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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연금개혁의 고통 분담, 정부가 앞장서야

등록 2023-01-19 18:26수정 2023-01-20 02:08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시론] 구인회 |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1980년대 후반 국민연금 도입에 관여했던 한 원로학자의 말이 기억난다. 당시 연금제도 설계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이 고령화 추세는 고려했지만 저출생에 대해서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출생률 급락과 같은 중요한 사회변화를 예측하지 못했다고 해서 이들 전문가를 탓하기는 어렵다. 저출생이 한창 진행되던 1990년대에 들어서서도 우리 정부에는 가족계획을 담당하는 부서가 있었으니 말이다.

저출생은 우리 사회에 여러가지 파장을 몰고 왔다. 전체 인구가 감소한 것만이 아니다. 출생률 급락 과정에서 인구 구조가 극히 불균형하게 변하고 있다. 1970년대 초에는 1년 출생아가 100만명에 가까웠다. 2020년대 1년 출생아 수는 30만명이 채 안 된다. 이런 출생아 수 감소는 30년 뒤 2050년대에는 근로연령대 인구 감소로 이어지고 그만큼 근로자 1인당 부양하는 노인 인구도 늘어난다. 그때부터 몇십년이 더 지나서 2020년대 출생한 세대가 노인이 되면 노령인구도 감소하게 되니 인구의 연령 구조는 새로운 균형을 회복하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수십년 동안 진행될 인구 구조 이행기에 나타날 불균형은 과거 고출생 시대에 도입된 사회제도의 개편을 불가피하게 한다. 가장 대표적인 제도가 노령연금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연금개혁이 다시 최우선 정책 어젠다로 떠올랐다. 현재 국민연금은 근로연령기 40년 동안 소득에서 9%의 보험료를 내면 노후에는 소득의 40%를 연금급여로 받게 돼 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연금수급자가 늘어나면 이 정도의 보험료로는 연금재원을 충당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노후 수명이 10년에 그치던 때라면 지금의 보험료로도 운영할 수 있겠지만, 노인 수명이 20년이 넘게 되니 연금급여 지급에 필요한 재원도 그만큼 늘게 된다. 더욱이 저출생으로 보험료를 내는 근로연령대 인구가 빠르게 줄어들게 되니 근로세대 한명이 감당해야 할 재원 부담은 훨씬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러하니 연금재정의 수지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갈수록 늘어나는 재원 부담이 미래 세대에 집중되지 않도록 지금부터 서둘러야 한다.

하지만 연금재정 위기에 대해 지나친 공포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노령인구 규모가 가장 커지게 될 30~40년 뒤에도 우리나라 연금 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10%대 초반을 넘어서지 않는다. 유럽국가 중에는 지금도 이 정도의 노령연금을 지출하는 경우가 있으니 우리나라 경제 수준으로 충분히 감당할 만하다. 문제는 늘어나는 연금재정 지출의 절대 규모가 아니라 재정 부담을 사회 구성원 사이에 적정하게 나누는 제도 개편을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연금재정의 위기를 예방할 완충자금을 비축해나가야 한다.

우선 연금가입자들은 노후 수명이 늘어난 만큼 더 많은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 은퇴 뒤 연금을 받을 기간이 길어진 만큼 일하는 동안에는 연금재원에 더 많은 기여를 하는 것이 맞다. 노후 기간이 길어지는 생애주기 변화가 일어났으니 노후 대비를 위해 근로연령기에 더 많이 투자하는 것이 현명하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길어진 노후 수명에 맞춰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을 지금보다 두배 정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수지 균형을 이루어야 할 필요성이야 이해가 되지만 정부가 기존 제도를 설계할 때 예상하지 못했던 추가 비용을 가입자에게만 부담시키는 해법이 받아들여지기는 어렵다. 이는 일종의 계약 위반으로 가입자의 반발을 피할 수 없다. 연금 운영의 책임을 가진 정부가 솔선해서 추가 비용을 부담해 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고, 가입자도 분담에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게 맞다.

연금재정의 수지불균형 악화에는 노후 수명 증가보다도 저출생이 큰 영향을 미친다. 저출생으로 인한 부담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기대수명 연장으로 인한 추가 비용을 노인 세대에 돌릴 수 없듯이 저출생으로 인해 늘어난 부담을 젊은 세대에 돌릴 수는 없다. 정부와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능력에 따라 인구 구조 이행의 부담을 나눠야 한다. 그 부담을 세대 간에 공평하게 나누기 위한 이해와 공감도 절실하다. 정부가 앞장서서 연금재정 안정화를 위한 분담금을 늘리고 사각지대 해소와 보장성 개선에 노력해 연금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이것이 선진국다운 연금개혁의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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