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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우진의 햇빛] 태풍의 야성을 길들이다

등록 2021-08-08 20:31수정 2021-08-09 02:36

폭염의 맹위가 무섭다. 평소 서늘한 시베리아나 아메리카 북부지역도 이번 폭염은 피해 가지 못했다. 더운 공기가 두껍게 돔을 형성하고 수은주가 47도까지 올라 역대 최고를 기록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때 이른 더위가 한동안 이어지며 집집마다 냉방 수요가 크게 늘고 전력 예비율을 걱정했는데, 최근 기압계가 변해 간간이 소나기가 내리면서 조금 숨통이 트였다. 열대에서 두 개의 태풍이 쌍두마차를 타고 올라와 ‘인파’는 중국 상하이로 상륙하고, ‘네파탁’은 일본 도쿄 북쪽으로 들어가며 우리나라 주변 기압계를 크게 흔들어놓은 것이다.

태풍은 우리가 경험하는 날씨 중에서 열대의 성질을 가장 많이 가진 것이다. 종일 작열하는 태양의 햇살을 듬뿍 받아 수온이 높은 열대 해역에서 주변의 먹구름을 규합하여 눈을 가진 도넛 모양의 대형 폭풍으로 발달하면서, 맹렬한 바람과 포효하는 파도와 세찬 비로 열대에서 물려받은 자연의 모성을 고스란히 우리 앞에 펼쳐 보여주는 것이다. 위성 영상에 나타난 태풍은 마티스나 고갱의 화풍을 닮았다. 흑백 영상에서는 굵은 붓놀림으로 그려놓은 듯 선명한 눈과 이를 에워싼 두꺼운 터치의 구름 띠에서 태풍의 거친 숨결이 새어 나온다. 컬러 영상에서는 나선형으로 중심부로 휘몰아 가는 구름대에 다양한 원색이 입혀져 격렬하고 원초적인 자연의 야성이 느껴진다. 아열대 고기압 남단을 따라 남해상으로 올라올 때까지 인적이 없는 바닷길을 거쳐 가므로,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바다의 수증기를 섭취하며 발달해온 덕택이다.

오랫동안 천기는 신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우리 조상들도 날씨를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벼락이 치거나 우박이 내리면 하늘이 노한 것으로 알고 임금도 행실을 가다듬고 주변에 억울한 자들은 없는지 살펴보라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하지만 2차 대전 이후 인류가 원자폭탄을 만들어내고 달에 우주선을 보내자 분위기가 변했다. 미국-소련 간 냉전으로 군비 경쟁이 치열하던 터에, 잘만 하면 날씨의 힘을 국익을 위해 써볼 수도 있겠다는 태세였다. 미국은 1940~70년대에 걸쳐 태풍의 야성을 길들이기 위한 대형 프로젝트를 여러 차례 추진했다. 태풍에 구름 씨앗을 떨어뜨려 구름이 활발하게 생겨나면 주변의 수증기를 빨아들이면서 폭풍을 일으키는 강한 먹구름은 약화시켜 태풍의 경로와 힘을 조절하겠다는 심산이었다. 태풍의 강도를 한 등급 낮추거나 이동 방향을 바꿀 수 있다면, 경로상의 대도시가 떠안을 피해를 인적이 드문 바다로 보내버릴 수도 있을 터이다.

하지만 과학적 물증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고 실험 예산도 점차 줄어들었다. 그 후 지금까지 태풍을 길들여보겠다는 실험은 더 이상 추진되지 않았다. 태풍 하나가 내뿜는 에너지가 원자폭탄 수천개와 맞먹으므로, 아무리 많은 인공적 힘을 끌어들이더라도 달걀로 바위를 깨는 격이라는 점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유엔이 1977년 제정한 국제 협약에서는 상대 국가에 대규모 피해를 줄 수 있는 환경 조절 기술의 군사적 이용을 금지하고 있다는 것도 부담이었다. 미군은 베트남전에서 교전국의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해 장맛비를 키우는 인공강우 실험을 비밀리에 추진했는데, 리처드 닉슨 행정부 때 이 실험이 탄로 난 후 국제 여론에 떠밀린 것도 협약 체결에 한몫했다.

의도적인 태풍 조절 실험은 멈추었지만, 우리는 매일 온실기체를 배출하며 태풍 강도와 경로에 영향을 미치는 실험 아닌 실험에는 여전히 참여하는 중이다. 지구 온난화가 계속되면서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 바다에서 증발이 더 활발해져 대기 중의 수증기가 증가하고, 이것들이 태풍의 연료가 되어 더욱 강력한 태풍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은 기후 변화의 시대에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차세대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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