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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영웅화된 메타버스, 심화되는 정보격차

등록 2021-08-10 18:30수정 2021-08-11 02:33

한선의 미디어전망대

석달쯤 전의 일이다. 메타버스 관련 보도를 봤다면서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당시는 메타버스가 기술과 산업생태계 영역을 넘어 오락, 교육, 문화, 정치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하던 초입이었는데 빠르기도 하지. 경제 관련 뉴스를 챙겨 보던 친구의 레이더에 메타버스가 걸린 모양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테크놀로지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는 ‘흐름을 놓치거나 소외돼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강박증을 갖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여기던 평소 생각이 한층 강화되었다.

새로운 기술을 낭만화하고 호의적으로 대하게 만드는 태도는 아무래도 미디어에 의해 좌우된다. 대중들이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테크놀로지나 과학, 의료와 같은 전문가 영역에서는 특히 미디어의 영향력이 결정적이다.

지난 7월 말 이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연구 결과 한편이 발표됐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1990년부터 올해 5월까지 30여년 동안 메타버스 관련 사회적 논의가 어떤 흐름에서 진행돼왔는지 총 2만3천여건의 뉴스 기사를 빅데이터로 분석한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연구 결과를 보면, 메타버스 보도는 주로 비즈니스 혁신 및 경제성장에 연관된 부문에서 이루어졌다. 시기에 따라 각기 다양한 분야에서 메타버스 관련 논의가 진행됐지만 어느 시기든 경제적 관점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가령 메타버스 관련 보도의 대표적인 주제어는 4차 산업 인재 양성, 혁신기업, 글로벌 경제 환경, 정부 정책 등이다. 이들은 글로벌 경제 환경에 대처할 혁신기업이나 인재를 양성함으로써 국가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프레임 안에서 작동하는 단어들이다.

자연스럽게 메타버스 관련 보도는 긍정적 표현과 연결된다. 새로움, 젊음, 최고 등 긍정의 수식어가 메타버스와 짝패로 묶여 있다는 것이다. 반면 중독, 스팸, 폭력, 범죄 등 부정적 키워드는 긍정의 수식어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그나마 2000년대까지 14~18%대를 유지하던 부정적 키워드가 2010년대 이후부터는 7~8%대로 줄어들고 있다.

보도의 주요 행위자로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이 등장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는 구글 트렌드 분석에서도 유사하게 확인되는데, 지난 1년간 메타버스에 관한 검색이 행해졌던 지역은 정부기관이나 산하 연구원 및 기업이 많은 서울, 대전, 세종에 집중된 것으로 확인된다.

한마디로 메타버스 관련 담론은 정부를 비롯한 공공기관이 산업적, 경제적 차원에서 이끌고, 미디어는 그 중심에서 메타버스를 긍정적인 대상으로 낭만화해왔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때문에 미디어에 다른 관점의 보도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메타버스가 야기할 수 있는 사회 불평등의 문제다. 메타버스가 우리 사회를 구원할 혁신의 영웅으로 여겨지는 한, 세대와 지역 등에 따른 정보격차가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논의가 끼어들 틈바구니는 없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를 정리하다 지난 주말 자주 가던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마주쳤던 초로의 부부가 생각났다. 주차장 결제 방식이 무인시스템으로 바뀐 뒤 처음 마트를 방문한 듯한 이들은 무인단말기를 우두커니 쳐다보고 있었다. 부부의 잔영 위로 미디어에 모르는 용어가 너무 많아진다고 푸념하시던 아버지의 모습도 겹쳐졌다.

이제 정보격차 문제는 사회적 약자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됐다.

한선 ㅣ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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