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담|콘텐츠기획팀 기자
“한강 대학생 사망 사건, 범인이 누구야?” “아스트라제네카랑 화이자 백신 차이는 뭐야?” “비트코인 지금이라도 시작하는 게 좋을까?” “올림픽 장대높이뛰기 선수는 장대를 어떻게 옮겨?” “윤석열 엑스(X)파일 봤어?”
기자로 밥벌이한 지 7년차, 기자가 아닌 다른 직업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면 질문 공세를 받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기자란 이유로 정치·사회·경제·문화·국제·스포츠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질문이 던져지는데, 부끄럽지만 “출입처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며 어물쩍 넘겼던 적이 많습니다. 담당하는 출입처 뉴스를 챙기기 바쁘다는 핑계로 다른 분야 뉴스에 소홀했던 탓입니다. 이동하거나 쉴 때도 유튜브와 에스엔에스(SNS) 알고리즘이 찾아주는 ‘취향 저격 뉴스’를 위주로 봤습니다. 자연스럽게 관심사는 좁아졌습니다.
뉴스를 보는 시야를 넓혀준 건 ‘뉴스레터’입니다. 지난해 11월 <한겨레 > 뉴스레터를 만드는 팀에 온 뒤로 레터에 소개할 기사를 꼽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가리지 않고 봤습니다. 특히 일간 뉴스레터 H:730은 <한겨레> 당일 기사를 소개하는 특성상 매일 아침 각 부서에서 올라온 기사 발제를 꼼꼼하게 챙겨 봐야 했습니다. 신문 가장 앞, 1면부터 맨 마지막 지면에 들어갈 칼럼까지 말이죠.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던 기자 준비생으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뉴스를 보는 기준도 달라졌습니다. 기사를 몇 면에 배치할지, 분량을 몇 매로 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 뉴스가 왜 중요한지, 독자들이 궁금해할지에 중점을 뒀습니다. 그러자 그동안 관심이 없었던 보물 같은 기사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동물복지 축산’의 선두 주자로 이름을 날린 스페인에서 돼지들이 종양과 탈장과 같은 심각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 기사나 민간 기업들이 우주 관광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는 기사가 대표적입니다. ‘시간 날 때 읽어야지’라며 미뤄뒀던 긴 호흡의 토요판 (한겨레 S)과 <한겨레 21> 기사를 기다리는 재미도 생겼습니다.
편협했던 건 뉴스를 바라보는 시야와 기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저희 팀은 뉴스레터를 처음 만들 때 레터별로 주요 타깃 독자를 나눴습니다. H:730은 <한겨레> 종이신문을 읽는 기존 독자분들, 주간 뉴스레터 휘클리는 취준생부터 팀장급 이하의 직장인분들입니다. 좋아하는 분야나 주제별로 콘텐츠를 골라서 읽는 엠제트 (MZ) 세대(1981~2010년생)에게 H:730은 소구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거라는 편견이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최근 한달간 H:730 레터 신규 구독자를 살펴보니 77%가 엠제트 세대였습니다. 2030세대로 좁혀도 구독자는 68%로 압도적이었습니다.
엠제트 세대의 관심은 독자들의 반응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취준생이라고 밝힌 독자분은 “사회가 우리 고통을 인지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심됐다”는 의견을 남겼습니다. ‘교육비용을 줄이기 위해 경력직 채용에 무게를 두는 기업 채용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기성세대 기자의 칼럼에 위로를 받은 겁니다. “정치·경제 관련해 아는 게 전무할 정도로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지금부터라도 상식을 쌓고 나라의 상황을 잘 파악하고 싶다”는 대학생 구독자의 다짐도 있었습니다. 독자들의 피드백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엠제트 세대는 세상엔 관심이 없다’, ‘보고 싶은 뉴스만 본다’며 비판하기 전에 엠제트 세대에게 다양한 뉴스, 진짜 필요한 뉴스를 접할 기회를 얼마나 줬는지 말입니다.
저는 언젠가 다시 출입처가 정해진 기자로 돌아갈 겁니다. 그리고 친구들의 질문에 여전히 속 시원한 답을 주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처럼 아침 기사 발제에 쫓겨 관성적으로 출입처 뉴스만을 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기사가 몇 면에 배치될지보단 독자분들의 궁금증을 포착하고 제대로 답을 줬는지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을까요? 저는 기자이기 전에 다양한 세상이 궁금한 엠제트 세대이니까요.
gonji@hani.co.kr