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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년 전쟁, 미국의 패배가 주는 교훈

등록 2021-08-17 14:54수정 2021-08-18 02:37

[박태균 칼럼]

북베트남과 탈레반은 탈출하는 사람들을 막지 않겠다고 공언하(였)지만, 20여년간 진행된 전쟁이 피의 보복을 일으킬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미국이 지원한 두 정부는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미군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정부였다. 미국은 자신들이 몰아내려고 했던 세력들과 평화협정을 맺었고, 그 세력들은 결국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박태균|서울대 국제대학원장

2001년 시작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이 미군의 철수와 함께 종지부를 찍는다. 20년 만이다. 미국은 9·11 사건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갔고, 민주 정부를 세웠다고 자부했지만,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그 민주 정부는 탈레반에 항복했다. 20년간 미국이 쌓아왔던 공이 모래성처럼 사라지게 되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상황은 반세기 전 베트남에서 있었던 상황을 재현하는 듯하다. 프랑스가 포기한 베트남을 분단하면서 미국이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 1954년이었다. 1965년부터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도 전투부대를 파병했다. 20년간 미국은 남베트남 정부를 지키기 위해 경제원조와 함께 군사적으로 개입했지만, 미군이 철수하고 2년 만인 1975년 남베트남 정부는 무너졌다.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개입과 철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내전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미국이 개입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미국이 적으로 삼고 있는 세력들이 해당 지역에서 더 우세한 상황이었다. 미국이 개입하면서 단기적으로는 성과가 나는 듯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미국에 불리하게 진행되었고, 결국 미국의 군사적 목적은 궁극적으로 달성되지 못했다.

베트남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미국은 ‘명예로운 철수’를 위해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한 지 각각 2년3개월, 1년6개월 만에 미군이 수립한 정부가 무너졌다. 북베트남과 탈레반은 탈출하는 사람들을 막지 않겠다고 공언하(였)지만, 20여년간 진행된 전쟁이 피의 보복을 일으킬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평화협정 체결의 당사자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평화협정에는 탈레반과 미국이 직접 협상을 하면서 미국의 지원을 받는 정부가 소외되었다. 베트남에서는 북베트남, 베트콩과 협상을 하면서 막상 미국이 지키고자 했던 남베트남 정부는 평화협상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만큼 미국이 지원한 두 정부는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미군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정부였다. 미국은 자신들이 몰아내려고 했던 세력들과 평화협정을 맺었고, 그 세력들은 결국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물론 미국이 수행했던 두 전쟁 사이에 차이점도 있었다. 베트남 전쟁에는 미국이 개입할 명분이 없었다. 베트남이 공산화되면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공산화될 위험이 있다는 도미노 이론을 통해 동남아시아 전체가 중국의 영향권하에 들어가는 것을 막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막상 미국은 중국과 베트남, 그리고 더 나아가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베트남 전쟁과 달리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는 9·11 테러를 자행한 세력들과 함께 더 이상 테러리스트들이 활동할 수 없도록 그 배후를 차단하겠다는 직접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평화조약에는 탈레반이 미국을 공격 대상으로 하는 테러리스트들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조항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평화조약을 맺었음에도 전투가 끝나지 않았고, 결국 미국이 지원한 정부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 내용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켜질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1975년까지 20년간 베트남이라는 늪에 빠졌던 미국은 대외정책에서뿐만 아니라 대내적으로도 거대한 사회적 변화를 경험했다. 반전운동과 수정주의는 성찰의 산물이었다. 유럽도 68혁명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라는 또 다른 늪에 빠졌다.

한국도 베트남에 참전한 경험이 있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한국에 대해 앞으로 국제사회는 한반도를 넘어선 국제안보에서의 역할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이미 1991년 걸프전과 2003년 이라크에 파병을 했던 경험이 있다. 베트남 참전으로부터 전쟁 특수 외에는 교훈을 얻지 못했던 한국 사회는 이라크 파병을 앞두고 주판알을 두드리기에 바빴다.

베트남 전쟁을 되돌아보건대 인도주의적 측면에서의 개입이 불가피한 경우에도 몇가지 부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가 도와주려는 측이 민주적이면서 해당국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가? 우리 군인들에게 큰 피해는 없을 것인가? 해당 지역 국민들과 불필요한 접촉을 할 가능성은 없는가? 개입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판단될 때 큰 피해 없이 빠져나올 수 있는가? 1975년 사이공 대탈출 시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철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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