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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전한 확산’으로의 방역 전환

등록 2021-08-23 04:59수정 2021-08-23 12:37

[기고]
코로나19 4차 유행이 잦아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지난 12일 서울 지하철 신도림역에서 사람들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4차 유행이 잦아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지난 12일 서울 지하철 신도림역에서 사람들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철현 | 울산의대 교수·<바이러스의 시간> 저자

확진 2억명, 사망 430만명. 2019년 말 전염성 괴질로 등장한 코로나19의 가공할 위력이다. 이 원시적 유전자에 대응하기 위해 첨단 백신들이 전례가 없이 빠르게 개발되었다. 하지만 델타 변이는 백신을 통한 집단면역 효과라는 희망의 불씨를 꺼트리고 있다. 장기화된 방역에 지친 사회는 코로나와의 공존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감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많은 사람의 헌신과 희생으로 방역이 유지되는 지금은 실감이 어렵겠지만, 방역을 포기하는 순간 원시적인 날것 그대로의 피해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 기존 방역 패러다임은 유지하기도 포기하기도 어려운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팬데믹 상황에서 코로나19의 유전자 변이는 천문학적 빈도로 발생한다. 이 변이들은 자기들끼리 전파 경쟁을 하고 방역에 가장 잘 적응한 것이 델타 같은 우세종이 된다. 방역의 관점에서 변이는 움직이는 표적인 셈이다. 아무리 잘 조준해 놓았더라도 표적이 움직이는데 조준점이 따라가지 않는다면 빗나가게 된다. 이제는 변이를 고려한 방역 패러다임으로 전환을 고려할 시점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안전한 확산’을 유도한다. 이는 방역의 포기가 아니라 적극적인 통제를 의미한다. 팬데믹이 장기화된 상황에서 확진자의 수를 무조건 틀어막으면, 감염 확산에 의한 집단면역 효과의 발동이 다른 나라보다 늦어져 나중에 큰 문제로 돌아올 수 있다. 유행 종식의 전제조건인 집단면역 효과를 위해서 안전한 확산이 필요하다. 여기서 안전은 치사율을 낮게 유지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확산을 막는 데 주력했던 기존 방역에서는 신규 확진자 수가 중요했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에서는 폐렴 환자의 발생 속도가 중요하다. 가용 의료 자원의 한계를 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백신이 집단면역 차원의 전파는 막기 어렵더라도, 안전한 확산을 위해 접종률을 올리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코로나19의 유별난 특징이 감염 초기에 대량 증식해 전파된다는 점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최초 감염이 일어나는 호흡기 점막에 특화된 항체가 필요하다. 정교한 우리 면역은 자극이 주어진 곳에 적합한 항체를 만든다. 주사로 피부를 뚫고 접종하는 현재 백신은 혈액에 특화된 항체만 만들기 때문에 점막에서 일어나는 전파를 막기 어렵다. 하지만 폐렴은 혈관 내로 바이러스가 침투했다는 의미로 백신이 유도한 혈액 특화 항체가 방어할 수 있다. 즉 백신은 개인을 안전하게 보호한다.

지금까지 방역은 발생 확진자의 수를 통해 거리두기 단계를 결정하였다. 이는 바이러스를 뒤따라가는 전략이다. 기존 코로나19의 전파 특성에 맞춰 수립한 기준은 새로운 특성의 델타 변이 전파를 막기 어렵고, 시간이 지나면 델타를 우세종으로 만든다. 델타에 대해 기준을 재설정하면 또 다른 변이가 등장할 것이다. 이런 반복을 막기 위해서 선행적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1주는 강력하게 시행하고 4주는 중단하는 주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의 행동을 동기화해 코로나19의 전파 경로에 과속 방지턱을 만드는 효과를 낸다. 코로나19 전파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현상이다. 바이러스의 본질은 ‘절대 세포 기생물’이다.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세포 외부에서 무생물 입자에 불과한 바이러스가 전파되기 위해서는 사람의 행동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이 점을 이용하면 당장 코로나19 유행을 잠재울 수도 있다. 전 국민이 모두 동시에 4주간 자가격리 하면 된다. 물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대신 사람들의 행동을 동기화하는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선제적 거리두기는 거리두기 유지 기간의 불확실성을 줄여 사회적 부작용도 최소화한다. 시작과 끝을 미리 알면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안전한 확산, 폐렴 발생률 지표, 선제적 거리두기가 새로운 패러다임의 핵심이다. 이는 방역에 대한 기존 상식과 대치되기 때문에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어떤 패러다임을 전개하더라도 사회 구성원 일부의 희생이 방역의 대가로 치러진다. 그들의 고통을 고려하지 않는 방역은 실패한다. 바이러스는 사람의 행동이 전파시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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