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윤 | 사진뉴스팀 기자
사진기자다 보니 현장에서 타사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 코로나 19로 현장 출퇴근을 할 때는 회사 선배들보다 그들을 더 자주 만났다 . 그럴 때 말 거는 타 매체 선배들이 있는데 내 연차가 쌓이며 던지는 단골 질문이 바뀐다 . 사진부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언제 사진부 왔냐” , “회사는 언제 들어왔냐” , “아직도 부장 ○○○ 선배냐 (혹은 지금 한겨레 부장이 누구지 ?)” 등이었다 . 사진부에 온 지 1년이 될 즈음에는 “할 만하냐” , “지금이라도 전공 살려라” , “일이 재미있냐” 등이었다 .
3년차 . 아직 만 2년은 되지 않았으나 입사한 지 3년차가 된 요즘엔 “네가 지금 몇년차지 ?”, “3년차면 이제 지겨울 때가 됐을 텐데”라며 “지겹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 내 답은 무조건 “아니요”다 . 사진부에 배치된 지 두달 만에 국내 코로나 19 첫번째 환자가 나왔다 . 아무리 미세먼지가 , 황사가 심해도 쓰지 않았던 마스크를 쓰며 다녔던 현장들엔 코로나 19가 있었다 . 여기저기 현장 다니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 사진기자를 하게 된 건데 아쉬움이 가득해 절대 아직 현장도 사진기자 일도 지겹지 않다 .
2년차 . 코로나 19 2년차가 된 현재 흔히 말하는 ‘ 369법칙’이 이해된다 . 3년 , 6년 , 9년차에 회사생활에 권태를 느낀다는 법칙인데 나는 회사생활보다는 코로나 취재 생활에 권태를 살짝 느껴가고 있다 . 만약 현장에서 선배들이 “지금 현장에서 코로나 취재한 지 몇년차냐 ?”고 묻고 “지겹지 않니 ?”라고 물어봤다면 질문이 채 끝나기 전에 고개를 끄덕였을 거다 . 여름이면 매일이다시피 하게 되는 더위 스케치를 하려면 어느 수영장을 가야 하는지 , 어느 바닥분수를 가면 괜찮은지 알지 못한다 . 하지만 더위 스케치와 코로나 19를 묶어 어느 임시선별검사소를 가면 괜찮은지는 잘 알고 있다 .
사진부에 막 들어와서 한 선배가 갑자기 국외 출장을 갈 수도 있으니 여권을 회사에 갖다 두라고 했다 . 가방 속에서만 지내다 비타민 D 수치가 바닥을 기던 내 여권에게 어느 날 외교부에서 만료되었으니 갱신하라는 연락을 줬다. 도장을 더 이상 찍을 공간이 없게 되어 갱신할 줄 알았던 그 여권에게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 올 2월부터 나와 함께하게 된 새 여권은 아직도 겨울잠을 자고 있다 . 아마 본인이 여권인지도 모르고 있을지도 .
지금 쓰고 있는 핸드폰이 2018년 사양이라 자주 메모리 정리를 하라고 알려준다. 자주 사용하지 않는 애플리케이션을 지우라고 뜨는데 알림창 제일 상단에서 삭제 종용을 당하는 아이들은 죄다 항공사 앱이다 . 번역 앱인 파파고도 그들 옆에서 아직 살아 있다 . 입사 전 급하게 외국에 사건사고가 생겨 회사에 챙겨둔 여벌옷과 여권을 들고 급히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항공사 앱으로 비행기 표를 예매하는 나 자신을 상상했다 . 2020년 다이어리를 살펴보면 1월 19일자에 ‘아부다비 , 파리 , 조지아 올해 안에 간다 !’고 쓰여 있다 . 헛된 꿈들이었다 .
법칙과 달리 내 3년차가 지겹지 않은 이유는 3년차가 되지 않아서다 . 지난 2년 동안 사진기자 생활을 제대로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 그 생활에 지쳐 여름 , 겨울 휴가를 외국에서 보내며 현실과 분리되는 시간도 가져보지 못했다 . 말이 3년차지 2개월에서 사진기자 생활이 멈춰 있다고 생각한다 . 가뭄에 콩 나듯 가는 인터뷰 현장이 반가운 이유도 , 가끔 어쩌다 가는 지방출장이 내게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지만 여전히 설레고 즐거운 이유도 같다 .
이 소소한 느낌을 기록해두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의 ‘찐 3년차 ’가 왔을 때 잘 이겨내라고 , 그 3년차가 되기를 기다렸던 김혜윤이 2021년에 있었노라 미래의 내게 말해주고 싶어서다 . 인간은, 아니 나는 망각의 동물이라 이렇게 글로 남겨두지 않으면 그때 가서 ‘다 포기할까 ?’라고 나약한 소리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난 아직 진짜 3년차가 아니다 . 언젠간 내 일이 지겨워질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열심히 셔터를 눌러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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