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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슬기로운 기자생활] 5살 차 당대표, 말 잘 통하냐고요?

등록 2021-08-05 18:38수정 2021-08-06 02:37

장나래 정치팀 기자 wing@hani.co.kr

“다들 결혼은 안 한 건가?”

예고도 없이 날아온 국회의원의 ‘잽’에, 화기애애하던 식사 자리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아무도 대꾸가 없었다. 실제 모두 미혼인 기자들이었다. “왜들 안 해.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고 질러야 할 수 있는 게 결혼이야.” 뭐라도 중요한 말을 들을 수 있을까 귀를 쫑긋 세웠던 기자들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헤맨다. ‘또 시작됐구나.’ 결국 의원의 눈길은 가장 나이가 많은 선배 기자에게로 향한다. 그는 이미 이 상황이 익숙한 듯, 노련하게 분위기를 애써 환기해보려 한다. “그게 어디 마음대로 돼야 말이죠. 하하하. 그런데 의원님 오늘 의총에서는 무슨 얘기가 나왔나요?” 결국 “결혼은 남자가 이끌고 가면 돼”라는 말까지 듣고 나서야 이 불편한 대화는 끝이 났다.

2019년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이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에게 “결혼 안 하셨죠?”라는 질문을 던져 논란이 됐을 때도 전혀 놀랍지 않았다. 여의도에서 20∼30대 기자들이 50∼70대 정치인을 만났을 때 종종 겪었던 일이 장소만 바뀌어 청문회장에서도 벌어졌을 뿐이었다. 처음 출입했을 땐 혈기왕성하게 반박도 해봤지만, “요즘 애들은”으로 시작하는 ‘의원님 훈화 말씀 시간’이 더 길어질 뿐이었다.

여의도에서의 세대 차이를 체념하고 받아들일 때쯤, 세대교체는 느닷없이 찾아왔다. 아버지뻘이던 황교안(1957년생) 대표를 거쳐 할아버지뻘인 김종인(1940년생) 비상대책위원장까지 겪어온 1990년생 기자에게 ‘1985년생 이준석’은 파격이었다. 보수의 ‘먼 미래’로만 바라봤던 그가 ‘보수의 현재’로 우뚝 섰다. ‘장유유서’를 신봉하며 살아왔던 중진들은 여전히 ‘이 대표’가 아닌 ‘준석이’ 혹은 ‘걔’라고 부르면서도, 이제야 “우린 집에 가야 되냐”며 미래를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같은 세대인 대표와의 소통은 확실히 빨랐다. 그는 지치지도 않고 하루에 몇차례씩 페이스북 글을 올린다. 당 입장을 물어야 할 이슈가 생기면, 불편한 질문이든 아니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게시글을 올린다. 누군가 자신을 저격하기라도 하면 입장을 묻기도 전에 발 빠르게 응수한다. 기자들의 전화도 여건만 되면 ‘무조건 받자’ 주의다. 못다 한 내용이 있다면 카카오톡으로 전달한다. 빠른 소통에 특화된 엠제트(MZ) 세대형 당대표인 것은 확실하다.

웬만한 국회의원들보다 20~30살 어리지만, 10년 넘게 정치권 자갈밭을 굴러온 이 대표는 절대 밀리지 않겠다는 태세다. 지난달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합의했다가 당내 반발에 밀려 일단은 물러서는 듯했지만 이틀 지나 “전국민 지급 반대가 좋은 전략은 아니”라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공직 후보 자격시험 제도에 최고위원들이 반대했지만 밀어붙이고 있다. 좋게 봐주면, 정치인의 덕목인 ‘권력 의지’다. 하지만 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여성의 날’맞이 장미꽃 선물마저 통일부 폐지론에 갖다 붙이는 것을 보고 있자니, 당장이라도 이 대표에게 전화해 ‘유치한 말싸움’이라고 정론직언해주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무엇보다도 소통의 필수 조건인 ‘감수성’ 문제가 꼭 세대 차이에만 기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성가족부 폐지와 안산 선수 논란 등으로 연일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 이 대표를 보면서, 나와 50살 차이가 나는 김종인 전 위원장이 떠올랐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김 전 위원장은 ‘저출산’이라는 단어가 책임을 여성에게 국한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저출생’이라는 표현을 쓴다. 비대위원장 시절, 당 정강·정책에 ‘양성평등의 사회’를 새기고 “정치 등 공적 영역에서 성별 대표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남녀 동수를 지향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보수 정당 출입 2년 만에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하지만 세대가 바뀌었다고 해서 시대의 감각을 읽는 능력까지 저절로 진화하진 않는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거울에 비친 나에게 주문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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