할 구청에 민원을 냈다. 1층 화장실 내 장애인 전용칸에 청소도구들이 쌓여 있다면서 사진까지 찍어 보냈다. 구청은 해당 대학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원청 담당자는 청소용역반장을 불러 장애인 전용칸에 있는 청소도구를 치우라고 지시했다. 반장은 장애인 전용칸을 살펴보더니 그곳을 담당하던 미숙(가명)씨에게 당장 짐을 옮기라고 명령했다. 그녀는 불가피함을 호소했다. 그곳은 사실 그녀의 청소도구함이자 쉼터였다. 여태껏 장애인 전용칸에서 오물 냄새를 맡으며 쉬었던 그녀는 바로 옆에 적치된 청소도구들을 볼 때마다 자신이 그것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는다고 느꼈다. 그녀가 청소노동자에게 수치심 같은 감정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녀는 결국 반장의 지시대로 청소도구들을 치웠다. 미숙씨가 장애인 전용칸에 청소도구를 쌓아둔 것은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고 했다. 4년여 전 일이다.

영자(가명)씨는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는 계단 부근에 청소도구를 옮겨놓았다. 대걸레, 양동이와 같이 자리를 별로 차지하지 않는 도구들뿐이었다. 그런데 며칠 뒤 반장이 다짜고짜 화를 냈다. 입주민이 소방서에 신고를 해서 관리사무소가 난리니 계단에 있는 청소도구를 얼른 치우라는 것이었다. ‘소방법’ 위반이라며 당신이 책임질 거냐고 한동안 노발대발했다. 영자씨는 ‘다른 층에도 입주민들이 쌓아놓은 짐들이 있는데’라는 말을 속으로 삭였다. 반장이 겁을 주기 위해 거짓말하는 듯했지만 확인할 길은 없었다. 어쨌든 청소도구를 치우지 않으면 돈으로 물어줘야 한다니 다시 습하고 벌레가 꼬이는 지하로 원위치시킬 수밖에 없었다. 반장이 말한 ‘소방법’은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같았다. 3년6개월여 전에 들은 이야기다.

서울 소재의 ㄱ대학교에서 청소일을 하는 명희(가명)씨는 커피포트만 틀어도 전기가 나가는 창고에서 지냈다. 냉장고를 쓸 수 없으니, 여름에는 도시락을 휴대용 아이스백에 담아놓았다. 비만 오면 물이 새서 그녀는 곰팡이와 원치 않게 동거도 했다. 이마저도 리모델링한 상태라고 했다. 노조의 여러 차례 문제제기로 전기공사가 이루어졌고, 그제야 노동자들이 자비를 들여 산 중고 냉장고를 휴게실에 들일 수 있었다. 5년여 전 일이다.

실은 이곳 대학의 청소노동자 휴게실은 대부분 ‘가장 낮은 곳’(계단 밑 창고)이나 ‘가장 높은 곳’(물탱크실)에 있었다. 관리처 직원은 어차피 잠깐씩 쉬는 곳인데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냐고 했지만 실제로 그들은 그곳에서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휴게시간 동안 식사하고 쉬었다. 2018년에는 근로감독관이 휴게실 점검을 왔을 때도 대기실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창고 같은 휴게실을 개선해달라는 청소노동자들의 요구에 대해서는 용역 주제에 지나친 주장을 한다고 받아들였다. “정직원 휴게실도 없는데 어디서 용역이 창문 있고 에어컨 달린 휴게실을 달라는 거야?” 오히려 화장실에서 밥 먹는 이들에 비하면 나은 거 아니냐며 비아냥거렸다.

홍익대 학생들은 사립대 최대 규모인 7천억원대의 적립금을 쌓아두고 있는 학교 대신에 ‘곰팡이 피는 창고’를 ‘사람 사는 휴게실’로 변화시켰다. 공사비는 학생들이 직접 모았다. 하지만 널리 퍼지지는 않았다. 모든 이들이 청소노동자 쉼터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선한 생각이 곧 의지로 발현되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 선한 영향력만으로 세상이 굴러가지 않는 법이다. 반면에 벌칙 조항이 있는 법이 존재하기에 장애인 화장실이나 아파트 복도 등에 쌓아두었던 청소도구들은 사라졌다. 과태료나 벌금을 물지 않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변화였다. 구속력을 가진 법의 장점일 것이다. 창고나 화장실에서 쉬기를 강요받는 노동자들도 청소도구들처럼 ‘불법 적치’ 된 듯 보인다. 그곳들이 인간다움과는 어울리지 않는 공간인 탓이다. 세 노동자의 일은 과거 이야기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 곳곳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표준 모델’로 자리잡혀 널리 애용된다. 지금도 창고나 화장실에서 쉬는 노동자들이 ‘합법적으로 적치’ 됐다고 믿는 사회다. 과태료나 벌금을 물 정도의 불법이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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