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미국 사회는 팬데믹과 전쟁 이후 집단히스테리 속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 1929년 대공황을 맞는다. 현재 한국 사회는 이와 비슷한 상황에 부닥쳐 있다. 마스크를 벗으면 아무 문제 없이 과거로의 회귀가 가능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팬데믹이 가져온 거대한 충격으로 한국 사회는 이미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 돼 있다.
정부는 지난 2일부터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한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연합뉴스
박태균 | 서울대 국제대학원장
마스크를 벗는다. 지난 2년 넘는 기간 동안 모든 것이 멈춰 있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라고 할 정도로 인류는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 그렇기에 언제 또 다른 팬데믹이 나타날지, 또 다른 바이러스가 인류를 위협할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현시점에서는 빠르게 한국 사회를 정상화하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정상화 과정은 팬데믹 과정만큼 논란을 불러올 텐데, ‘광란의 시대’로 불리는 미국의 1920년대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스페인독감과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이었던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직후인 1920년대 미국은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움했지만, 내부적으로 여러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선 전쟁 특수를 바탕으로 한 경제호황 속에서 소득이 증대하고 금융업이 성장하면서 주식 시장과 부동산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달아올랐다. 요즘 말로 하면 ‘거품’과 ‘영끌’이 나타났다. 생산과 소비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미국의 자동차 대수는 1919년 677만대에서 1929년 2312만대로 3배 넘게 증가했다. 라디오 판매량은 같은 기간 14배나 뛰었다. 1차 세계대전 종전 뒤 금주법이 시행됐지만, 이를 계기로 불법적인 주류 유통을 장악한 갱단들이 성장해나갔다.
심리적으로는 타자화가 나타났다. 정치적으로 보수주의가 강화되면서 미국 국가주의적 흐름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빨갱이’로 낙인찍혔다. 인종차별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백인우월주의 단체 케이케이케이(KKK)단의 불법적인 행동은 사회적인 통제를 거의 받지 않았다. 아시아 이민자들을 규제하기 위해 이민법이 제정됐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각해져갔다.
1919년 이후 여성 참정권이 허용되면서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이 시대를 그리고 있는 영화 <위대한 개츠비>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대부>에서 볼 수 있듯이 정상적인 양성평등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사회상들을 종합해보면, 1920년대 미국 사회는 팬데믹과 전쟁 이후 집단히스테리 속에 빠져 있었다.(고영건, ‘미국의 번영과 히스테리적 소비, 마침내 거품과 대공황을 낳다’) 그리고 그 끝에 거품이 터지면서 1929년 대공황을 맞는다.
현재 한국 사회는 이와 비슷한 상황에 부닥쳐 있다. 마스크를 벗으면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이 과거로의 회귀가 가능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팬데믹이 가져온 거대한 충격으로 한국 사회는 이미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 돼 있다.
무엇보다도 가치관의 충격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생명과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효율과 개발에만 집중했던 과거와 달리 스스로를 뒤돌아볼 기회를 갖게 됐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인한 공포와 위기를 거치며 단기간에 부를 창출해야 한다는 절실함도 커졌다. 부동산과 주식 시장도 그렇지만,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자산 시장에의 과도한 관심은 이런 분위기를 잘 드러낸다.
타인이나 사회적 소수에 대한 관대함이 사라지고 있는 것 역시 1920년대 미국 사회와 비슷한 점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의 대외관계가 중요한 담론으로 떠올랐고, 인터넷 댓글 등에서 재외동포나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에 대한 혐오표현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이렇게 비정상적 상황으로 변해가는 정점에는 지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나타난 양성평등에 대한 도전이 있다. 인터넷을 통해 양성평등 문제에 관한 다양한 문제제기가 이뤄졌고, 갈등의 양상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어떠한 정치인도 이 문제를 공론화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양성평등 문제는 후퇴할 수 없는 과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금기가 이번 선거 과정에서 깨졌다.
학교에서도 과거와는 다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부분의 학교가 대면교육으로 전환했거나 전환하고 있지만, 막상 교육의 공급자와 수요자 가운데 대면수업을 원하지 않는 비율이 생각보다 높다. 인류는 팬데믹을 거치며 거대한 변화를 경험했고, 과거로 그대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 중 하나다.
이제 곧 새 정부가 출범한다. 현 정부와 달리 새 정부는 ‘인수위원회’를 가동하고 있다. 그러나 외교 분야를 제외하고는 다른 분야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인사만이 주목받고 있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나타난 거대한 변화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큰 그림을 볼 수 없다. 팬데믹 직후 광란의 1920년대를 경험한 미국이 1929년 파국을 맞았던 역사가 한국에서 재현돼서는 안 되겠기에,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